북한 탄광 노역 국군포로 국가유공자 불인정

2007-09-05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서울-최영윤 choiy@rfa.org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가 북한에 있을 때 강제노역에 시달려 부상을 당했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재판에서 졌습니다. 6.25 전쟁이라는 역사의 희생자에 대해 예외성을 인정하지 않고, 법률에 의거해서만 판결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양한섭 씨가 낸 소송의 내용은 북한에 억류돼 있을 때 아오지 탄광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부상을 당했으므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서울행정법원 김정욱 공보판사입니다.

김정욱 서울행정법원 공보판사: 법률상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전투나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에 의해 부상당한 것이 인정돼야 하는데 북한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뒤에 포로 신분이 아닌 상태에서 탄광에서 일하다 부상당한 것이라면 그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이다.

양 씨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돼 북한 공민으로 편입된 상태에서 탄광근무를 하다 부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들고 있는 법원의 원고 패소 판단 배경에 대해 양씨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양한섭 씨의 탈북과 한국 입국 과정에서부터 양씨를 돕고 있는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의 말입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국가를 위해서 포로가 돼서 억류된 상태에서 일어난 ..... 재판 판결에는 공민자격을 취득했다는 대목이 있어요. 당연히 북한에서 억류된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보내달라고 요구도 했을 거고... 조직에서 살 수 밖에 없는데.....

양한섭 씨는 6.25 전쟁 당시 휴전을 며칠 앞둔 1953년 7월 포로가 돼 북한으로 끌려간 뒤 지난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악명높은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 씨는 참전 당시 소총 노리쇠 충격으로 오른손 중지가 잘렸고, 아오지 탄광에서 일할 때 안전사고로 왼쪽 손가락과 오른쪽 발가락이 절단됐다면서 자신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낸 것입니다. 최성용 대표입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이분이 사실은 참 안좋다, 몸이... 끌려가서 몸이 불구가 돼서, 나올 때도 불구로 나왔는데... 동생분이 애처로우니까 상이군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작년 12월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걸로 알고 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양한섭 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법조계와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법률 해석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이번 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국가유공자는 법에 따라 참전했던 지 경상 입었던 지 등등 국가에 공을 끼친 사람들에게 국가가 예우를 하는 것인데 법의 성격이 다르고 대상과 목적이 다른데 국가유공자 지정이 안됐다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양한섭 씨는 이미 탈북한 뒤 지난 2005년 한국에 입국해 국군포로 등의 대우와 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정의 퇴직수당과 연금 등을 받아오고 있다는 것이 제성호 교수의 판단 근거입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국군포로 대우에 관한 법률 적용에 있어서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피해라든가 신체적인 상해에 대한 보상이 미진하다, 미흡하다든가, 자녀에 대한 보호나 의료보호가 강화돼야 한다고는 얘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데,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야 된다. 추가적인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판결을 내린 서울행정법원내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양씨가 국군포로로 북한에 강제로 억류됐던 것을 법 적용에서 탄력적으로 참고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입니다. 법조계와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양한섭 씨 측은 이번 법원 판결에 불복해 상급 법원에 항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 (0)
Share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