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스티브 김 “석방 후 여전히 마음 무겁다”

200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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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희 bonnyj@rfa.org

중국 내 탈북자를 돕다 지난 2003년 중국 공안에 체포된 재미한인 스티브 김(Steve Kim) 씨가 수감생활 4년 만인 지난 25일 석방됐습니다. 김씨는 아직도 중국 감옥에서 고생할 탈북자들을 생각하니 오랜 시간 감옥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고 말합다. 이진희 기자가 스티브 김씨를 인터뷰 했습니다.

석방 결정이 언제 난건가요?

9월 12일 날 났는데, 좋지 않은 일 하면 바꾸려고, 22일까지 도장을 찍어주지 않더라구요. 9월 22일 날 도장 찍어 주면서 25일 날 나가는 것으로 해서, 25일에 나왔습니다.

도장도 빨리 안 찍어주고 해서, 석방이 실제로 되는 건지 마는 건지 걱정이 많이 됐을텐데, 막상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기분이 어떠셨어요?

그 사람들이 비행장까지, 비행기 타기 바로 전까지 저랑 같이 있으면서, 25일 자정까지는 자신들 소관이라며 자유를 하나도 주질 않더라구요. 그 사람들 손에서 벗어나서 비행기에 오르니까 모든 것이 새롭고.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습니다. 감옥에서 마음을 다 비운상태기 때문에, 제 자신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세우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공항에 도착하고 보니까, 수잔 숄티 여사한테도 연락이 오고, 또 여러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취재도 하시고 해서, 이런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될 내가 나가야 할 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북한인권을 위해, 탈북자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지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4년 만에 스티브 김 씨의 얼굴을 본 가족들이 많이 놀라던가요?

가족들이 깜짝 놀라더라구요. 특별히 80넘은 장모님이 제 얼굴을 보더니 감옥에서 나온사람 같지 않다면서, 그런 감옥이면 몇 번을 가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감옥에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째는 내가 죄도 없는 데 왜 나를 이곳에 집어넣느냐 하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분에 차면서 지내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던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힘에 맡기고 순종하는 삶, 용서하는 삶이 있는 데요. 저는 후자를 택해서 굉장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시던 분이 어떻게 탈북자를 돕다가 체포가 되셨나요?

97년도 북한에 식량난으로 많은 아사사태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했는데요. 그 때 제가 광둥에 있었습니다. 가구사업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가구 만들어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사업. 광둥에 있으면서 한국인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9년 쯤 되니까 탈북자들이 한국은 가야 되겠고 북에서 직접 가자니 단속은 심하고 위험하고 하니까, 홍콩으로 돌아서 갈 생각에 광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광둥에 있는 저희 교회에 매주 한 두 사람씩 찾아왔습니다. 한국분들은 탈북자들을 도우면 공장 문을 닫게 된다는 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니까 돕지를 못하더라구요. 저는 미국 시민이니까 제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브 김 씨의 석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2005년 초인 것으로 아는데요. 국제사회에 김 씨의 소식이 알려지고 석방운동이 벌어지면서, 중국 공안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거나 한 게 있습니까?

매일 묵상 시간을 가지면서 일기를 썼습니다. 감옥얘기는 별로 쓰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제 사진이랑 구호 등을 들고 석방하라고 외치는 것, 베이징 올림픽 하지 말라는 문구 같은 것을 중국 감옥에서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구요. 그 다음서부터는 제가 워싱턴하고 뭔가 연결이 있다고 하고, 제 일기, 물건, 옷장을 몇 번씩 와서 뒤집어 놓고 찾고. 그런 와중에 감옥에 같이 있던 한국분이 감옥에다 좋지 않게 모함을 했습니다.

두 사건이 겹치니까 중국서는 제가 ‘미국 스파이다’ 라고. 제가 재판받고 상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재판부에서 와서 한 첫마디가, ‘당신 미국정부에서 대만정부에 무기 파는 거 알어? 당신 감옥 가서 좀 고생해야 돼’하면서 상소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외부하고 전화도 못하게 하고. 변호사 면담도 거절시키고. 그 안에 있는 저와 접촉하는 탈북자 붙들어서 감옥 내에 있는 감옥에다 가두고. 저는 두 달정도 방에다가만 있게 행동 제약시키고. 3명 요원이 매일 생활을 감시하는 겁니다. 그런 박해를 당했습니다.

중국 감옥에는 탈북자들도 많이 갇혀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분 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 목격하셨나요?

장춘 감옥으로 갔을 때, 탈북자들이 100여명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 없어서 훔치다 온 사람, 오토바이 훔치다 온 사람, 농작물 훔치다 10년, 15년, 20년을 받고 형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돈도 없고 가족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감옥에서는 돈이 없으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탈북자들 한 달에 5원씩 받았는데, 그 걸로는 화장지, 세숫비누도 사질 못합니다. 이들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형기도 만료 안됐는데, 강제로 북으로 송환시키는 것을 봐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런데, 탈북자들의 판결문을 보면, 무국적자로 나와있습니다. 국적이 있으면 대우를 받을 텐데. 어느 나라던 이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죠. 북한 정부에 신원조회를 하면 응답이 없으니 국적확인이 안되죠. 그러니 판결문에 무국적자로 나오는 거죠. 북한 정부에서 찾아오지도 않고 와도 2년에 한 번 정도 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탈북자 거의가 다 병을 앓고 있습니다. 폐를 앓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돈이 없으니까 감옥에 병원이 있어도 약을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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