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만큼은 꼭 시험운행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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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예정대로 오는 17일 열차 시험운행을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남한 국민들은 휴전선을 뚫고 남북한 간에 열차가 달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남다른 감회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50년 넘게 방치됐던 기관차의 마지막 기관사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이번 시험운행 때 탑승자로 북한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한준기: 지붕위에 타서 서로 껴안고 후퇴하고 기관차에 매달리고 피난민들이 이북에서 개성까지 올 때 선로 연변에는 죽은 사람, 떨어져 죽은 사람, 다친 사람이 부지기수였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남북한간 열차 시험운행 때 직접 열차를 몰고 싶다는 올해 81살의 한준기 씨, 한 씨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생명선이 됐던 열차를 몰려 목격한 전쟁의 참상부터 말을 시작했습니다.

한 씨는 해방 후 기관사로 일하며 열차를 몰고 서울에서 개성, 함포 등 남북한간 경의선을 오르내렸습니다.

한준기: 트럭, 버스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거든. 주로 경의선도 통학생, 장사꾼들이 다 열차 이용했지.

기관사로 일하며 열차와 한 몸이 됐던 한 씨는 그래서 자신이 마지막 몰았던 열차에 아직도 애착이 갑니다. 그가 마지막 몰았던 기관차는 비무장지대에 50여년 넘게 방치됐던 그 유명한 기관차입니다.

한 씨가 건넨 사진속의 그 기관차는 분명 검정색에 가까웠을텐데 심하게 녹슬어 붉은색이 됐고 선명한 총탄 자국이 가득했습니다. 한 씨는 이 기관차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 50여년만인 지난 2001년 이 기관차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한준기: 정말 가슴이 아프지. 그날 가니까 눈물이 핑 돌더라.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1950년 12월 31일 연합군 군수물자를 싣고 개성에 도착한 한씨는 북한군에게 빼앗은 화물열차로 갈아타고 후퇴하라는 연합군의 지시를 받고 현재 비무장지대에 있는 장단역으로 왔습니다.

중국군에 밀렸던 연합군들이 부랴부랴 그 기관차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고 그때 일을 떠올립니다. 지금도 그 아픔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한씨는 전쟁은 정말 있어선 안 된다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부모의 고향이 전북 진안이고 자신은 일본에서 나고 자라 북한과는 별로 인연이 없지만 경의선을 타고 북한에 갔었던 옛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래서 생전에 남북이 통일되는 것을 꼭 보고싶다는 한 씨.

한준기: 죽기 전에 통일 되는 거 보는 거, 철도가 한번 개통되고 밑거름이 돼 통일까지 이어지면 하는 게 소원이다.

한 씨는 요즘 열차 시험운행이 지난해처럼 행사 전날 무산될까 걱정하며 매일같이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합니다. 이번 만큼은 열차가 남북한간 경의선을 달려 통일의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는 한 씨의 바람은 한 씨 한사람만이 아닌 남한인들 모두의 기원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최영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