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김연호 kimy@rfa.org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남한의 한국전력에 이어 우리은행을 테러지원국인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으로 지목했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해당 기업과 업계는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으로 남한의 우리은행이 추가로 지목됐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남한의 한국전력에 이어 우리은행을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인터넷 웹사이트에 게시했습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영국의 HSBC와 스위스의 크레디 스위스를 포함해 모두 8개 기업이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으로 지목됐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북한 말고도, 쿠바와 이란, 수단, 시리아 등 미국 국무부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다섯 개 나라들과 거래 관계가 있는 80여개 기업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개성공단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이 지적됐습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4년 9월 개성공단에 지점을 연 뒤, 지점장을 포함해 3명의 직원을 파견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지급 업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측은 남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개성공단 지점을 열었을 뿐이며, 북한과 직접 거래는 없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과 북한이 핵 동결 문제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그 다음단계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치는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움직임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정통한 워싱턴의 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증권 거래위원회의 조치가 대북 제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의 임무는 기업들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보고하는 데 있지, 제재를 가하는데 있지 않다는 겁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미 공개된 정보를 그대로 전달할뿐, 나름대로 분석을 붙이지 않은 사실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상장된 외국기업들을 대표하는 국제투자기구(Organization for International Investment)의 사이먼 웨버 정책 담당 이사의 말입니다.
(Weber) We're not opposed to transparency. We are not opposed to discloser.
“기업 투명성과 기업 공개를 반대하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 투명성을 잘못 이해한 겁니다.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죠. 증권거래위원회 같은 금융당국이 보도자료에서 ‘테러 지원’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국제투자기구는 지난 11일 증권거래위원회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이른바 ‘테러지원국과 거래하는 기업’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 것이 타당한 조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투자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을 때까지 정보 공개를 취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제 금융계를 대표하는 국제은행가협회(Institute of International Bankers)도 지난 6일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증권거래위원회가 공개한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증권거래위원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투자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검색 장치를 인터넷에 올렸을 뿐이며 특별히 문제기업의 명단을 따로 관리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각 기업이 공개하는 연차보고서 안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 이름이 들어 있으면 자동으로 검색장치에 올라간다는 겁니다. 따라서 연차보고서에 북한 같은 테러지원국 이름이 들어있는 한, 한국전력이나 우리은행 등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의를 제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