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94년 사망 당시 과도한 업무로 인한 급성심장병으로 숨졌다고 중국의 유명한 전기 작가 예융리에 씨가 밝혔습니다. 예 씨의 주장은 그간 김일성 주석의 사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양성원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우선 중국 최고의 전기 작가중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예융리에 씨가 주장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예 씨는 중국의 월간지 동주공진 최근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심장박동이 멈추었고 사인은 급성 심장병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 주석은 묘향산 별장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바쁜 일정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고 죽기 전날 밤에도 남한과 진행 중이던 통일회담에 관한 문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건을 보고서 서명한 뒤 1994년 7월 7일이라고 날짜를 명기했으며 이 문건은 판문점의 기념관에 보관돼있다는 겁니다. 예 씨는 이같은 얘기를 작년 7월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단행하기 전 북한을 방문해 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예 씨의 기고문에는 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상황도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까?
네, 김일성 주석은 82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했고 매일 10시간의 업무를 감당했지만 94년 7월7일 밤 돌연히 묘향산 별장에서 쓰러졌는데요. 의사가 달려와 검진한 결과 급성 심장병 발작으로 판정됐습니다. 전에 김 주석은 심장병을 앓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는 응급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묘향산 일대가 관광지역으로 주변에 제대로 된 병원이 없었고 평양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급히 헬기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당시 날이 어두운데다 짙은 안개, 바람을 동반한 폭우로 헬기가 묘향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두 번째 헬기가 겨우 묘향산 별장에 내려앉아 김 주석을 평양에 있는 봉화의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김 주석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예 씨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이 매우 낙심했다고 했죠?
네,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라 김 주석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통에 잠겼고 7월 17일 추도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20일로 연기해야 했다고 예 씨는 전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추도대회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김 주석이 암살됐다는 등 온갖 억측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예 씨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사후 북한을 통제할 수 없어 3년 내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면서 당시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도 과거 김일성 주석의 사인은 심장병이었다고 공식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 중국 전기 작가의 기고문이 주목받는 이유는 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일의 구체적인 정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융리에 씨는 상하이 출신 1급 전기 작가로 정치가들의 인물 전기를 주로 써 왔는데요. 지금까지 ‘마오쩌뚱의 비서들’, 그리고 등소평 시대의 실력자중 한사람인 천윈 의 전기도 썼습니다. 예 씨는 지난 89년에는 세계명인록에 실렸고, 미국 전기연구소 고문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