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장기적인 남한 체제 전복 시도” -미 중앙정보국 자료

워싱턴-이진희

북한의 김일성은 지난 60년대 미국과 직접적인 대규모 군사충돌은 피하면서, 남한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인 도발과 청와대 습격사건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남한체제를 전복하려는 전술을 추구한 것으로 최근 기밀이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 자료에서 밝혀졌습니다.

지난 60년대, 북한에 의한 비무장지대에서의 군사적 도발이라던가, 남한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미국 정보함 납치 사건 등이 많이 일어났는데요. 이것이 김일성의 신군사모험주의에 의해 시도됐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분석내용인데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지난 26일 비밀기록물에서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 극비 보고서의 분석 내용입니다.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모험주의’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1968년에 작성이 됐습니다, 당시 한창 베트남 전쟁이 진행 중이었는데요. 김일성은 한국전쟁으로 북한 군대의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에, 미국과 직접적인 대규모 군사 충돌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구소련의 도움으로 재래식 공중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능력이 향상됐고, 또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전적으로 관여하면서, 김일성의 새로운 군사적 야심이 고개를 들었다는 지적입니다. 김일성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묶여 있고, 이에 따라 남한에 있는 미군의 군사력이 약해졌다는 정세 판단에 따라, 남측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인 도발 등을 기도하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1966년 10월 중순 무렵, 비무장지대의 남한 군과 미군에 대한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김일성의 야심은 비무장지대 아래쪽으로까지 확대가 됐는데요, 곧이어 남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1.21사태로 더욱 잘 알려진 북한 간첩의 청와대 습격사건입니다. 1968년 1월 21일, 김일성은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게릴라를 남한에 침투시켜 청와대를 기습하도록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기습사건은, 무력 도발 시도에 대한 북한 내부의 일부 반대를 무마하면서, 남한의 전 지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김일성의 욕망 때문에 일어났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평양의 방송들은 처음 1.21 사태를, 남한내 무장게릴라 들의 출현으로 선전 보도했습니다.

바로 이틀 뒤인 1월 23일, 북한이 미국의 정보함 푸에불로호를 납치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보고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습니까?

김일성의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한 것이란 분석입니다. 객관적으로 김일성은, 푸에블로호를 납치해도 미국이 이에 따른 보복 조치로 핵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 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재래식 보복공격에는 얼마든지 맞설 수 있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주관적으로는 김일성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주요 적에 도전함으로써, 북한의 우방인 소련과 중국 등을 압도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김일성의 이 같은 신군사주의 모험 야심이 계속될 것으로 봤죠?

그렇습니다. 보고서는, 김일성은 비무장지대에서 남한 군과 미군을 상대로 도발행위를 지속할 것이며, 남한에 게릴라 침투를 계속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일성은 특히, 호치민 베트남 주석이, 남부 베트남에서 정치, 군사 기구를 만들어 베트남을 일원화 한 것처럼, 남한에 게릴라 거점을 만들어 뒀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일성과 공산주의에 대한 남한국민들의 적대감이 너무 크고 또 남한의 게릴라 활동 저지 노력도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서 게릴라 거점 확보를 이루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