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희
지난 1999년 러시아에서 남한행을 기다리다 북송됐다가 훗날 남한에 정착한 일부 탈북자들이 북송 이후의 자신들의 삶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들 대부분 학교와 직장에 복귀하고 고향에 돌아갔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는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로 보내졌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 탈북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경로로 북송됐습니까?
네 31일자 인터내세널 헤럴드 트리뷴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99년 당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7명의 탈북자들입니다. 이들은 남한에 가려면, 우선 러시아에 먼저 가야 한다는 탈북 중개인의 말을 듣고 중국-러시아 국경을 통과해 러시아로 갔습니다. 그 때가 1999년 11월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에 잡혔습니다. 유엔을 비롯해 많은 인권단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들 탈북자들을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중국은 이들을 북송했습니다. 이들 중 2명이 재탈북에 성공해 남한에 왔습니다.
러시아에서 어떻게 북한으로 보내졌나요?
당시 이들이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을 때, 이들의 체포소식이 러시아 텔레비전을 통해 전역에 방송됐습니다. 당시 많은 인권단체들이 탈북자들의 석방을 호소했구요, 유엔 관계자들도 이들과 면담한 후 난민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들에게 10일안에 러시아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출국 비자를 줬습니다. 국제적십자사는 여행 허가증을 부여했고, 또 남한 정부도 이들이 남한에 올 수 있도록 입국 비자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남한에 못 갔나요?
러시아 주재 북한 외교관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북한 측 외교관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자들을 면담한 후 이들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북측이 이들을 데려갔습니다. 그중 한사람인 김은철 씨는, 체포된 후 한 달 뒤인 1999년 12월 중국에 넘겨질 때 까지도. 유엔이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북송된 이후 어떻게 됐나요?
당시 14살이던 김성일 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탈북자들은 다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김성일 씨는 나이가 어려 다른 보호시설로 보내졌습니다. 이 중 김광호라는 사람은, 일단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요덕수용소 특별구역으로 보내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7명의 탈북자 중 유일한 여성인 방영실 씨는 보위부의 고문 등으로 몸이 상당히 마른 상태에서 요덕수용소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두 달 뒤에 숨을 거뒀습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식량을 찾아 탈북한 것과 달리, 방 씨는 남자친구 허영일씨와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하자 이에 반발해 탈북했습니다. 김은철 씨는 요덕수용소에서 3년을 보낸 후 지난해 남한에 왔습니다. 김성일 씨도 재탈북에 성공해 2002년 남한에 왔습니다. 김성일 씨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북한 당국에 후에 유엔 측에 북송된 탈북자들이 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반대죠?
그렇습니다. 북한은 2001년 7월, 유엔 관계자들에게, 이들 7명 중 방영실 씨와 남자친구 허영일 씨만 구금돼 있으며, 나머지는 석방돼 학교와 직장에 복귀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방 씨와 허 씨의 경우, 해외 망명을 시도해서가 아니라 절도와 방화죄로 형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측은 또 해외 망명 시도는 북에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