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도우려다 중국 감옥에 수감 중인 탈북자들

워싱턴-김나리

북한 탈출에 성공한 일부 탈북자들이 중국서 또 다른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돕다 중국 당국에 체포돼 긴 수감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중국에서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도와주었던 이들은 누구입니까?

네, 남한의 조선일보가 2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가까스로 북한을 탈출한 이후 남한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은 네 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일본과 캐나다 대사관을 비롯한 외국대사관을 통해 탈북자들의 남한행을 주선해 왔다고 합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홍진희씨는 함흥에 본부를 둔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근무했습니다.

홍 씨가 외화벌이소에서 근무할 당시는 북한에 대량으로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졌던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습니다. 홍 씨는 눈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주변에 ‘세상이 왜 이렇게 살기 어렵게 됐냐’며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홍씨의 불만은 곧 국가안전보위부에 고발됐고 홍씨는 계속 도망자 신세로 지내다 남한으로 넘어왔습니다. 또 다른 탈북자로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다 중국에 수감된 김홍균씨는 러시아에서 노무자로 일하다 남한으로 탈출했었습니다.

이들 네 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나머지 두 명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또 다른 탈북자인 이수철씨는 인민군 호위국에 입대해 10년간 복무를 했던 인물입니다. 이 씨는 군 제대 후 지방 간부로 있는 동안 북한 사회 현실의 암담함에 환멸을 느껴 북한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 영화감독 출신의 오영선 씨도 아직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오 씨는 북한 예술영화 촬영소 조감독 출신으로 남한으로 망명 후 북한 관련 영상물 제작에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이 들 네 명의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중국에서 어떻게 돕고 있었나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차례로 남한에 정착한 홍진희씨를 비롯한 네 명의 탈북자들은 다른 탈북자들이 가족의 북한 탈출을 도와줄 것을 부탁해 이에 간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홍 씨 등 세 명은 아예 탈북자 구출 조직을 만들어 5명에서 6명씩 베트남과 몽골을 거쳐 남한행이 이뤄지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중국의 다롄에서 배편을 통해 남한으로 가려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발각되는 '보트 피플' 사건이 있게 되면서, 중국 공안의 감시는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탈북자 돕기 전략을 바꿔 중국내 외국 공관을 통해 이들을 제3국으로 망명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2004년 9월에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에 29명의 탈북자를, 캐나다 대사관에 44명의 탈북자들을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국 당국에 홍 씨를 포함한 네 명이 체포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지요?

2004년 9월 홍 씨를 비롯한 네 명은 외국 대사관에 탈북자들을 진입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한 달 후인 10월 25일 새벽 3시 중국 공안은 베이징 퉁저우의 한 아파트를 급습했고, 이 사건으로 이수철씨와 김홍균씨는 탈북자 60명과 함께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공안 당국의 급습을 피했던 홍씨도 중국 선양에서 체포됐습니다.

북한 예술영화 촬영소 조감독 출신인 오영선 씨도 같은 해인 2004년 중국에서 인권 관련 영상물을 제작 차 연길로 갔는데, 여기서 탈북자 7~8명을 돕는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오 씨는 2005년 재판을 통해 7년형 선고를 받았고 현재 3년째 선양 제2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홍 씨를 비롯한 나머지 세 명에 대해서 중국 당국은 처음 2년간 재판도 하지 않은 채 수감을 시키다, 거의 2년이 지난 2006년에야 재판을 열어 홍씨에겐 7년, 김씨에게 5년, 이씨에게 2년형을 각각 선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