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고아 출신 탈북자, 자신 구해준 단체에 감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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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다, 2003년 가까스로 남한에 들어간 탈북자 김철성씨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도와준 일본의 한 탈북자 지원단체에 최근 감사 편지를 보내 화제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13살의 나이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온 김철성 씨는 일본의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의 도움으로 제 3국을 통해 지난 2004년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김철성 씨는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의 도움을 잊지 않고 최근 이 단체의 가토 히로시 대표에게 영어로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김 씨는 영어 연수 차 호주에 가 있었습니다. 김씨의 편지 내용입니다.

(편지내용) 존경하는 가토씨에게,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호주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호주에서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나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가토 대표가 김철성 씨를 만난 것은 김 씨가 탈북한 지 몇 달 안돼서입니다. 가토 대표는 5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김 씨는 가족을 모두 잃고 홀홀단신으로 중국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Kato Hirosi: (it's only just a few months after leaving N. Korea.)

“김철성 씨가 탈북한 지 몇 달 안돼서 그를 만났습니다. 김 씨는 함경북도 량강도 혜산 출신입니다. 당시 김 씨의 부모는 굶어 죽었습니다. 90년대 북한에 닥친 기근상황으로 김 씨의 가족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가족이 모두 흩어져 식량을 찾아 나섰구요. 김 씨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돌아갈 기회를 잃었습니다.”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은, 김 씨를 이 단체가 운영하는 구호시설로 데리고 왔습니다. 김 씨는 낯선 일본인 단체에게 선뜻 마음을 열고 북한에서 힘들었던 삶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고 가토 대표는 전했습니다.

Kato Hirosi: (His father was just a worker. His mother was a housewife. But the father had no work to do.)

“아버지는 단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일거리가 없어, 월급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식량을 살 수도 없었고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혼자 식량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은 김철성 씨를 비롯해 모두 7명의 탈북 고아 소년, 소녀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안의 소위 탈북자 사냥이 시작된 지난 2000년, 7명 모두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1년 7명 모두 북한을 다시 탈출해 중국으로 왔습니다. 가토 대표는, 이들 탈북 소년, 소녀들은 상해 등 대도시로 흩어져 지냈으나 중국 당국이 이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해 주지 않아 곤란을 겪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은,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 7명의 이들이 제 3국을 거쳐 남한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가토 대표는 지금도 3-4달마다 남한을 방문해 이제는 어른이 된 이들을 만나서 근황을 듣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주에도 남한에서 이들을 만나고 돌아왔다며, 남한 생활에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워싱턴-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