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송환 촉구 청문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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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최영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57년이 지났지만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백여명의 국군포로들은 송환은 커녕 정확한 생사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철수: 다 인민군 복장으로 갈아입혀가지고 광산, 탄광에 그 사람들을 내무성 직속 산하에 건설대라는 이름하에 집단적으로 배치해서 가장 힘든 중노동을 시켰다는 말입니다.

올해 76살인 유철수 씨는 6.25 전쟁 중 지난 53년 7월 포로로 잡혀 50년 가까이 북한에서 억류된 채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시간들을 증언했습니다.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 마련된 6.25 전쟁 국군포로 송환 촉구를 위한 청문회 현장! 이번 청문회에는 탈북해온 국군포로와 국군포로 2세들이 증언자로 나왔습니다. 국군포로를 전쟁포로로 대우하지 않았던 북측의 만행이 고발됐습니다.

국군포로 이원우 씨 자기소개

3년전 탈북해온 국군포로 76살 이원우 씨도 억울하게 죽어간 국군포로들의 이름까지 들어가며 북측의 만행을 증언했습니다.

이원우: 다음해 56년 10월에 불의에 총살이 감행됐습니다. 강금수이었습니다. 총살장에서 사격 직전에 한마디 ‘이 자는 낙서를 했다’라는 그 선포 끝에 총살이 감행됐습니다.

국군포로들의 고통스런 삶은 당사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국군포로였던 아버지 유해를 모시고 지난 2004년 탈북한 이연순 씨는 국군포로 자녀는 결혼할 때 배우자 선택의 자유도 없다며 국군포로 자녀로 살았던 과거를 쏟아냅니다.

국군포로 딸 이연순: 아버지가 어제 하루 휴식 하고 가더니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들었길래 노래도 안부르느냐고 일주일 동안 사상수행하고 비판서를 쓰라고 해서 이런 책에다 한페이지를 썼어요. 비판서를 ...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줄도 몰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어린나이에 14살 때부터서 썼으니까 그 고통은 끝이 없고...

오늘 나선 고령의 국군포로들은 고통은 과거의 일만이 아닙니다. 현재도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원우 씨는 가족 9명 가운데 5명이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생사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A: 가족 5명이 수감됐고, 4명은 수감되지 않았다. 손녀2, 손자2명은 수감안됐다. Q: 그럼 어린 가족들은 수감이 안되고, 나이가 제법 많은 가족들은 이 선생님이 남한으로 넘어오는 바람에 수감이 돼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말인가? A: 나이가 5명 수감된 사람 중에 나이가 어린 14살 17살 짜리 아이도, 내가 직접 데리고 있던 가족이기 때문에 수감됐다.

국군포로들의 비극은 이처럼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지만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희박해 보인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의 말입니다.

제성호:북한의 원초적인 범죄가 있었는데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가의 도리와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국군포로는 5백여명. 이것도 공식집계가 아닌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추정되고 있는 수치입니다.

이번 청문회 참석자들은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로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의 현황 파악과 사망자 수와 명단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