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중국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가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게 꼭 18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도 중국의 변화가 북한에 미칠 영향 때문에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중국과 북한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지난 1989년 6월 4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계엄군은 탱크와 장갑차로 진압했습니다. 사상자 규모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있는 공식 통계는 없습니다. 대략 수천명의 사상자가 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1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남한의 24시간 뉴스 전문 방송인 YTN의 류재복 특파원은 천안문 18 주년을 맞이한 베이징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류재복: 천안문 광장은 평소와 별 다를 바가 없고 관광객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천안문 광장을 찾아서 사진도 찍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안이나 경찰의 숫자도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탭니다.
한 달 전 쯤 인 지난달 13일 천안문에 걸려 있는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 일부가 불에 타고 홍콩에서는 지난달 말 천안문 유혈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민들이 빗 속 행진을 펼치는 행사 만이 18년이 지난 천안문 사태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천안문 사건 이후 물샐 틈 없는 언론 통제를 통해 체제적 동요를 차단하는데 급급했습니다. 남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회의원 보좌관도 지낸 바 있는 탈북자 김형덕씨의 말입니다.
김형덕: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조용히 넘겼습니다. 언론통제가 이뤄진 거죠.
지난 세월동안 중국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발전을 했다 해도 중국의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이고, 특히 당시 천안문 사건이 가져올 영향권에 놓여있던 북한은 그 바람이 중국당국의 강경진압으로 사라진 이후로는 인권이나 식량 상황이 오히려 악화 됐습니다.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의 말입니다.
손혁재: 천안문 사태가 북한에 널리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그런 천안문 사태의 여파가 북한의 유일 주체사상의 벽을 뚫고 북한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어떤 충격을 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망명을 선택한 중국인들은 홍콩 등지에서 당시 사건을 민주화 시위로 규정하며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와 수감자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천안문 사태. 정작 이 일이 발생한 중국 땅에서는 이제 경제적 호황 속에서 당시 일들이 서서히 잊히고 있고, 같은 공산국가인 북한에서는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민주화 시위가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겨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