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일, 귀환 납북자들과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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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북한에 납치됐다가 최근 남한에 입국한 납북어부 최욱일 씨가 당국의 조사를 모두 마치고 31일 경기도 안산에 있는 아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1975년 오징어잡이배 천왕호를 타고 동해상에 나갔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돼 3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최욱일 씨는 31일 가족들과 만나기 앞서 같은 납북어부로 북한에서 귀환한 이재근, 진정팔, 김병도, 고명섭 씨 등과 만났습니다.

최씨와 이들 귀환 어부들의 만남은, 남한의 민간단체인 납북자가족모임에서 마련한 ‘납북자 송환 특별법제정 촉구대회’에서 이뤄졌습니다. 최욱일 씨는 특히 천왕호에서 같이 일했던 고명섭 씨를 얼싸 안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고명섭 씨는 지난 2005년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최욱일 씨는 고명섭 씨를 23년 만에 만난다며 감격했습니다. 최 씨는 납북된 이후 고 씨와는 1984년 다른 선원의 회갑연에서 봤고, 다른 귀환 납북자 3명은 1986년 원산 중앙당 강습회에서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최욱일 씨는, 고기가 잡히지 않아 북 쪽으로 항해를 하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됐다며, 납북됐을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최욱일: 울릉도에서 작업을 하다가, 고기가 없어 북한 공해로 29시간 들어갔습니다. 육지로 배를 돌려서 들어오니 이북이었습니다. 거기서 끌려갔습니다.

최욱일 씨는, 남한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면서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염려를 놓지 못했습니다.

최욱일: 북한에 있는 가족이 함께 오지 못해 문제가 돼서 사과합니다. 북한에서 32년간을 제대로 먹고 입지 못했습니다. 보위부 감시 속에서 모진 노동을 하다가 이번에 남한에 왔는데. 한국 정부에서 한국국민으로 받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최 씨는, 북한에 있을 당시 1994년부터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노동자에 대한 배급이 하나도 안됐고, 농민들도 이전의 40-45%밖에 배급을 받지 못했다며 북한에서의 생활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997년 남한에 있는 아내 양영자씨의 편지를 받은 뒤 8차례 탈북을 권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최욱일 씨는 이 날 납북자 송환 특별법제정 촉구대회를 마치고, 부인 양정자 씨와 함께 경기도 안산에 있는 아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최 씨는 남한 연합뉴스 기자와 따로 만나, “32년간 남쪽에 있는 자식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납북됐을 당시, 7개월 된 아들을 두고 가족과 헤어졌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기가 차다고 말했습니다. 최 씨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며, 인생 말년에 아들, 딸, 가족과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밝혔습니다. 부인 양정자 씨에게는 “스물 하나, 스무 살에 처음 만나, 32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결혼 때 보다 더 큰 잔치를 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오징어잡이 배 천왕호의 선원이었던 최욱일 씨는 1975년 동해에서 조업 중에 북한 납치됐습니다. 지난 1999년에 처음으로 편지를 써 남한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존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 씨의 부인 양정자씨는 청소일 등을 하면서 최 씨의 탈출 비용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했고 결국 지난 해 12월 최 씨는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최 씨는 탈출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남한 영사관 직원의 박대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남한 영사관에 신병이 인도된 지 12일 만에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