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미군 병사 - 다살보 일병

워싱턴-이진희 bonnyj@rfa.org

지난 1950년 한국전쟁중 사망한 미군 병사가 57년 만에 유해로 유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도메니코 닉 디살보(Domenico Nick Disalvo) 일병은 살아있다면 77번째 생일이 됐을 지난 12일, 고향인 오하이오주에 안장됐습니다.

한국전쟁 때 사망한 미군의 유해가 이제야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타까운 소식인데요, 디살보 일병은 어디서 근무를 했고, 언제 사망을 했나요?

네, 디살보 일병은 미 제 1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파견이 됐습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미군이 악전고투 했던 장진호 전투를 기억하실 겁니다. 1950년 12월 2일 디살보 일병이 속한 사단은 중공군에 의해 차단이 됐고, 장진호에 갇혔습니다. 디살보 일병은 그 곳에서 사망을 했습니다. 당시 겨우 20살이었습니다.

사실 디살보 일병의 유해는 장진호 부근에서 발견이 돼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다른 미군 유해 만 여 구와 함께 미군 측에 인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 군사전문지 ‘성조지’와 오하이오 지역 신문들에 따르면, 디살보 일병이 전사했을 때 동료들이 그를 현장에 매장을 했는데, 그 뒤 이 지역을 점령한 북한군들이 매장지역을 파헤치고 신분증과 지갑 등을 가져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디살보 일병의 신원이 확인이 됐습니까?

디살보 일병의 유해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미 태평양 국립묘지, ‘펀치볼’이라고 부르죠. 이곳에 가매장 됐습니다. 미 해군은 그러나 신원확인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미군은 20년 전, 디살보 일병의 가족들에게 혈액 표본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신원확인을 할 수 없었는데요, 결정적인 단서는 디살보 일병의 치아 충전물과 어릴 적 사고로 다쳐 팔에 생긴 뼈 골절이었습니다.

미 해군은 디살보 일병임을 거의 확신하고, 지난해 8월, 디살보 일병의 여동생인 샐리 피어 씨에게 디살보 일병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건네받은 사진을 갖고 점토로 디살보 일병의 얼굴을 복원해 냈는데요, 이 얼굴이 발굴된 디살보 일병의 두개골과 일치했습니다. 해군 당국은 5월 피어 씨를 직접 방문해, 디살보 일병이 얼굴과 몸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전해줬습니다.

반세기가 넘어 디살보 일병의 유해를 넘겨받은 가족들의 심정은 어떤가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인데요, 여동생 샐리 피어 씨는, 오하이오 비콘 저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오빠가 집에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오빠를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 거의 50년간 오빠에 관한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오빠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다만 어떻게 죽었는지,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생전에 알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디살보 일병의 유해는 지난 11일 오하이오로 돌아왔고, 12일 오하이오주 서부 예비군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2일은 디살보 일병의 생일로 살아 있다면 올해 77살이 됐을 겁니다.

디살보 일병의 신원이 확인이 되고 유해가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현재 발굴조차 안 된 미군 유해가 상당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 국방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한국전 당시 숨진 미군들 중 아직 8천 100여명이 유해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실종자로 분류가 돼 있죠. 디살보 일병의 경우 그래도 다행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로버트 야나식(Robert Yanacek)씨라는 분과 연락이 닿았는데요, 이분 부친도 한국전쟁 참전 용사입니다. 야나식 씨가 어릴 적 부친은 한국전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친은 야나식 씨가 나중에 해군이 됐어도,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다, 지난 1990년에 신문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에 맞서 싸우다 포로로 잡혀, 사망한 두 명의 미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야나식 씨는 부친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요, 동료들의 우해가 발굴되지 않은 데 대해 상당히 분노 했다고 전했습니다. 부친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야나식 씨는 현재 하와이, 태평양 국립묘지에 가매장된 800여명의 한국전 참전 미군들의 유해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미군들의 친척들과 찾아내, DNA 표본을 채취한 뒤, 유해와 비교하겠다는 것입니다. 야나식 씨는, 해군으로써, 동료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의무라고 말을 했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유해발굴 작업은 얼마나 진행 중인가요? 미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벌이던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의 경우 2년 전에 중단이 된 상태로 알고 있는데요?

네, 북한과 미국은 지난 1996년 이후 해마다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과 평안북도 운산 등 두 곳에서 한국전 당시 실종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공동으로 벌여왔는데요, 지난 2005년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간의 갈등 이후 이마저 중단됐습니다. 현재 미국은 남측지역과, 미군이 참전했던 다른 지역에서의 유해 발굴 사업을 계속 진행 중입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국의 래리 그리어 공보실장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지역 내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Greer: (Over the years, we tried to keep our negotiations and our mission separated from all the other discussions with N. Koreans...)

"우리는 유해 발굴 작업이 정치적 사안이 아닌 미국 정부와 참전 용사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사업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다른 논의와는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래리어 공보실장은, 미국 정부는 마지막 한 명의 미군 유해를 모두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