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중 간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을 이용한 해상 밀수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 무역기관이 중국 무역업자에게 고급 승용차 '벤츠'의 구매 대행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노출된 고급 승용차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사치품 유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해상 밀수를 통한 그들만의 은밀한 거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덕인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서 "바다무역 하자" 계속 연락와
“벤츠 승용차 새것 두 대를 구해달라.”
중국 단둥의 대북 무역업자 박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가 지난 8월 북한 무역기관으로부터 받은 의뢰입니다.
지속적으로 북한 무역기관과 소통해 온 그는 “지난 8월 중순 북한의 국가무역회사로부터 신형 벤츠 승용차 두 대를 구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며 “전달 방법은 선박을 이용한 해상 밀수”라고 최근(8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 측이 계약금을 보내지 않고, “먼저 벤츠를 구매해주면 나중에 돈을 지급하겠다”고 말해 더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무역업자의 설명입니다.
그가 북한으로부터 벤츠 승용차 구매 의뢰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북한 무역회사가 중고 벤츠를 구해달라고 해서 알아봤는데, 나중에 터무니없이 가격을 깎아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적도 있다며, 해상 밀수를 통한 북한의 사치품 수입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이 무역업자는 덧붙였습니다.
북∙중 국경 상황에 밝은 대북소식통도 (8월 29일) “요즘 북∙중 간에 해상 밀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특히 유엔 대북제재 대상인 철강재나 사치품 등이 주요 거래 품목인데, 그중 벤츠 승용차도 배에 달린 크레인을 통해 주고받는다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대북 소식통] 지금 북∙중 간에 해상 밀수가 많은데, 북한에서 계속 의뢰가 온대요. 바다 무역좀 하자고. 바다로 하는 무역은 주로 유엔 제재품들, 그러니까 철강재. (벤츠 같은 것도) 크레인으로 다 옮기죠. 북한과 바다무역하려면 크레인을 설치하는 게 필수입니다.
이와 관련해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지난 30일, 북한에서 ‘벤츠’란 고급 승용차는 고위층 결집을 위한 ‘선물정치’의 상징으로 꼽힌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저도 평양을 두 번 방문했었는데, 그때 당시 북한 당국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차가 벤츠였습니다. 일본차도 타고 있었지만, 일본차는 일단 운전석이 오른쪽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벤츠가 많아졌는데, 벤츠는 일단 고급차니까 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흐름이 생겼고, 일단 ‘벤츠’라고 하면 북한 ‘선물정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키노 기자는 최근 북한에서 사상교육의 효과가 줄어들고, 공포 정치의 비중이 커지는 가운데 북한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김정은 총비서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확산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그래서 김정은 총비서는 이런 반감을 줄이기 위해 벤츠 같은 선물을 (간부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에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1718호에 따라 ‘호화사치품’에 대한 대북유입을 금지했으며, 2013년 3월에 채택한 안보리 결의 2094호에서는 사치품의 범위를 ‘고급승용차’와 ‘요트’ 등으로 확대했습니다.

“북∙중 간 환적 통해 사치품 불법 유입”
사치품 유입 금지에 관한 유엔 대북제재에도 해외 고급 승용차는 북한에서 여러 차례 목격됐습니다.
2018년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당시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마이바흐 S600’과 ‘마이바흐 62s’ 등을 이용했는데, 이를 두고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명백한 제재 위반”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9년에는 김 총비서가 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일본 차량인 ‘렉서스 LX570’을 탄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또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이 작년 10월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관리들이 일본 ‘미쓰비시’사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파제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실제로 올해 2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영상에서 김 총비서의 경호원들이 ‘파제로’로 보이는 차량을 이용하는 장면과 함께 김 총비서가 딸 김주애와 함께 벤츠 차량에 탑승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7월 1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북한 강원도 원산에 있는 김 총비서의 전용 별장 인근에서 다수의 호화 요트와 유람선 등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고급 승용차를 비롯한 사치품을 유입하는데는 중국이 역할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북중 간 해상밀수는 사실상 중국 당국의 묵인 하에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도 RFA에 “북한은 ‘선박 대 선박’의 환적 방식으로 유엔 대북제재를 지속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미국의 추가 제재 등 후속 조치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해상 운송은 북한의 합법적, 불법적 무역능력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의 민간연구기관인 C4ADS, 즉 ‘선진안보연구소’의 앤드류 볼링 동북아 담당 연구원도 최근(8월 3일) RFA에 “중국이 북한 상품을 구매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김정은 정권과 북한 경제에 중요한 생명줄을 제공하는 요소”라고 지적하면서, “북한 선박은 최근 몇 년 동안 일상적으로 중국 해역에 진입해 항구에 기항하거나 중국 영해의 소형 선박에 하역하는 방식으로 화물을 교환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처럼 사치품이 비싸면 비쌀수록 제재 회피 방식이 더 복잡해졌고, 사치품을 들여오는 사람들은 북한 정권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게 선진안보연구소 측의 분석입니다.
또 전문가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김 총비서의 고급 승용차를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유엔과 미국 등이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용지물이고, 추가적인 대북제재도 효과가 없을 것이란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란 설명입니다.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고, 북한 선박의 불법적인 해상 활동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북∙중간에 은밀한 거래가 계속되는 한 북한의 사치품 수입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