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터뷰] “북 젊은 여성들, ‘나의 행복’이 우선”
2024.03.07
앵커: 최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직접 언급할 만큼 북한에서도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상담심리 전문가로 다수의 탈북민을 상담해온 오은경 박사는 장마당 세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MZ세대) 여성들이 외부 정보와 장마당을 통해 자본주의를 알게 되면서 출산으로 인한 어려운 삶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그는 어릴 적 어렵게 사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북한 여성들 내면에 ‘생존의 욕구’가 커지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저출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담에 서혜준 기자입니다.
“젊은 세대 탈북민도 결혼과 출산 기피”
[기자] 오은경 박사님, 반갑습니다. 요즘 북한에서도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박사님께서 젊은 탈북 여성들에 대한 심리 상담을 하시면서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나요?
[오은경] 네. (탈북한) 젊은 세대들을 만나보면, 이미 정보를 많이 알고 오더라고요. 한국 등의 상황에 대해 워낙 많이 알고 있고, 또 서로 정보를 공유하니까 (한국에서) 적응도 빠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보를 안다는 것은 다양한 자극을 받게 된다는 건데, 그들이 북한에만 있다가 중국이든 다른 매체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상황에 대한 흐름과 시야도 확대되니까 그들이 본인의 처지나 상황을 판단하는 것도 약간 다릅니다. 정보를 안다는 것은 사실 자본주의에 대해 알고 깨우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가 상담한 40대 탈북민은 은행에 어떻게 가고, 카드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등 일상적인 것을 물어보는데, 요즘 20~30대만 해도 정보를 얻는 매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도 잘 알고 있는 거예요. 어떤 젊은 탈북민 경우에는 계속 북한이든 중국이든 고생만 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으로 인한 엄청난 혜택이 있지 않는 이상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편하고 즐겁게,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싶은 기대와 희망을 갖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기자] 그렇다면 북한에서 억압당했던 자유를 되찾으면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더욱 표출되는 심리적인 영향이 있는 건가요?
[오은경] 그럼요. 일단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경험을 하지만, 상담심리 쪽에서 보면 저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고 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 다음으로 ‘안전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등이 있어요. 탈북민들이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면서 계속 억압당했는데, 다시 돌이켜 보니 ‘내가 너무 억압되고 옥죈 삶을 살아왔네,’ ‘옆동네에 살던 동네주민이 한국 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소식을) 물어보니까 나의 북한 삶과는 전혀 다르네, 그게 가능하다고?’ 싶은 거죠. 이런 이상적인 모습들을 보는데 그것이 USB를 통해 몰래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이 아닌 거예요. 드라마에서 접한 내용이 이미 탈북한 가족, 친척을 통해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식 변화가 나타나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들도 같이 발현돼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 장마당 세대, 고생하는 부모 통해 삶의 가치 형성”
[기자] 실제 한 젊은 탈북 여성은 ‘어머니처럼 고생하며 살기 싫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생각의 변화가 결혼과 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오은경] 네,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장마당 세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을 보면 “고립되고, 힘들고, 굶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봤을 때 엄마가 장마당에서 열심히 일을 해도 내가 배부를 만큼 먹을 것을 얻지 못했어요. 엄마가 고생했지만, 나는 배고픔을 계속 느끼고 있는 거죠. 그 아이가 성격이 발달하고 어른이 됐을 때 이런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발달 과정에서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고, 엄마는 고생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습득하고 경험하면서 삶의 가치가 되고,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고난의 행군’이 1990년대 초반부터 나타났잖아요. 그러면 90년대생들이 지금 20대 중반에서 30대의 청년인 거예요. 그런데 장마당을 경험한 그들에게 북한이 사회주의에 대한 이념이나 사상 교육을 세뇌시켜야 하는데, 교육 과정 등이 많이 무너지면서 북한이 그들에 대한 세뇌 교육을 시킬 시점을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념이나 사상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성장했는데, 장마당을 통해 부모님이 배급 없이 먹고사는 것을 보고 돈이 주는 안정감, 편리함, 그리고 (돈이 없을 때 느끼는) 불편함 등을 다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8~10살만 돼도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데 아마 그런 유년 시절이 뼛속까지 괴로웠던 기억으로 저장돼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상 교육을 한다 해도 나라에서 챙겨주거나 보살펴주지 않았고, 그들이 스스로 살아왔기 때문에 (북한은) ‘도움이 되지 않은 나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출산하는 것도 망설여지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보다 내가 먼저 돈을 벌고 나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는데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한국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요. 저출산과 관련해 한국과 북한의 다른 점 또는 비슷한 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오은경] 한국이든 북한이든 출산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사실 사회의 중요한 경제구성원으로서 일을 해야 되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한국의 MZ세대들을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이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정보통신 세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정보를 알고, 더 괜찮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거죠. 또 그들의 부모님 세대는 경제성장기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취업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력하면 다 된다’라고 젊은 세대에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녀 세대들은 지금 단군 이래 최대 스펙(실력)이 있다고 하지만, 전 세계가 경제 침체기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하고 자격증을 따도 내가 원하는 제대로 된 일자리에 들어가는 게 거의 바늘 구멍 같다는 호소를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준비한 노력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결실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무기력감도 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렇게 견뎠는데 그에 따른 결과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거예요. ‘이렇게 고생하고 어려울 바에야 지금 나에게 당장 만족스럽고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하자’라는 ‘욜로(YOLO)’적인 삶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볼 때 북한이든 한국이든 젊은 세대가 외부 정보들을 통해서 성장해왔고, 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돈이 주는 삶의 편리함도 경험했고, ‘나의 행복’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북 저출산 문제, 더 심각해질 것”
[기자] 북한 당국이 교양 사업과 사회적 통제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같은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시나요?
[오은경] 장마당 세대인 젊은 북한 사람들도 사실 고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정보를 통해 어떤 삶이 잘 살고 못 사는지, 북한과 한국에 대한 현실 등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한평생 고생한 엄마가 지금 잘 살고 있느냐를 보면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엄마가 한평생 나를 키우느라 고생했고, 지금 이렇게 나이들어가는데, 코로나 대유행 이후 경제적 어려움은 더 커지면서 형편이 나아질 틈이 없는 것을 보니까,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게 되는 거죠. 저출산 문제도 북한에서는 변화라고 할 수 있거든요.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코로나 상황일 때는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국가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개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되고,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실제로 최근 한국 통일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MZ세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박사님은 앞으로 북한의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오은경] 네. 저출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조금이라도 출산을 하며 지내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혼자니까요. 가족과 함께 온 탈북민 중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해야겠다는 인식이 있어요. 실제로 제가 만났던 한 청년도 “가족을 구성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부모님으로부터 “결혼은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중) 혼자 사는 분이 60% 이상인데,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는 게 좋죠. 가족과 함께할 때 갖는 심리적 위안도 크거든요. 따라서 한국 사회가 탈북민을 구성원의 하나로 포용하기 위해서 선입견이나 편견을 내려놓고 개인의 발달 과정인 결혼이나 출산 등을 잘 해갈 수 있는 문화나 경제적인 여건을 잘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네,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상담심리 전문가 오은경 교수와 여성 탈북민이 생각하는 결혼과 출산에 관해 짚어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