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쌀 시장거래 통제’로 식량난 악화
2023.03.10
앵커: 최근 북한 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쌀 거래까지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릿고개를 앞두고 북한이 올해는 수입한 식량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식량을 수입해도 이에 대한 분배의 비효율성과 지나친 시장 개입 등이 오히려 식량난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 농업 실패에 “하늘 탓, 땅 탓 아니고 일꾼들 탓”
최근 북한 관영매체들이 농업 관련 기사에 대한 비중을 대폭 늘렸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지난 8일 1면 기사에서 “밭을 논으로 바꾸고, 올곡식을 심자”며 식량 생산 증대를 독려한 데 이어 조선중앙텔레비전도 지난 7일 당 제8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문헌을 당 조직에 배포했다고 보도하며 농업 일꾼들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당 조직원] 이번에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모시고 진행한 당 제8기 제7차 전원회의에 참가해서 지난해 농사를 잘 짓지 못한 죄책감으로 일꾼으로서 모두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전원회의에서 하신 그 연설 구슬 구슬을 받아쓰면서 우리 일꾼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얼마나 크고… .
또 지난 9일 자 노동신문에서도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결코 땅 탓, 하늘 탓이 아니다”라며 “한 해 농사를 당과 국가 앞에 전적으로 책임진 농업 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의 정신력에 달려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올해 농사 준비철이 다가오면서 적극적인 ‘농업 전투’를 지시하는 것은 이전과 다르지 않지만, 농업 성패에 대한 책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가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해 농업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이는 농업 일꾼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강경한 자세를 취한 겁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농업 전문가들은 북한 자체적으로 식량 생산량이 부족할뿐 아니라 경제 활동 위축, 화폐와 시장거래 품목의 통제 등으로 올해 식량난은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8일) RFA에 “현재 북한의 평년 식량 생산량이 필요한 수요량 (쌀 560만 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약 100만 톤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난해 가뭄과 폭우로 곡물 생산량이 하락해 봄철 식량 부족과 물가 상승은 충분히 예고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도 (9일) RFA에 올해에는 북한이 식량 수요와 공급 두 가지 모두 위기에 직면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 되리라 전망했습니다.
[권태진] 이제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주민들의 소득이 많이 감소했죠. 공장과 직장이 제대로 가동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배급을 못 받는 데다가, 이에 따라 시장에서 더 많은 곡물을 구입해야 할 상황인데 그간 경제활동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이수아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씨는 (2일) RFA와 한 통화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마주할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수아] 항상 변혁을 가져온다면서 시작은 일단 “인민 생활을 위해서 한다”고 간판은 달고 하는데 농업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 주민들이고, 권력을 가진 간부들이 (결과물을) 많이 가져갔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정작 혜택을 못 받는 것 같아요.
시장 거래시 ‘물품 출처 확인 서류’까지 요구… 시장 위축 불 보듯 뻔해
올 들어 북·중 국경이 조금씩 개방되는 분위기지만, 북한 시장 통제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민 출신의 손혜영 ‘나타샤인권협회’ 대표는 (1일) RFA에 최근 북·중 국경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과 통화에서 “여전히 소금, 기름과 같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손혜영] 소금, 기름 이런 것은 기본이죠. 소금 같은 것이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잖아요. 이런게 많이 부족하죠.
지난해 북중 화물열차 재개 이후에도 식량 사정이 국경봉쇄 때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북한이 작년 10월부터 연말까지 석 달 동안 비교적 많은 양의 쌀과 밀가루 등 곡물을 수입했지만, 식량 가격 수준은 여전히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권태진] 특히 쌀이 꽤 많이 수입됐습니다만 그런데도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가지고 있는 재고 수준이 워낙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해도 전체 소요량과 비교하면 수입된 양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시장 곡물 공급량이 예년에 비해서 적은 상황이라 지금 물가 수준이 꽤 높은 상황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수입한 쌀이 주민 배급이 아닌 국가사업에 먼저 쓰이고 있다는 데서 원인을 찾습니다.
김혁 선임연구원은 “북한 당국 주도하에 수입한 곡물들은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주요 건설 과업에 공급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평양 화성지구 2단계 새거리 건설에 동원된 자원진출만 10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먹일 양곡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장 활동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개입도 식량난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대표는 (2월 27일) RFA에 양강도와 함경북도 등 북한 내부 취재협조자들에게 확인해 보니 북한 당국이 쌀 등을 시장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출처 확인 서류까지 요구하고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국가가) “많은 양을 거래하지 말라”, “조금씩 팔아라”고 지시하며 판매하는 업자에 대해서는 “쌀을 어디서 입수했냐”며 출처 확인 서류까지 요구합니다. 공식적인 입수 경로가 아니면 몰수까지 당합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이 때문에 상인들도 거래할 수 있는 양이 줄고 이윤이 절감되면서 아예 장사를 접는 사람들도 늘었다면서 국가 우선 공급 정책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원래는 수입한 물건을 마음대로 판매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국가 하라는 대로 수입하고 국가가 정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공급합니다. 국가는 (필요한 쌀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아요. 정부가 이 상황을 걱정하지도 않고, 이는 경제 정책 우선순위에서 떨어진 상황이니까 당분간 이런 형태가 지속될 거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리라 권태진 원장은 지적했습니다.
[권태진] 북한 당국이 시장에 많이 개입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곡물도 시장에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곡물이라도 시장에 바로바로 유통될 수 있도록 시장 통제를 줄여야 하고요. 시장 통제를 줄이고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일반 주민들이 시장을 통한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해서 주민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북, 올해 수입 식량에 의존해야할 듯
이미 북한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곧 보릿고개가 다가오면서 올해 식량난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자체적으로 생산량 확보에 나서기보다 수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합니다.
김혁 연구원은 “곡물 부족 시기가 앞당겨져 곡물 가격이 앞으로 더 상승할 수 있고 자체 생산량 확보만으로는 주민들 간 식량 문제가 더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권태진 원장도 자체 생산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식량난을 극복하기는 역부족이라며, 특히 주민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 위주로 수입해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사회적 통제를 앞세우는 한, 시장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권태진]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먼저 풀려야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어느 정도 완화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조미료, 식용유, 설탕 같은 것들이 시장에서 주로 많이 유통되는 품목이기 때문에 이런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수입함으로써 주민들의 식생활 문제도 해결하고 또 시장 활동을 통해서 주민들이 돈을 벌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한 물건부터 먼저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식량 부족의 원인 두고 북한 당국은 당 일꾼들과 조직원들의 노력 부족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전문가들은 당국의 지나친 시장 통제와 식량 분배의 비효율성을 꼽는 가운데 올해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