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트라우마 ‘심각’...심리 상담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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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트라우마, 즉 심리적 외상은 끔찍한 경험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뜻합니다. 북한에서 시작된 이러한 경험은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성폭력 그리고 급기야 죽음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탈북민의 트라우마는 더 깊어집니다. 탈북민들의 새 삶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탈북민 정착 과정에서 심리상담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심리상담을 통해 탈북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천소람 기자가 탈북민 상담심리 전문가와 탈북민을 직접 만났습니다.

“탈북민을 위한 상담가”

[오은경]아주 우연한 기회에 북한이탈주민을 만났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였는데요. 그 사람이 처음에 자신을 조선족이라 밝히더라고요. '그런가 보다'하고 말았죠. 끝 무렵에 사실 자신이 북한이탈주민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띵'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 전문가로 여성 탈북민들을 상담해온 건양대학교 오은경 교수. 2016년 우연히 한 탈북민을 만나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모두 각기 다른 경험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 탈북민이지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듣는 탈북민의 경험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오은경]그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들이 사실 엄청난 일들입니다. 너무 잔인하고 가슴 아픈 일들도 있기 때문에. 같은 여성이고 같은 엄마로서 경험이 있잖아요. 때문에 탈북민을 만날 때 그들이 경험한 상실과 아픔들을 조금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다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2007년 1차 탈북해 중국에 정착했지만 한 번의 북송을 겪고 2015년 마침내 한국에 정착한 30대 탈북민 손명희 씨. 탈북 과정에서 경험한 인신매매와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 문화 차이는 손 씨에겐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손명희]북한에서 삶은 힘들었어요. 삶이라는 게 사실은 여기와 같진 않잖아요.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오잖아요. 그 과정에서 내 생각과 뜻대로 안되는 거에요. 북한에서는 이렇던 저렇던 장사를 하고 살았는데 탈북을 해서 중국에 가니 언어가 안 통하고, 언어를 배웠다고 (해도) 생활문화가 다르니 엄청 힘든 거죠.

탈북민의 트라우마는 북한에서 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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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oung girl looks out as group of North Korean asylum seekers depart for a courthouse from the Chiang Saen police station in Thailand's Chiang Rai province 2007년 5월, 태국 치앙라이 지방 경찰서에서 한 무리의 탈북자들이 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Reuters (Adrees Latif/REUTERS)

심리적 외상, 즉 트라우마는 끔찍한 경험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뜻합니다.

북한이탈주민 같은 경우, 북한에서부터 인권유린에 노출돼 있습니다.

[오은경]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은 대부분 인간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노출된 사건들을 경험하고, 때문에 더 만성적이고 더 심각하다고 보게 되는데요. 북한이라는 체제 자체도 이 사람들을 굉장히 취약하게 만드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강제처형을 목격하고 폭력에 쉽게 노출된 이들의 트라우마는 탈북 과정에서 더 깊어집니다.

[오은경]탈북 과정, 제 3국을 통해서 넘어오며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 등 개인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하잖아요. 계속해서 두려운 경험을 많이 한다던가, 공포스러운 정서를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들 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하는 것들이거든요.

이러한 외상에 반복적으로 노출 될수록 이들의 경험은 개인의 삶에 더 큰 후유증을 줍니다.

탈북민 상담 필요하지만 거부감 큰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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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ned North Koreans escorted by Thai police to court in Bangkok 2006년 11월, 랑싯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탈북자들을 태국 경찰이 법원으로 호송하고있다. / Reuters (Sukree Sukplang/REUTERS)

한국과 다른 체제와 탈북 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 때문에 상담이 누구보다 더 필요한 탈북민이지만, 그들을 상담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은경]일단 북한이탈주민에게 상담을 하려고 하면 처음엔 관심을 두지 않고, 무슨 상담이냐는 인식으로 봅니다. 상담 자체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상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기도 합니다. 상담 자체가 낯선 거죠.

손명희 씨도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손명희]북한 사람들이 심리 교육을 받으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든요. 심리면 정신 쪽이니까, 정신병이 아닌데 왜 받냐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근데 그게 아니잖아요.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거고 그걸 누구한테 이야기 하는게 중요한데, 그걸 못하니까 누구 말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 거죠. 북한 사람들만 계속 만나고….

힘들게 마음을 먹고 심리 상담을 진행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은경]그들은 사실 북한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중국에서도 신분의 보장이 없기 때문에 계속 숨어 살거나, 자신을 드러내면 안되잖아요. 제 3국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북한에서부터 남한에 오기까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던 경험들이 이 사람들은 없는 거에요.

보이스 피싱 당한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 까지

2015년에 한국에 들어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하며 열심히 정착의 토대를 다지던 손 씨에게 2019년,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보이스 피싱, 즉 전화 사기를 당한 겁니다.

[손명희]보이스 피싱이라는 걸 당해서 4천만원 상당을 잃었어요. 그 점이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장사를 했거든요. 2017년부터 장사를 했는데, 보이스 피싱은 2019년에 당했습니다. 정착을 아직 못한 상태에서 보이스 피싱을 당한 거죠.

중국인 남편과 함께 세명의 아이를 부양하고 있는 손씨. 예상치 못한 보이스 피싱 사기에 힘들어 하던 중 심리상담을 받게 됩니다.

[손명희] (제도를) 잘 모르면 파산해야 하는지, 회생해야 하는건지 잘 모르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심리적으로 고통 받았고,….

전화 사기를 겪은 후,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은 손 씨. 하지만 심리상담을 통해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손명희]내 속안의 것을 누구에게 말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걸 이야기 할 때는 정말 믿는 사람이 아니면 말을 안하거든요. 교수님이 우리 안에 있는걸 조금씩 끄집어 낸거죠. 거기에서 우리는 아 이 사람에게 말하면 편안 하구나, 이런걸 느끼게 되는 거죠. 또, 교수님 집에 초대를 해서 와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하자 하거든요. 교수님과 밥을 먹고 경치 좋은 곳 가서 이야기 나누고 하는 거죠. 처음에는 다른 말 하다가 점점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거죠. 그러다 보니 너무 편안했고, ….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많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손씨.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손명희]상담 전에는 정서적으로 제정신 아닌 사람처럼 살았어요. 지금은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고, 바른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상담을 받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내가 정서적으로 힘들 때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지금 상담 받은 후는 아이들과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사랑을 줘야하는지 안거죠. 그래서 그 전과는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고) 많이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사회복지 (자격증을) 2급을 취득했습니다.

그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남을 돕고 싶다고 말합니다.

[손명희]앞으로 사회복지 분야로 취직해서 남을 돕고 싶습니다. 사회복지를 선택한 이유는, 제가 다문화잖아요. 지금 우리 나라에 다문화도 많고 지금 독거노인도 많잖아요. 북한 사람들이 거의 혼자 오고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은 몇명 없으니까. 그런 분들을 돌봐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아직도 심각한 인권 유린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여성이지만 여전히 소외되고 관심이 부족한 북한 여성 인권의 현 상황.

북한 체제와 탈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하는 그들의 심리적 외상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