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남북∙미북관계 큰 걸림돌 아냐”
2021.08.03
앵커: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온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최근에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까지 압박에 가세하면서 남북은 물론 미북 간 민감한 문제로 급부상했습니다.
하지만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미북∙남북 관계 진전에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거란 전문가들의 견해가 적지 않은데요. 오히려 한국의 대북지원을 바라는 북한이 절제된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미연합훈련, 예민한 문제로 급부상
“지금과 같은 중요한 반전의 시기에 진행되는 군사 연습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 흐리게 할 수 있다”라며 지난 1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놓고 한미 양국을 압박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애초 한미군사훈련이 예정된 8월에 접어들면서 훈련 여부와 시기, 규모 등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북한 당국의 노골적인 반대 의사도 분명해지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이 미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대북적대시정책’의 철회를 내세웠고, 그중 하나로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만약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반발도 작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국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북한이 원하는 ‘대북적대시정책의 철회’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에 미북 대화의 재개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정세현 수석부의장 (5월 26일)] 북한이 가장 큰 적대시정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미연합훈련입니다. 북한은 미국이 확실하게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는 메시지는 안 보냈기 때문에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봅니다. 그래서 북한이 싫어하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면 금방 접점이 생길 겁니다.
아직 연합훈련의 시기와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 7월 27일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고 소통의 작은 물꼬를 튼 상황에서 한미연합훈련은 예민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 부부장까지 전면에 나서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결정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미연합훈련 이후 미북∙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입니다.
“한미연합훈련, 미북∙남북관계 진전에 큰 걸림돌 안 될 것”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해도 미북∙남북 관계의 진전에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거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이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에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한미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이 이행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전체 판을 깨지 않은 것처럼, 이번 8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비판은 하겠지만, 미북∙남북관계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장애물(obstacle)은 아니라는 겁니다.
미 국방장관실 선임보좌관을 지낸 프랭크 엄 미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도 (8월 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역사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이 미북 대화의 장애 요인은 아니었다며 축소된 형태라도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되는 것을 불쾌해하겠지만, 미북 대화 재개에 있어 중요한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오히려 코로나19 대유행 가운데에서도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는 자신감, 미북 대화를 위한 미국의 지속적인 신호와 유연성이 더 중요한 요인이란 게 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도 (8월 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은 매년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미연합훈련 재개 여부와 관계없이 줄곧 미국과 한국의 대화 제안을 거부한 쪽은 김 총비서이기 때문에 더 큰 걸림돌은 북한이라는 게 베넷 연구원의 지적입니다.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 오히려 걸림돌은 북한이었습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했을까요. 이는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한미 양국을 압박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또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평화적 남북관계를 염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한미연합훈련을 놓고 한미 양국이 어려운 협상을 하게 해서 동맹에 상처를 입히길 원하고 있습니다.
마크 토콜라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부소장도 자유아시아방송에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이 수십 년 동안 반대해왔지만, 정작 북한이 외교에 나설 때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면서 8월에 훈련이 재개된다 해도 미북∙남북 관계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토콜라 부소장은 만약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북한이 도발에 나선다면 이는 국내 또는 대외 관계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북한 나름의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도 자유아시아방송에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돼도 북한이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고강도 군사도발은 자제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 북한은 요즘 국내문제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외교나 군사 분야에서 적극적인 전략을 전개할 여유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중국에서 식량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북한이 군사도발을 한다면 식량 지원 명분을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도발한다 해도 중국이나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돼 진행됐지만, 북한은 자체적인 군사훈련을 이어가며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은 점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도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연합훈련에 대한 북 반응으로 내부 상황 엿볼 수도”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대로 재개되면 북한의 반발과 함께 대화 재개의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북한이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건 ‘대북적대시정책’의 철회, 즉, 한미연합훈련 취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도 미북∙남북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 총비서가 통신연락선 복구를 요청할 만큼 남북 관계의 판을 깨지 않았고,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직접 비난하지 않은 만큼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습니다.
베넷 연구원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응으로 북한 내부상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북한이 연합훈련에 대해 절제된 반응을 보인다면 오히려 한국의 대북지원을 기대하는 것으로 봐도 좋다는 겁니다.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 물론 북한이 거친 언사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겠지만, 북한의 반응을 통해 북한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만약 북한이 심하게 반발하지 않는다면 대북지원을 간절히 바라는 겁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아마 북한도 이를 기대할 겁니다. 따라서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통해 북한 내부 상황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를 축소하고, 물밑 접촉을 통해 북한에 대화 의지를 계속 전달한다면 시간이 지난 뒤 남북 관계 개선에 이어 미북 대화의 접점도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편, 한미 국방부는 8월 3일 현재까지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시기와 규모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