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 “대북제재 효력 과대평가 돼”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19.10.10
nk_diplomat_sweden-620.jpg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 북한 대표단이 6일(현지시간) 숙소였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을 나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앵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재개된 미북 실무협상 결렬의 배경으로 미국의 제안이 북한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로우 볼’ 오퍼, 즉 하찮은 제안이었기 때문이라고 헨리 페론 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설명했습니다.

페론 박사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간극이 명확한 상황에도 미국정부가 북한이 탐탁지 않게 받아들일 만한 계산법을 내세운 이유로 미국의 내부정치 상황과 대북제재의 효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그는 다만 섣부른 미북 간 관계정상화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핵보유의 필요성을 상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덕인 기자가 페론 박사와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기자: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재개된 미북 실무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어떤 간극이 이번 협상의 결렬을 초래했다고 보시나요?

헨리 페론 국제정책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 선임연구원.
헨리 페론 국제정책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 선임연구원.

헨리 페론: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면서 미북 간 잠정합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었습니다. 볼턴은 비핵화 방법론과 관련해 과거 리비아 사례나 북한의 정권 교체를 언급하며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해임됐다는 사실은 미국의 대북정책의 틀에 변화가 있을 거란 신호로 더 큰 미국 측의 유연성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다만 미국이 북한과 잠정 합의를 이루기 위해 어떤 협상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는 불확실한 측면이 없지 않았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번 실무협상에서도 양측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미북실무협상에 앞서 (미국의 인터넷 매체) 복스(VOX)가 미국이 이번 실무협상에서 내놓을 새로운 안이라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 검증과 추가 조치를 내놓는 대가로 석탄 및 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보류할 것이라고 주장한 보도와 유사한 제안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제안은 북한이 하노이에서 미국에 요구한 바에 한참 못 미치는 것입니다. 또 당시 북한은 하노이에서의 공개한 그들의 입장이 마지막 제안(final offer)이라고 못 박기도 했었죠.

이번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북한에 정확히 무엇을 제안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 미국이 들고나온 협상안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하찮은 제안(low-ball offer)’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생각되며, 향후 미국으로부터 더 큰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결렬을 주장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기자: 로우 볼 오퍼 즉, 북한이 보기에는 하찮은 제안을 미국이 제시했을 가능성을 언급하셨는데, 미국이 그러한 제안을 하는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나요?

헨리 페론: 국내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북제재 효력에 대한 과대평가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대북제재로 인한 압박을 못 이겨내고 미국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이미 잠정결론을 내버린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북한이 핵역량을 완성하고 어느 때보다 협상력이 강한 시기가 지금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협상장에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북한은 나날이 한국과 미국에 공개적인 불만을 나타내며 도발을 이어가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이번에 제시한 협상안은 애초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공동합의문에 명시된 사안들에 비해 범위가 훨씬 좁은 것들이기 때문에 북한이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 공동합의문은 관계정상화에 대해서도 명시했지만 이러한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핵역량을 토대로 한 강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임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반대로 시간이 갈수록 작은 규모의 제안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도 간극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상응하는 개념인 CIWH, 즉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적대시 정책 철회를 가지고 나와 관계정상화를 주장했다고 알려졌는데요. 현시점에 미국이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꺼리는 이유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헨리 페론: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이 북한과 관계정상화한다면 아시아에 주둔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주장인데요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엔이 남북이 분단된 후 미국의 관여를 허용했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라고는 하지만 그 이후로 한미 양국 간 여러 안보 협약이 체결됐음은 물론 중국의 부상도 있었던 만큼,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도 미국의 주둔은 합리화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현 시점에 북한과 관계정상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북한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인데 사실 한국이나 일본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하나로 핵무장을 고려하기에 충분합니다. 또 한국의 보수진영에서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제기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죠. 사실 이러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기존 핵보유국들이 핵을 폐기하겠다는 사전 합의를 지켜오지 않았기 때문인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또 세계 역사상 무려 30년간의 제재를 버티며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완성한 사례가 북한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좋지 않은 전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핵확산은 이제 세계적으로 불가피한 사안이 돼버렸습니다. 지구가 계속해서 돌아가듯이 핵역량에 대한 독점지위(nuclear monopoly) 또한 영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더이상 미국은 세상 모든 곳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며,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강요하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북한의 위협을 경감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북한의 핵역량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기보다는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을 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관계정상화가 없다면 북한은 기술의 신뢰성을 겸비한 핵역량을 구축해 미국에게 위협이 될 핵무기개발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은 향후 협상에서 더 상세히 논의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 미국 내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로 상당히 시끄러운데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내부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북핵협상에서 북한에 유리한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헨리 페론: 미국의 내부 정치적 상황이 북한에 어떠한 지렛대를 제공해 비핵화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제공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트럼프를 계속해서 옥죄는 분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측에 제시할 수 있는 협상안의 범위, 즉 협상에서의 유연성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합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트럼프가 탄핵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실제로 탄핵 표결이 진행된다 해도 과반수가 탄핵에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공화당 지지세력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말씀하신 바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압박으로 인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북한에 과도한 양보를 해 외교적인 성과를 취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는데요.

헨리 페론: 네 물론 그런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간에 민주당 측은 트럼프에 대한 공격을 이어 나갈 것이고,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히 다르게 행동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기자: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대부분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이 대북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언론에 밝혔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헨리 페론: 대부분의 후보는 북한과 대화를 이어나갈 것을 지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볼 때 민주당 후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뛰어넘을 계획이 딱히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현직에 있었을 당시에도 북한과 관련해서는 많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죠.

기자: 미북협상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나갈 거란 전망도 이어져 왔는데요 북한이 중국과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요?

헨리 페론: 현재 중국에 대한 북한의 목표는 지금까지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며 중국이 추가 제재조치를 막거나 원조를 중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텐데요.

마침 중국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미국을 위협으로 경계하는 인식이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중국을 대놓고 경쟁자로 선포하며, 테러와의 전쟁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인해 앞서 미국에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중국 내 목소리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무역전쟁으로 인해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인식이 더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이 홍콩사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 지도 중국을 자극하는 사안 중에 하나이죠.

미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중국 내에서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분명 북한을 이러한 점을 이용하려 들것입니다.

제 생각에 중국은 북한의 제재회피를 도우며 뒤에서 돕고 있다는 의혹을 피하고자 드러나는 관여를 자제하며 당분간은 중립적인 태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북한의 최근 도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어떻게 보시나요? 중국도 북한의 이어지는 도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헨리 페론: 중국은 계속해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키며, 미국에는 이른 시일 내에 어떤 합의를 이루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중국 정부는 미국이 그다지 북한과의 협상에 진지하지 않다고 믿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 보입니다.

더불어 중국은 1970년대에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했기 때문에 미국에 왜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꺼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현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중국이 북한을 곁에 두려는 이유는 혹시라도 미중 갈등이 심화해 군사적 대립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이때 중국은 북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군사력은 그들의 경제력에 비교해 매우 값싼 수비대(cheap garrison fleet)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페론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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