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로 미북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친서만으로는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이루기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도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실무진 건너뛴 친서 외교의 한계
- 하노이 회담 이후 반복된 두 정상의 친서 교류
- 실무회담 제안에는 한 달 넘게 답 없더니…
- 김 위원장의 친서, 긴 침묵 깬 대화 메시지라지만…
- 실무진 건너뛴 정상끼리 소통도 문제
미국의 한 전직 행정부 고위관리는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밝힌 이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계속된 미북 간 교착 국면에서 두 정상의 친서 교류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1차 싱가포르, 2차 하노이 회담처럼 두 정상의 친서로 시작된 협상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편지를 '예상치 못했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좋은 편지'로 표현하며 앞으로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개인적 친분을 앞세운 정상회담의 한계를 이미 두 차례나 경험했다는 것이 이 전직 관리의 평가였습니다.
실무진(working level)을 건너뛴 미북 간 소통방식도 궁극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최근(4일) 실무회담을 위해 지난 4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앞으로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실무진을 뛰어넘어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직접 전달된 김 위원장의 친서가 미북 간 비핵화 협상에서 과거의 한계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겁니다.
워싱턴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한미경제연구소의 마크 토콜라 부소장은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실무회담의 재개에 앞서 반복되는 친서 외교의 문제점에 동의했습니다.
토콜라 부소장은 친서의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여전히 미북 대화에 관심이 있으며 언젠가 침묵을 깨고 다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두 정상이 비핵화의 내용과 검증 체계, 일정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협상할 시간이나 기술적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양측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사전 실무협상이 더 중요하다고 토콜라 부소장은 강조했습니다.
[마크 토콜라]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비핵화 합의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나 일정 등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의미 있는 비핵화 합의가 되려면 비핵화에 관한 검증, 일정, 재고 등에 관한 복잡한 문건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두 정상이 마주 앉아 들여다볼 수 없죠. 그래서 실제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실무협상이 시작돼야 하는 겁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도 분명치 않은 가운데 이번 친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마키노 요시히로 한반도 담당 편집위원도 미국과 북한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실무차원에서 서로 어떤 양보를 할지 확인도 못 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만으로 두 정상이 다시 만날 수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보냈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북한은 역시 미국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북한이 진짜 양보할지 안 할지 실무차원에서 확인도 못 하는 상황에서 역시 두 정상이 다시 만나는 상황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CNN방송도 지난 12일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친서에는 비핵화 대화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고 보도하면서 이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재설정하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습니다.
8번째 친서 외교…결국은 실무회담이 '키'
- 일 년 전부터 최근까지 8번 친서 주고받아
- 고비 때마다 돌파구 됐지만, 근본적 해결에는 한계
- 친서만으로 비핵화 진전은 무리, 결국 실무협상이 관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 주고받은 공식적인 친서는 이번에 8번째입니다.
일 년 전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6월 1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음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두 정상의 친서는 교착 국면마다 돌파구를 만들고 미북 대화를 유지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 12일, 1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과 한 비공개 회동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이번 친서를 계기로 최소한 미북 간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친서가 전달됐어도 3차 정상회담이 열리고 비핵화 대화가 진전을 이루려면 결국, 실무회담이 재개되고 사전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미북 양국이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개최했지만, 여전히 핵심의제인 비핵화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을 때라는 것이 토콜라 부소장의 지적입니다.
[마크 토콜라] 제가 볼 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이 없으면 트럼트 대통령은 3차 미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이 있죠.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비핵화 제안을 받거나 아니면 실무회담을 통한 합의가 그것입니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죠. 따라서 실무협상을 통해 두 정상이 서명할 수 있는 합의안을 이끌어내던지, 아니면 실무회담 이후 구체적인 비핵화 제안을 하던지, 결국 실무진이 만나야 합니다.

실무협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때에 두 정상의 친서로만 소통을 재개하는 상황에 대해 피로감을 토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은 여전한 신뢰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대북제재의 완화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미북 양측이 서로 양보하지 않은 현 국면에서 친서를 계기로 3차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실무협상의 진전이 없다면 과거처럼 모호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합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