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대북제재의 완화를 요구하고,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며 팽팽히 맞설 정도로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이 받은 경제적 타격은 큰데요.
반면, 일반 북한 주민의 생활은 대북제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1년 넘게 물가도 안정세를 보이고, 북한 주민도 '먹고살 만 하다'고 말하는데요. 환율의 안정과 시장 활동의 역할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오래 지속할수록 오늘날 북한 시장이 보여준 자생력은 돋보였다는 평가인데요.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 지난 8~9월 북∙중 국경지방, 주민 경제 나아져 보여
-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강화됐는데, 경제는 왜 더 좋아졌을까?
- 제재국면에서 북한 시장 물가도 1년 넘게 안정세
- 제재가 인구 전체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
지난 8월 말과 9월 초, 북∙중 국경지방을 다녀온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최근(10월 18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대북제재 국면에도 일반 북한 주민의 경제생활은 더 좋아진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집이 더 많아졌고, 주민의 영양 상태도 좋아졌는가 하면 거리의 자동차도 늘어났다는 겁니다.
이 같은 모습을 함께 목격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더 강화됐는데, 왜 북한 경제는 더 좋아지고 있을까?'에 대한 토론회가 열릴 정도였다고 이 센터장은 덧붙였습니다.
[이성현 센터장] 열흘 정도 북∙중 국경 지역을 다녀왔는데, 제가 2년 전에도 갔었습니다. 지금은 최대압박의 대북제재 국면이고 중국도 협조했습니다. 북한 경제의 숨통은 더 조여졌는데, 중국 쪽 국경을 따라가며 관찰한 것은 북한 쪽 경제가 더 좋아졌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대북제재로 경제는 더 조이고 있는데, 왜 내부적으로는 북한 경제가 더 잘 되고 있을까?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22일 공개한 함경북도 두 곳의 북한 시장 물가 현황 역시 쌀과 옥수수 등 식량 가격과 환율 등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쌀 1kg에 4천700원대로 한 달 전(5천490원)보다 약 800원 가까이 내렸고, 중국 위안화 당 북한 돈 환율도 1천220원으로 큰 변화가 없습니다.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휘발유와 디젤유 값이 열흘 사이 약 10% 가까이 올랐을 뿐 전반적인 물가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했지만, 북한 시장의 물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겁니다.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도 22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의 경제와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대북제재가 이행된 이후 북한 경제와 주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봅니다. 자료를 보면 달러 당 환율이나 쌀값 등에 변화가 없는데요. 제재가 인구 전체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한국 측 수행원들 사이에서도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평양의 발전된 모습에 "북한이 대북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성현 센터장]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궁극적으로 결국 대북제재만으로 북한 행동을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고, 대북제재가 아닌 북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겸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생각해봐야 하고…
정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 지역∙산업∙사람 간 제재 격차 커
- 평양 핵심권력층은 제재로 수입 감소, 직격탄 맞아
- 수출금지품목 산업 지역과 종사자도 제재 영향받아
- 물가 안정은 환율 안정 때문, 북 외환보유고 줄어들 듯
북한 내부를 취재하는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대북제재의 영향을 받은 지역과 산업, 사람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첫째, 대북제재로 중국에 대한 수출길이 막히면서 수출산업에 종사했던 무역일꾼들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대중 수출 규모가 80~90%나 감소하면서 북한이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외화의 규모가 크게 줄었고, 이는 평양 핵심권력층의 수입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수출금지품목이 된 산업 지역과 종사자들도 대북제재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철광석 수출이 금지된 무산 광산, 석탄 수출길이 막힌 평안남도의 광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수산물 수출 금지 조치로 수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비록 밀수를 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수입은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 이시마루 대표의 분석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북제재가 엄격하게 시행된 지 1년이 됐는데요. 북한 내부에서는 제재 영향의 격차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특히 직장 이탈행위를 허락하지 않는 기업소에 다니는 사람은 매우 어렵습니다. 생산도 제대로 못 하면서 출근을 강요하고, 힘이 없고 돈벌이도 잘 안 되는 국영기업의 노동자들은 방법이 없어요. 시장 활동도 많이 제한하고, 이런 사람은 생활이 어렵죠.
그렇다면 대북제재로 무역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외화와 물품 확보가 어려워졌는데, 시장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시마루 대표는 환율의 안정을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하면서 물가상승 현상이 발생하지 않겠냐는 예측을 했습니다. 뜻밖에 물가는 안정세입니다. 기본적으로 중국 위안화에 대한 환율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물가도 오르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북한이 보유 중인 외화를 꺼내쓰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물가가 오르지 않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아마도 북한이 기본적인 물품을 구매하는 데 현재 보유한 외화를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북∙중 경제전문가인 월리엄 브라운(William Brown) 조지타운대학 교수도 무역량이 크게 줄어 외화가 부족한 북한의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는 이유는 북한 당국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외화를 소비했거나 국가 재산을 매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또 아직 계약이 남아 있는 해외 노동자들의 외화벌이와 북∙중 국경 사이에서 이뤄지는 밀수 등을 통한 외화확보가 북한 경제의 숨통을 트여주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지난 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한국 언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표면적으로 대북제재의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하지만, 최근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등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전해지는 소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북제재로 외화 부족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 시장 활동으로 발 빠르게 전환한 주민은 타격 완화
- 새로운 서비스∙품목으로 바꾸며 장사로 먹고살아
- 자생적으로 시장 활동 활발해져, 대북제재에 충분히 대응
- 시장경제의 저항력 생각보다 강해, 권력층과 주민에 미친 제재 영향 다르다.
하지만 대북제재 국면에서 시장의 자생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일반 주민도 대북제재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지만, 시장 활동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영향이 생기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일반 서민계층 가운데 시장 활동을 하면서 먹고사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활동력을 발휘해 방어하고 있더라고요. 다른 품목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서비스, 장사를 시작하는 등 장사의 방법과 품목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장의 힘과 시장 활동을 통해 타격을 축소하는 것에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성현 센터장] 그만큼 북한 내부 시장의 자생력, 즉 시장의 역할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가 된 이후 가장 첫 번째로 했던 말 중 하나가 '이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하겠다' 인데, 그만큼 경제발전에 대한 지도자의 결심이라고 할까요? 따라서 시장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정부가 조금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만큼 북한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시장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스탠가론 선임국장도 북한 시장이 새로운 물건을 가져오고 물품을 교환하는 등 자원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시장 활동을 통해 대북제재에 대응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와 핵심 권력층에 타격을 준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는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대북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반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대립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시장경제 활동을 통해 생존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대북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 시장 경제가 보여준 저항력은 돋보였고, 결국, 핵심 특권층과 일반 주민이 느끼는 대북제재의 영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북한 내부로부터 전해지는 분석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 시장경제의 저항력이 강했어요. 시장 활동을 계속하면 굶어 죽거나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타격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