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국경 봉쇄로 중국에서 3년 넘게 발이 묶였던 북한 노동자와 주재원, 유학생 등의 본국 송환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22일에는 북∙중 간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면서 그동안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귀국하는 듯한 정황도 포착됐는데요.
이런 가운데 중국 생활이 길었던 북한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이 송환되면, 이들에 대한 감시와 자기비판, 강도 높은 사상 교육 등으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수년 만에 귀국한 북한 주민들이 맞닥뜨리게 될 인권 상황을 서혜준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송환된 해외 노동자에게 ‘자기 비판’ 강요할 것”

[대북 소식통] 물류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인적 교류가 먼저 생길 거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인원들이 먼저 들어가는 작업이 시작될 거란 말입니다. 그 원칙만은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북중 국경 상황에 밝은 대북소식통은 최근 재개된 북중 간 인적교류와 관련해 “중국에 장기간 체류했던 노동자와 유학생, 수감자 등의 송환이 우선순위”라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통은 지난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당국은 국경 봉쇄 이후 오랫동안 중국에 머물렀던 노동자와 유학생 등을 서둘러 송환하고 싶었다”며 “장기간 해외 생활로 이들의 사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북한 당국의 통제가 온전히 미치지 못하면서 탈북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데다, 중국에서 자본주의 사상과 외국 문화 등을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16일, 북한은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를 통해 두 대의 버스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선수단 60~70여명을 베이징으로 이송하며, 2020년 1월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인적 왕래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북한과 중국은 평양-베이징 노선의 항공편 운영을 재개했는데, 이는 그간 본국에 돌아가지 못한 북한 주민들을 송환하는 작업의 하나라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또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현지의 한 북한 주재원은 “언제든 당국이 호출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미 북한에서는 후임자가 배정돼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현재 중국 내 여러 기업에 파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노동자는 10만 여명.
코로나 대유행 이후 3년 넘게 북한에 돌아가지 못한 해외 노동자는 귀국 후 어떤 절차를 밟게 될까.
평양 엘리트 출신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탈북민 이현승 씨는 지난 2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과거 해외 노동자나 공무원들이 귀국하면, 노동당 각 부서로부터 2~3개월간 정치 사상 학습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코로나 사태 후에 귀국하는 노동자들은 더욱 강도 높은 사상 교육과 ‘자기 비판’을 강요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현승] 국경이 열려서 해외 공무원들, 노동자들이 (북한에) 들어가면 이 사람들은 최소 3개월 이상의 강도 높은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국가보위부, 당 세포 여러 단위들의 강습을 받고 사상 단련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 씨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북한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새로운 노동당 정책과 최고지도자의 사상을 주입하고, 해외에서 경험한 반사회주의 생활양식 등 ‘북한 정책에 반하는 사례들’에 대해 지적하면서 사상 교육을 합니다.
국가보위부에서는 “해외 생활 중 한국 방송을 시청했거나 보고 없이 출장을 다니는 것 등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지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등 방첩 관련 교육도 받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또 이 씨는 귀국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비판서를 작성하고, 이런 문제가 중앙당까지 보고되면 노동단련대 등에 최소 6 개월 수감돼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현승] 제가 볼 때는 3년 이상 해외에서 머물면서 이 사람들이 했던 사소한 교란까지 다 쓰라고 하면서 ‘자기 비판’을 시킬 겁니다. 한국 언론을 봤다든지, 영화를 봤다든지, 중국 사람에게서 북한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전달 받았는지, 또 중국 사람들과 어떻게 접촉을 했는지 등 사소한 내용을 다 쓰게 만들어요. 특히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 집단 안에서 누가 어떤 불평 불만을 했고, 또 누가 어떤 외부 서적이나 영화를 봤고, 이런 것까지 다 쓰게 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까지.
특히 탈북을 시도하다 붙잡힌 사람들은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생산 성과가 저조한 노동자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라며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인권 단체들 , 해외 노동자 인권 상황 악화 조짐에 '우려'
미국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도 22일 RFA에, 코로나 사태 이후 송환되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이전과 달리 압박 심문을 통해 해외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실토를 강요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또 코로나 기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불법 취업’ 등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 심문 과정에서 드러날 경우, 노동교화소에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지적했습니다.
같은 날 ‘국제앰네스티’(AI)의 장보람 동아시아연구원은 3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한 노동자들이 북한에 돌아가 겪게 될 과정에 대한 RFA의 질의에 “해외 파견 전후, 귀국 후에도 감시와 사상 교육이 진행되며 심지어 노동자들은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장 연구원은 “이러한 관행들은 국제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반한다”며 “북한 정부가 여론을 강요하려는 것도 기본적인 인권 침해이며, 표현의 자유, 이동의 권리, 정보 접근에 대한 제약은 노동자들이 착취나 강제 노동에 대해 맞서 발언할 수 없도록 막는다”고 꼬집었습니다.
해외 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해 북중 국경 봉쇄 전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목격한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도 이미 최악이었다는 겁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Phil Robertson)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코로나 대유행이나 국경 봉쇄가 북한 해외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정책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감시’와 ‘학대’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고,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의 월급 대부분을 몰수해, 이들은 마치 국가에 의해 해외에 배치된 노예와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노동자 본국 송환 후 재파견 여부 관심
탈북민 이현승 씨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에는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버는 소득의 상당 금액을 개인이 소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열악한 근무 환경과 부당 행위, 강화된 감시 등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은 크겠지만, 해외 노동자로 파견되면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북한에서보다 더 많은 수입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해외 파견을 희망하는 사람은 꾸준할 것으로 이 씨는 전망했습니다.
[이현승] 코로나 때부터 상황이 바뀌었어요. 북한 노동자들이 탈출하고, 또 코로나 직전에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제재가 떨어져서 돈을 벌 길이 없다는 걸 알고 중간에 있는 매니저나 업무자들이 노동자들의 돈을 착취합니다. 그래서 국가에 들여보내야 할 돈을 다 채우지 못하는 거고요. 또 (북한에) 돌아갈 때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돈을 안 줬습니다. 장부만 적어놓고 ‘갈 때 주겠다’고 하니까 불만이 생기는데, 그래도 국내에 있는 노동자보다는 돈을 좀 버니까 어느 정도 메리트(장점)가 있다는… 그리고 중국에 나오면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좀 있거든요.

하지만 중국 내 북한 주재원을 인용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일단 중국 내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면, 다음 노동자가 언제 파견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는 지난 4월 회담을 갖고,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을 돌려보내라고 국제사회에 촉구한 바 있습니다.
지난 17일에도 6년 만에 열린 유엔 안보리 북한 인권 공개 회의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해 국내외에서 강제노동과 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본국으로 송환된 노동자들이 직면할 인권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