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유소 157개…김정은 집권 뒤 100개 이상 늘어”
2022.06.11
앵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주유소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된 157개 주유소 중 100개 이상이 김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후 건설됐다는 건데요.
하지만 계속된 대북 제재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국경봉쇄로 주유소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박수영 기자가 김정은 집권 이후 급증한 북한의 주유소 상황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북 주유소 3분의 2 김정은 집권 뒤 건설
구글어스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북한 내부 상황을 추적해온 미국의 북한 분석가제이콥 보글씨.
북한의 각 지역별 주유소 위치와 개수도 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납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위성사진으로 판독 가능한 북한의 주유소는 모두 157곳으로 이 중 3분의 2 이상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건설됐습니다.
[제이콥 보글] 북한의 주유소 157개 중 100개 이상이 김정은 집권 이후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굉장히 높은 증가율입니다.
북한에 그동안 매년 6개 정도의 주유소가 새로 들어섰는데 2014년 11개로 두 자릿수를 넘어서더니 2017년에는 22개가 신설됐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새로 건설된 주유소 대부분은 고속도로가 아닌 주요 대도시에 집중됐습니다.
평양에 47개, 함경북도 청진시 7개, 평안북도 신의주 6개 등 7개 주요 도시에 전체 주유소 3분의 2가 편중돼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제이콥 보글] (주유소 증설과) 동시에 차량 소유권과 택시 회사도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교통량도 증가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해온 것 같습니다.
김정은 집권 뒤 주유소 급증 배경은?
이러한 북한 내 주유소 급증은 김 총비서 집권 뒤 반짝 성장한 경제와 ‘보통 국가’를 향한 김정은 총비서의 열망을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은 (9일)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 초기 경제 개혁과 개방을 꾀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도 시장경제화가 일부 진행됐고 물류 운송에 필요한 자동차의 수요가 급증해 자연스레 주유소도 늘었다는 겁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북한이 한국 정도의 경제적 수준은 고사하고 다른 중간 소득 국가까지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만,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 경제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 북한은 기존 계획경제 방식으로 당·군·내각 산하 각종 기관·기업·군부대에 국정 가격으로 기름을 판매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평양과 주요 도시에 직영주유소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통일연구원도 2018년 12월 발표한 보고서 (북한 변화 실태연구: 시장화 종합 분석)에서 북한에서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직영주유소가 늘어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표면상 주유소가 늘어나도 일반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기 어렵다고 재일 언론인이자 북한 경제 전문가인 문성희 박사는 꼬집었습니다.
[문성희] 주유소를 일반 주민들이 필요하니까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모양새를 차린다고 할까요. 선진국처럼 주유소 정도는 있어야겠다, 뭐 그런 발상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합니다.
주유소 건설이 ‘보통 국가’로 보이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노림수라는 겁니다.
보글씨도 주유소 개수가 늘었을 뿐 북한에서는 여전히 일반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이콥 보글] 북한 사람들은 회사 차량이나 군용 차량을 사용해야 하고, 그 기관이 차에 연료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개개인은 차를 이용해 목적 없이 전국을 운전해서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마음대로 차로 휴가를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직장이나 군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처럼 2017년까지 빠른 증가세를 보였던 북한의 주유소 증설은 2018년 7개로 3분의 1 수준으로 증가세가 꺾였으며 2020년에는 4개로 확 줄었습니다.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주유소 신설이 줄어든 이유는 북한에서 기름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대북 제재는 2016년과 2017년에 시행되긴 했지만 2018년까지는 완전히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주유소 증식이 줄어든 이유는 북한의 교통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의 유류 반입량이나 접근성이 줄어들었다기보다 수요가 줄어들어서 주유소의 수요도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한정된 북한의 원유 수입량 탓에 주유소에 기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문성희] (북한에서) 운전 기사들에게 물어보니까 쿠폰 같은 것이 있는데 사용에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를 넘으면 공급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유소가 아무리 생겨도 파는 휘발유가 있는 건지,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유소를 그렇게 함부로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앞서 2017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한 때 북한에서 문을 닫는 주유소가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CC TV] 기름 표 한 장이 일주일 전에는 90위안이었으나 지금은 160위안으로 70% 이상 올랐습니다.
당시 중국 당국은 부인했지만,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일시적으로 잠그는 바람에 북한에서 기름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2017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르면, 북한에 연간 원유 수입량은 400만 배럴, 정제유 수입량은 50만 배럴로 제한됩니다.
이같은 북한의 제한적 기름 공급은 꾸준히 늘어난 북한의 주유소 개수와 모순된다고 보글 씨는 지적했습니다.
[제이콥 보글] 중국으로부터 이어진 송유관은 유엔안보리에 감시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원할 경우 대북 제재 상한선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석유를 북한에 퍼 올릴 수 있습니다. 주유소 개수가 늘어나는 것이 북한이 이를 통해 더 많은 기름을 반입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영 주유소, 북한 ‘보통 국가’로 이끌 수 있을까
북한의 주유소 증가가 김정은 총비서의 바람대로 온 ‘보통 국가’가 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입니다.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북한의 계속된 무력도발과 이에 따른 대북제재로 주유소 운영과 상관없이 이런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우리라 지적했습니다.
대북제재로 밀거래 없이는 원유 수입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난감한 점은 대북 제재가 북한 내 상업적 활동을 제한해 민간부문의 성장을 저해시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재 분야에서 북한 민간 사람들이 특정 소비재를 수입이 제한되면 그 분야에서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확실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보통 국가로 진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태도를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해 경제적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경제 제재를 푼다고 해도 북한 정권이 핵 개발을 위해 사용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가 대북 제재를 축소하기도 어려운 겁니다.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미국이 지난달 추진했던 대북 추가제재 결의안에는 북한의 원유 수입량 상한선을 300만 배럴로, 정제유 수입량 상한선을 37만 5천 배럴로 현재보다 각각 100만 배럴과 12만 5천 배럴씩 줄이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비록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미국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 대응해 강력한 대응을 천명한 상태입니다.
북한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주유소의 앞길이 그리 평탄하지 않을 전망입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