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의원, 힘없는 ‘얼굴마담’에 불과”
2023.11.15
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북한 선거 개혁이 ‘민의’ 반영할 지는 의문”
<기자> 최근 북한 지방선거에서 대의원 후보자를 2명 내세우고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1명의 후보자를 고를 수 있게 한 선거 방식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7차 전원회의에서 대의원 선거법을 개정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런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북한은 이번 달 26일 각 도, 시, 군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각을 대변하는 기관지인 ‘민주조선’이 10월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1부 선거구에서는 2명이 입후보하고 이 중 한 명을 대의원으로 선출한다고 합니다. 두 명의 후보자 안에서 과반수 투표를 얻어낸 인물이 선출된다는 말인데요. 북한 선거는 원래 한 명 후보자에 대한 신임투표를 해 왔습니다. 북한에서는 보통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표어(슬로건)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조선노동당의 결정은 절대적인 의미가 있고 당이 실패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방식을 일부 변경하면서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후보자 선발을 맡긴다는 것에 매우 획기적인 부분입니다. 다만 입후보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고 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입후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는 제한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 변화에 앞서 북한은 기존에 어떤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해왔는지 좀 더 짚어주시겠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나 조선노동당이 결정한다는 것에 절대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선거 자체는 당의 지도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선거를 할 때마다 후보자 개인의 약력을 소개하는 홍보지가 게시된다고 합니다. 홍보지를 통해 지명도가 거의 없는 후보자에 대해 처음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정도라고 합니다. 투표 순서도 대충 결정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기가 투표해야 할 시간이 되면 투표소에 간다고 하는데요. 투표소에서는 후보자를 신임할 때 투표지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경우에만 투표 용지에 표기한다고 합니다. 특히 투표장에서 주민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후보를 신임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의 손동작 등 움직임으로 알아차리곤 했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1980년대 무렵까지 투표율이 100%라고 선전해 왔습니다. 또 한 때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거나, 또는 병에 걸려서 투표하지 못했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부재자 투표 방식도 도입했습니다. 또 북한은 투표율을 100%라고 주장하지 않고 99.9%라는 숫자로 수정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이지만 상의하달 방식이 주를 이루는 북한에서는 주민의 대표라는 의미에서 권위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대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 제한된 것이고 하나의 ‘얼굴마담’ 정도의 역할밖에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의 선거 방식이 일반적으로 국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체제와 매우 다르다는 지적이신데요. 김정은 총비서 역시 북한의 최고지도자에 오르는 과정에서 어떤 전통적인 선거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1월에 열린 제8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총비서 자리에 추대됐습니다. 모두 김정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고, 사실상은 “취임을 부탁드린다"라는 의미로 추대란 표현을 했는데, 선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선출"이라는 용어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당대회 출석자들은 노동당이 사전에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 총비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출석하지 않습니다. 김 총비서는 2009년 1월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여동생 김경희나 여동생의 남편이었던 장성택 국방부위원장, 그리고 사실상 김 전 위원장의 부인이었던 김옥 등 자신의 최측근들 앞에서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했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그는 후계자가 됐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이나 한국, 또는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총리를 선출하는 일본 등과 달리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선출은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총비서는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고가의 시계 등 호화스러운 사치품을 선호하고 취미로 승마를 즐긴다는 등을 얘기가 나오는 배경에는 그런 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오늘날 김정은 정권에 이르기까지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공식화된 과정에서 나타난 양상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의 초대 지도자였던 김일성 주석은 구소련이 데려온 권력자였습니다. 김 전 주석이 1945년 9월에 북한에 들어와 했던 당시 연설은 구소련 당국자가 작성했었다고 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그 후 연안파나 국내파, 소련파 등 여러 사람들과의 투쟁을 통해 독재자로서 권력을 얻어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었다는 것이 최고지도자가 된 최대 이유지만, 동시에 권력 투쟁도 해야 했습니다. 김 전 주석의 남동생 김영주, 둘째 부인인 김성애, 아들인 김평일 씨 등 여러 사람과 권력 투쟁을 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거로 선출된 최고지도자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권력 투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일반 여론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 많은 아사자가 나온 '고난의 행군'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주민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허용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주민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려한 결과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반면, 김정은 총비서는 권력 투쟁을 전혀 경험하지 않고 최고지도자가 됐습니다. 물론 선거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총비서는 북한 내 여론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하나는 김 총비서의 측근들은 그가 권력 투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존경도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김 총비서가 정권 초기에 인사 이동을 많이 했다는 것은 측근들의 지지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 총비서가 권력 투쟁 없이 최고지도자가 됐기 때문에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2013년 12월에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이나 2017년 2월에 일어났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로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선거'라는 사안이 북한 당국자들의 권력 유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도 선거 개혁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것 같은데요.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저도 그런 점이 궁금해서 과거에 탈북한 전 노동당 간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간부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점점 커진 데 따른 결과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방에서는 대의원이 되면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 많은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주로 치안 문제나 식량 문제를 좀 개선해달라는 민원이라고 하는데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북한에서 대의원들은 사실상 하나의 '명예직'이기 때문에 실제로 민원을 해결할 힘이 없습니다. 주민들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민원이라는 형식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이러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에 주민들을 위한 대의원 선출을 장려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 듯이 대의원은 어떤 얼굴마담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선거 절차에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가 듭니다. 지방 당국은 여러 가지로 고생하고 있지만, 김 총비서는 그런 상황에 대해 정확히 모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지 않다고 예상합니다.
<기자>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이었습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