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오물 풍선에 깨끗한 포장지로 채워
2024.10.18
앵커: 최근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듯한 깨끗한 포장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전 분뇨와 각종 쓰레기로 채웠던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변화인데요. 오물 풍선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공장에서 포장지를 찍어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편, 대북 전단이 북한의 최북단인 양강도까지 도달하면서 북한 당국은 대북 전단을 줍지도 말고, 내용을 입 밖으로 내뱉지도 말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생활고를 겪는 주민들은 대북 전단을 발견해 쌀과 의약품 등을 얻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합니다.
오물 풍선과 대북 전단에 관한 소식을 천소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 체제 선전 또는 도발 수위 조절 가능성
한국에 거주하는 익명의 제보자가 지난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보낸 한 장의 사진. 지난 9월 24일 서울 노원구 일대에서 수거된 북한 오물 풍선의 내용물입니다.
이 사진에는 청류강냉이가공장이 생산하는 ‘코코아 과자’를 비롯해 ‘강냉이 소젖크림겹단설기’와 ‘강냉이딸기향 겹단설기’, 강봉제약공장의 ‘플라본 미백소’, 운하대성식료공장이 만든 ‘사과 단묵’이라고 적힌 포장지가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포장지가 공장에서 갓 찍어낸 듯 깨끗하고, 사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쓰레기로 보이지 않는 겁니다.
북한이 처음 오물 풍선을 한국에 날려 보낸 지난 5월, 풍선 안에 각종 쓰레기와 가축의 분뇨 등이 포함된 오물이 주를 이룬 것과 비교하면 내용물이 크게 바뀌었는데, 북한이 오물 풍선의 내용물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공장에서 포장지를 찍어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석좌 연구위원은 18일 RFA에 “한국에서 내용물을 분석하고 있어 신경을 쓰는 것 같다”라고 진단하며 “새로 인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1차, 2차 때는 동물 분뇨를 포함한 오물을 보냈는데, 그것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판단이 났습니다. 해를 입힐 목적으로 쓰레기를 버렸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3차, 4차 때부터 한국 전단과 유사한 종이쪽지나 비닐을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이 보낸 내용물에 대해서 한국이 분석하거든요. (기존 오물 풍선은) 북한 체제의 후진성 등을 보여주죠. 그래서 내용물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새로 인쇄한 것들을 선전용으로 넣었을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포장지를 그냥 집어넣었을 수 있는 거죠. 기존에 사용되는 포장지를 인쇄해서 넣을 수도 있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성렬 탈북민 출신 한국 부산 외국어대학교 교수도 18일 “북한 정권이 도발 수위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오물 풍선 내용물을 조절하는 것 같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김성렬] 북한 정권이 한국과 단절하고, 통일과 관련된 것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보내는 풍선 안에 오물 혹은 한국 쪽에서 도발적인 것으로 판단할 만한 것들을 보내면 긴장 수위가 고조되니까, 수위를 고려해서 조절하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 본인도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북한을 정상 국가화하겠다는 기본적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물 풍선 내용은 (정상) 국가 수준에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정상 국가’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북한 당국이 계속 오물 풍선을 보내는 가운데 매번 생활 쓰레기 등 내용물을 구할 수 없어 “아예 본격적으로 오물 풍선에 넣을 내용물을 만들거나 수집하는 노력을 하는 것 같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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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이용한 ‘스마트 풍선’, 대북 전단 효율성 높여
양강도까지 도달한 대북 전단… 북 주민 “나도 주울래”
“최근 한국 삐라(대북 전단)가 양강도 백암군까지 날아와 경찰이 회수할 때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당원들을 선발해 회수 작업을 시켰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최근(10월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내용입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양강도 현지 취재 협조자를 인용해 “대북 전단을 발견한 사람에게 ‘내용을 절대 다른 곳에 이야기하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라며 이는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 요청)도 지난 8월 11일 대북 전단 습득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며 “국경 연선에서 남조선 삐라(전단)를 줍지 말라는 주민 회의를 소집하기는 처음”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현지 주민 소식통] 법관들이 선전포고 해가지고 줍지 말라, 신고하라, 떨어지면 손대지 말고 법에 알리라….
이 소식통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단이 날아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라며 “당에서 남조선 대북 전단을 수거하는 영상을 보여줘 처음으로 쌀이나 다양한 물품이 함께 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간부들은 물론 일반 주민도 마음속으로는 ‘한국에서 오는 물건을 줍고 싶어 할 것’이란 게 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특히 대북 전단과 함께 날아오는 USB(이동식저장장치)는 용량에 따라 북한 돈으로 약 4만 원에서 7만 원(미화 약 2.3달러에서 4달러)의 가치가 있어 이것을 팔면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는 겁니다.
[현지 주민 소식통] (나도 하나 줍게) 내가 사는 동네에도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보내면 좋아요. 인민들이 좋아하면 되는 것이죠.
“대북 전단, 드물지만 양강도까지 갈 수 있어”
한국의 최북단인 경기도 연천군에서 양강도 혜산시까지의 거리는 약 370km.
한국에서 날려 보낸 대북 풍선이 양강도까지 도달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이에 대해 오랜 기간 북한에 은밀히 대북 전단을 보내고 있는 한국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 요청)는 최근 (10월 10일) RFA에 “드물지만, 대북 전단이 양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조선개혁개방위원회’가 2022년에 GPS(위치추적장치)를 달아 보낸 ‘스마트 풍선’이 중국 길림성까지 도달한 바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관계자] 갈 수 있어요. 아주 확률은 낮지만, 풍선이 어떤 경우에는 3~4일씩 날아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풍선을 농업용 비닐로 만들기 때문에 비닐의 품질, 고도, 바람 등이 종합적으로 맞으면 며칠씩 하늘에 떠다니고, 땅에 떨어지기까지 며칠씩 걸리는데요. 기류를 잘 타면 거기(양강도)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길림까지 가려면 3~4일 이상 풍선이 떠 있어야 합니다. 혜산까지 간 적도 있어요. 몇 년 전 일이고요. 지금 봤을 때는 어떤 조직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는 이어 대북 전단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국경에서, 그리고 북한 내부에서도 살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개혁개방위원회] 옛날에는 중국에서 했었는데, 중국 당국이 통제를 많이 해서…. 은밀하게 중국에 가서 할 수도 있어요. 중국 공안당국의 통제, 탄압, 단속을 어떻게 피하느냐가 문제죠. 못한다는 건 없습니다. 몇몇 알려진 탈북자 단체 외에 비공개로 풍선을 보내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교회와 탈북자들이 같이 하는 곳도 있고요. 북한 내부에서 날린 풍선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공장 굴뚝 안에 들어가서 전단을 날리면 바람을 타고 올라가서 굴뚝 밖으로 올라가요. 굴뚝 안에는 항상 바람이 위로 불거든요. 밑에 공기가 뜨거우면 더 빨리 높이 올라가죠. 그렇게 해서 전에 한 적도 있는데요.
또 다른 대북 소식통도 RFA에 중국의 단둥과 장백 조선족 자치현에서도 대북 풍선을 보낸 바 있고, 북한 내부에서도 전단을 살포한 사례가 있지만, 지금은 중국 공안과 북한 당국의 단속 강화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6천 개가 넘는 오물 풍선을 날리고 있는 북한과 계속해서 대북 전단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민간단체.
이 밖에도 북한의 무인기 평양 침투 주장과 남북 연결도로 폭파 등으로 남북 관계가 계속 악화하는 가운데 계속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한국의 대북 전단과 북한의 오물 풍선이 한반도의 긴장을 더 고조시킬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