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북송 이어질라’ 숨죽인 중국 내 탈북민들
2024.05.14
앵커 : 지난달 26일, 중국이 자국 내 탈북민 60여 명을 강제북송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한 번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단행한 강제북송은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전후로 탈북민 수백 명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한 이후 6개월 만에 추가로 벌어진 일이어서 북한 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성토의 목소리가 더욱 높은데요, 문제는 북중 관계가 현재 밀착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연쇄 강제북송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 내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현주소를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현장음] 강제북송을 당장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과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내 탈북민 강제북송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습니다.
중국이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전후해 탈북민 수백 명을 강제북송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직접 방문한 정치인들과 각종 북한인권단체, 탈북민, 심지어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까지 가세해 중국을 규탄하고 나섰던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토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로부터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지난달 26일, 또다시 중국 투먼과 훈춘, 단둥 지역을 통해 중국 내 구금시설에 있던 탈북민 60여 명을 강제북송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의 이 같은 대규모 강제북송 문제는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공분을 샀습니다.
영국 의회 내 ‘북한에 관한 초당파 모임’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상원에서 한국 통일연구원과 유럽 북한인권포럼을 개최하고,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과 관련해 영국 의회 의원과 대한민국 정부, 국제사회와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또 최근 벌어진 추가 강제북송이 있기 며칠 전인 지난 달 18일에는 영국 상하원 의원들이 강제북송 된 탈북민들의 구출을 위해 영국 정부가 더 노력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영국 외무장관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상하원은 물론 유엔에서도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밝혀온 유럽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다만 중국 내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문제에 앞장서야 할 제1의 당사국인 한국이 중국에 저자세로 대응하는 이상 중국이 호의적인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국가가 이 문제를 들고 나선다 해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영환] 국제 외교 현실이나 실제는 당사국인 한국 정부보다 더 강하게 얘기는 잘 안 합니다. 한국 정부가 강하게 얘기했을 때는 그와 비슷하게 아니면 그보다 조금 약간 하지만 힘을 보태 주는 것을 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이 분명하게 중국을 호명하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한국 정부에 저간의 사정이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중국과 뭔가 물밑 접촉이 있는 건가 보다’라고 이해를 해서 그보다 더 강하지 않은 톤을 내주는 것이 현실이고요. 한국 외교부가 중국 쪽에 정말 저희가 볼 때는 정말 저자세라고 보입니다, 심각한 저자세인데요,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날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마주한 자리에서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은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하며 “탈북민들이 (강제북송 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이 각별한 관심을 두고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외교부장은 강제북송된 탈북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변함이 없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답하는 데 그쳤습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내 구금시설에는 적잖은 수의 탈북민이 언젠가 강제북송 당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떨며 대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최근(3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중국 남부 지역인 난닝에서 37명, 북구 네이멍구(내몽골) 지역에서 16명, 베트남 접경 지역에서 7명 등 최소 60여 명의 탈북민이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과거 탈북 과정에 두 차례 강제북송 당했다가 세 번째 탈북에 겨우 성공해 현재 한국에 정착한 박 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 씨는 최근 다시 벌어진 강제북송 소식에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었습니다.
[박 모 씨(음성 변조)] 여러 지역에 어쨌든 감옥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지난 10월 대규모 강제북송 이후에 또다시 이렇게) 강제북송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생각을 못 했는데 또 강제북송을 한다니까 ‘아… 안 바뀌는구나!’. 감옥 들어가면 일단 접촉하기 어려워요. 다만 거기서 하루하루 감옥에 사는 거 자체가, 그리고 북송되면 처형되거나 또 (북한에서) 감옥을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죠. 마음이 다 무너지는 거죠.
김명희 씨 역시 박 모 씨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두 번 강제북송 당하고 세 번째 체포된 후 구사일생으로 풀려나는 혹독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김 씨는 강제북송을 앞두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중국 내 구금시설에서 지냈던 시간이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 당시 막막하고 답답했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생생한 상처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김명희(두 번 강제북송 경험)] (중국 내 탈북민들을) 하룻밤에 그냥 막 다 잡아가고 이랬는데 갑자기 잡혔으니까 아무 준비 없이 잡혀 나가잖아요? 옷이든 돈이든 생활용품이든 뭐든 준비를 해서 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잡혀가니까… 그런 게 필요한데… 그런데 그런 걸 아예 못 하게 딱 막더라고요. 소식을 전할 수도 없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도 없고. 아, 너무 속상하고 짜증 나고 아무 정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있는 게 (강제북송 대기 중에 중국 구금시설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탈북민에게는 죽음의 문턱과도 같은 강제북송이 단행된 이후, 목숨 걸고 한국행을 감행했던 탈북민들은 물론 이들을 도우며 수십 년째 구호 활동에 적극 나섰던 인권 단체도 지금만큼은 몸을 사리고 한껏 움츠러든 분위기입니다. 탈북 구호 활동가 김 모(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 요청) 씨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습니다.
[김 모씨(음성 변조)] (지금 한국행을 시도했던 탈북민들 사이에) 분위기란 게 다른 게 없어요. 전처럼 대량으로 (탈북을 하기 위해) 갈 수도 없고, 중국이 너무 통제를 세게 하니까. 그래도 (국경 지역으로) 가기는 살랑살랑 가는데 이전처럼 구출되는 사람이 많은 숫자가 움직일 수 없고, (일단) 지금 중국에 붙잡혀 들어온 애들은 거의 북송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이전엔 이렇게까지 안 했는데 (지금은 중국 공안 단속이 너무 심해요).
특히 북한과 중국이 수교 75주년을 맞아 올해를 두 번째 ‘조중(북중) 우호 친선의 해’로 선포하면서 양국의 밀착 관계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강제북송 문제의 걸림돌로 지적됩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과 중국이 다방면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현 상황에는 북중 양국이 강제북송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어떠한 비판도 외면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홍민] 어떻든 (북중) 이 양국은 강제북송 문제를 최대한 비공식적이고 은밀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상당히 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중간에 이것이 화제가 돼서 부각이 많이 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북한은 일정 부분 침묵하거나 여기에 대해서 크게 공식적 대응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제적인 어떤 대응 같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무력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입니다.
따라서 당분간 강제북송 당한 탈북민의 인권 개선이나 강제북송 자체가 차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제사회와 인권 단체, 언론 등이 힘을 합쳐 지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라고 조언했습니다.
[홍민] 아마 북송 당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쉽게 개선되거나 이 강제북송 자체가 차단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향후 계속 국제사회 예의주시가 굉장히 필요하고, 이 부분에 대한 계속된 감시 또 거기에 대한 언론의 보도 이런 것들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그나마 지금 북중 간에 이런 비인권적인 강제북송에 대한 것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추가 강제북송 소식이 알려지고 2주가 흐른 지난 주말, 통일광장기도회와 에스더 기도회는 어느새 조용해진 백악관과 의회 앞을 찾아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이번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따라나서 강제북송을 중단해 달라는 호소의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현장음] Stop China. Sending back North Korean defectors. (중국은 탈북민 강제북송을 중단하라)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민재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