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식량에 가격도 폭등… 북 주민 ‘아우성’
2025.01.09
앵커: 북한 당국은 지난해 식량 생산량을 107% 달성했다며 ‘풍작’이라고 선전했지만, 북한 주민은 여전히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쌀과 옥수수 등 식량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인데요. 주민들의 아우성은 커지고, 풍작이라는 북한 당국의 말도 신뢰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곡물 거래를 강력히 통제하는 북한 당국의 정책이 식량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북 주민 “풍년이라는 당국의 선전, 거짓 아닌가?”
“농업 부문에서 과학 농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또다시 풍년을 안아오고 관개 건설 및 환원 복구 2단계 공사가 4월까지 전부 결속되어 농업생산의 물질적 토대가 한층 강화되었다.” (북한 노동신문, 2024년 12월 29일 보도)
북한 당국은 지난해 12월 진행한 제8기 11차 전원회의에서 인민 경제발전 12개 중요 고지를 성공적으로 점령했고, 특히 농업 부분에서 알곡을 107% 초과 달성했다며 풍년이었음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북한 주민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풍작이면 식량 가격이 내려가는 게 정상이지만, 식량 가격이 내려가고 있지 않다.”
“식량 가격이 올라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오는 3월 정도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황해남도의 소식통(신변 안전 위해 익명 요청)이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한 북한 내부 소식입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가을걷이가 마무리되고 도정을 진행하면 12월 말에서 1월 초에는 한 해 농사의 수확물이 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보통 식량 가격이 가장 저렴한 시기도 1~2월입니다.
하지만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풍작이라고 선전했음에도 식량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것은 식량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만, 공급량은 적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북한 당국의 선전을 거짓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또 소식통은 “식량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바로 돈이 없다는 것”이라며 식량 부족도 문제지만, 식량 가격이 상승해 (돈이 없는) 주민들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식량 가격 상승으로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이 추정한 북한의 지난해 식량 작물 생산량은 478만 톤으로 전년 대비 약 4만 톤, 약 0.8% 감소한 수치입니다.
이는 전년도 생산량인 482만 톤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수치지만, 가파른 식량 가격 상승으로 주민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최근 RFA에 물가 급등으로 북한 주민의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바로 물가 급등입니다. 지난 11월 말경부터 매우 심각합니다. 백미가 2024년 1월에 비해 현재 한 1.65배, 휘발유는 2.15배, 그리고 미국 달러는 3.4배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공식 가격이잖아요. 여기에다 양곡 판매소의 식량 가격, 이건 공식 가격인데 이것도 많이 올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도 현금 수입이 많이 줄었는데, 이걸로 어떻게 살겠냐’라고 말합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1월 3일 현재 북한에서 쌀 1kg은 북한 돈으로 8천800원, 옥수수 1kg은 3천900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일 년 전에 비해 쌀은 약 3천 원, 옥수수는 약 1천 원 정도 오른 금액입니다.
알곡 생산량 107%?... “연간 수요량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지난 7일 RFA에 북한 당국이 알곡 생산량을 107% 달성했다면 곡물이 약 600만 톤은 생산해야 한다면서 “지난해 기상 여건과 경제 상황,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 현황 등을 고려하면, 전년도보다 작황이 잘 됐을 리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충희] 폭우도 그렇고, 폭우 전에도 많이 더웠어요. 덥고 가물었던 상황이었고, 북한의 현재 투자 방향이 농업 생산을 위해 투자를 하지 않고 살림집 건설 및 ‘지방 발전 20x10정책’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군수 부문에 투자하면서 농촌에는 실질적으로 투자를 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비료에 대한 투자도 마땅치 않고요. 농사가 잘될 수 없는 환경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농사가 전년도보다 잘 됐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도 7일 RFA에 “북한이 가을 추수할 때 공개한 여러 영상을 분석해 보면 벼 기울기, 벼알 수, 벼의 무게 등 벼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라며 “식물 수확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평가했지만, 연간 식량 필요량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또 그는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북한이 심각한 수해를 입었지만, 이것이 곡물 생산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혁] 초기 벼 식생 상태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국지성 폭우가 집중되며 특정 지역에서 수해를 입은 거잖아요. 신의주 하단리보다 남쪽에 있는 지역이 훨씬 대농장입니다. 그 지역이 물에 잠기는 일수는 길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기간이었다고 보고요. 반대로 수해를 직접적으로 입었던 위화도 지구는 배수가 안 돼서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지역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작물이 전부 훼손된 상태를 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지역의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충희 소장도 “수해 지역 자체가 북한 농업 생산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 아니었다”라며 “기본적인 곡물 생산 지역인 서해안과 황해도, 평안남도 지역이 기후 피해를 입지 않았고, 모내기도 제때 끝났기 때문에 생산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북한의 연간 식량 필요량은 576만 톤으로, 지난해 북한의 수확량(478만 톤)은 북한 주민이 연간 필요한 양보다 약 100만 톤이 부족합니다.
또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을 18년 연속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분류하고,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45개국에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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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신양곡정책’을 펼치며 시장 안에서 곡물 거래를 금지하고, 양곡 판매소에서만 곡물을 구매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신양곡정책이 식량 가격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김혁] 신양곡정책의 핵심은 개인이 곡물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이고, 농민의 잉여 곡물을 국가에만 판매하도록 허용한 것인데요. 제도적으로 강제한 것이 결국, 시장 곡물 가격을 올리는, 즉 암시장의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거죠.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의 임송 부연구위원은 9일 RFA에, 식량 가격 상승은 곡물의 총공급량, 곡물에 대한 수요, 그리고 양곡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최근 곡물의 총공급량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요와 소득 증가, 양곡 정책 등이 곡물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송] 북한이 최근 노동자 월급을 인상했습니다. 결국, 총체적으로 수요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 100원 받던 사람이 300원을 받으면, ‘돈이 많아졌네, (필요한 것을) 더 사야지’라는 심리가 작용하게 돼 이런 식의 수요가 식량에 쏠리게 되면 식량 가격이 오르게 되는 거죠. 양곡 정책의 부작용과 노동자 임금 인상으로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가격이 올랐을 가능성, 아마 이 두 가지가 겹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충희 소장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주민들의 고충이 커졌고, 지난해 9~10월부터 평안도, 양강도 지역에서 ‘물물교환’, 즉 초기 시장 상태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조충희] 고충이 없을 수가 없죠. 제일 고충이 있는 사람은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굶어야 되는 상황이고요. 돈이 있는 사람은 굶을 상황을 생각해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놓지 않으니까, 없는 사람들은 더 굶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사 상태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할 수 있고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북한이 돈보다는 물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요. ‘내가 따뜻한 양털 외투가 있는데, 차라리 이것을 팔고 쌀을 사서 밥을 먹고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가죽 소파를 팔아서 쌀과 바꿔 먹어야 되겠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이겨내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현실에 맞지 않는 식량 정책이 ‘식량 부족’과 ‘식량 가격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으며 일반 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올해 북한의 농업 정책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된다면, 작황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봅니다.
[조충희] 북한의 농업 발전 목표가 농가 소득 위주가 돼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소득을 올려 부지런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야 식량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거든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북한 인구의 40% 정도가 되니까…. 그리고 작황이 잘 되려면 날씨도 중요하지만, 투자가 돼서 비료도 들어가야 하고 좋은 품종이 들어가야 하고, 좋은 농업 기술이 도입돼야 합니다. 북한 농업 정책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유지된다면 올해 농업 작황은 작년보다 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김혁] 결국, 날씨가 핵심입니다. 북한이 농업 생산 기반을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지만, 북한이 조성하고 있는 생산 기반 시스템 실태를 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기후가 농사에 가장 적절하게 잘 맞아야 하고, 최소한 연료 공급이 잘 되고, 기계가 더 동원된다면 (올해는) 2024년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해 107% 알곡 생산량을 달성했다고 선전했지만, 식량 가격의 급등으로 정작 북한 주민은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기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특히 시장에서 곡물 거래를 통제하는 정책의 전환과 생산 기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없이는 올해도 북한 주민의 식량난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