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김정은, 화폐개혁에 미련 남았을 수도”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4.11.20
[39호실 리정호의 눈] “김정은, 화폐개혁에 미련 남았을 수도” 북한 돈표 5만 원권과 5천 원권(왼쪽), 북한 화폐 5천 원권과 2천 원권(오른쪽)
/ RFA photo, 김지은 기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북한 당국이 부족한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임시 돈표를 찍어 공급하는 현상은 화폐교환을 하려 한다라는 주민들의 소문을 강력히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북한에서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에 대한 환율이 급등하고, 식량을 비롯한 물가도 오르는 가운데 주민 사이에서는 혹시 화폐개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함과 혼란이 감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아직 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는 관측도 있는데요.  

 

현재 김정은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은 철저히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환율 급등, 물가 상승 등은 북한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개방이 가져올 정치적 불안정을 우려한 김정은 정권은 생산부터 유통, 소비, 가격 결정까지 모든 것을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 공식 화폐 대신 임시 돈표 찍어 공급

 

[기자] 리정호 대표님안녕하십니까. 최근 북한에서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환율이 급등하고, 쌀과 옥수수 등 식량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로서 대표님은 최근 환율과 식량 가격의 상승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리정호] 최근 북한에서 불과 6개월 사이에 미화 1달러당 북한 돈 환율이 8천 원 수준에서 18천 원 이상으로 두 배 넘게 급등했다고 합니다. 중국 위안화도 올해 초 1200원 수준에서 지금은 2400원까지 올랐고요. 이는 북중 국경 봉쇄가 일부 완화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북한 경제가 현재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방증합니다. 북한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과 물가 상승은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최근 북중 국경을 통해 외국 상품이 북한에 많이 유입되면서 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북한 내에 국산품이 부족하거나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결과적으로 외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환율과 물가 상승을 초래합니다. 둘째, 환율 상승은 북한 원화에 대한 북한 주민의 신뢰가 약화하면서 외화가 안전하다는 인식에 따라 원화를 외화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셋째, 외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투기와 사재기가 환율과 물가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일부 투기꾼들은 단기적으로 외화를 대량 매입한 후 되팔아 차익을 노리고요, 사재기꾼들은 가전제품이나 주요 수입품을 대량 구매한 뒤 품귀 현상을 유도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식량 가격의 상승은 북한 내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량을 보유한 판매자들은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식량 가격과 환율을 같이 끌어올리고 있는데요. 이는 북한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과 외부 의존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안정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기자] 이런 가운데 일본의 언론 매체인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서는화폐교환을 하려는 것 같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매우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요. 간부들이 가전제품과 식료품 사재기에 나섰고, 외화를 사들이는 데다 외화 거래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는 거죠. 이런 가운데 북한에서는 올해 초 새로운 동전을 발행했고, 2021년에는 새 돈표도 나왔습니다. 북한 당국은 화폐교환은 유언비어라며 이런 말 자체를 단속한다고 하는데, 정황상 가능성이 있을까요?

 

[리정호]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화폐 교환에 대한 소문 자체가 북한 통화에 대한 믿음이 없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북한 주민은 2009년에 기습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 자산인 미국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부족한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임시 돈표를 찍어 공급하는 현상은 화폐교환을 하려는 것 같다라는 주민들의 소문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 2009년 김정은은 불시에 화폐개혁을 실시해 자금의 유통을 국가 은행에 집중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집착이 강한 그의 성격상 화폐개혁을 성공시키고 싶은 미련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폐개혁을 통해 국가 상업망과 국영 은행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시장에 안정적인 상품 공급과 신뢰할 수 있는 자금 유통 체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제난에 허덕이는 경제 상황과 지금의 비효율적인 경제 체제로는 북한의 국영 상업망과 국영 은행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지나온 역사가 말해 줍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부족한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임시 돈표를 찍어내는 이유는 뭘까요?

 

[리정호] 화폐 제작에는 특수 종이와 잉크가 필요한데, 북한은 이를 수입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임시 돈표를 발행하는 이유는 자금 부족 때문에 이를 조달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으로는, 화폐개혁을 준비하는 전조일 수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경제적 위기 시 화폐개혁을 단행해 주민들의 자산을 강제로 환수하고, 국가 재정을 통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도 김정은 정권이 경제적 혼란을 완화하거나 체제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시 돈표를 발행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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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말씀하셨듯이 2009년에 북한에서 화폐개혁을 실시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지, 왜 실패했는지 한 번 더 짚어 주시겠습니까?

 

[리정호] 지금이 11월인데요. 200911, 북한에서 기습적인 화폐개혁을 시행해 북한 주민의 돈을 다 빼앗아 간 지 15년이 되는 때이군요. 당시 북한 정권은 2009 11 30, 후속 대책도 없이 졸속으로 기습적인 화폐개혁을 강행해 주민 사이에 유통되는 돈을 다 빼앗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구권 화폐인 북한 돈 100원을 신권 화폐 1원의 비율(100:1)로 바꿔준다고 발표했고, 교환할 수 있는 한도는 구권 화폐 10만 원(미화 약 26달러)으로 제한했습니다. 그 한도를 넘는 돈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는 거였죠. 실제로 당시 평양시 가정에는 평균 500만 원 정도 있었는데, 10만 원만 바꿔 주고 나머지 490만 원은 바꿔주지 않는다고 하자 주민들은 그야말로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고,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죠.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한순간에 빼앗긴 주민들은 종이 조각이 된 돈을 아궁이에 던져 불태우거나 강과 하천, 길거리와 골목에 마구 내다 버렸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발생했습니다. 수도 평양의 한복판에서 휴지가 된 지폐가 강물에 떠다니고, 거리마다 돈이 나뒹구는 장면은 평생 북한 정권에 충성하고 순종하던 평양 시민이 화폐개혁에 대해 분노한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시작된 화폐개혁에 대한 반발은 이미 전국으로 번져갔습니다.

 

[기자] 평생 모든 재산이 다 휴지 조각이 됐으니 당시 북한 주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또 당시 상황을 들으니까,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리정호]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은 화폐개혁을 하면서 화폐의 가치를 무려 100배로 올려버리고, 상품 가격도 강제로 대폭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60가지의 기초 상품에 대해서는 강력한 가격상한제를 도입했죠. 예를 들어, 시장에서 쌀이 1kg당 북한 돈 230원에 거래되고 있었는데, 북한 당국이 1kg 23원에 팔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판매자들은 이런 터무니 없는 가격에 쌀을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었고, 그 결과 쌀 부족 현상이 발생해 가격 폭등과 함께 극심한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또 당시 북한 당국은 장마당에서 식량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오직 국영상점에서만 팔도록 했는데요. 하지만 국영 상점은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공급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고, 여기에다 가격상한제까지 시행되면서 쌀값이 순식간에 폭등한 겁니다. 화폐개혁 당시 북한 당국이 쌀값을 1kg 23원으로 정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쌀값이 무려 7배나 치솟아 1kg 150원이 됐죠. 두 달 후에는 쌀값이 1kg 1천 원에 도달해, 무려 40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이 혼란은 멈추지 않고, 쌀값이 결국 130배인 1kg 3천 원까지 치솟으면서 결국, 새 화폐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당시 화폐개혁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자국 화폐는 언제든지 강제로 빼앗길 수 있다라는 두려움을 갖게 했고요. 그 결과, 장마당에서는 콩나물과 채소를 파는 할머니, 길거리에서 빵을 파는 여성들도 모두 달러 거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북한 주민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미국 달러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거죠. 그리고 전 국민이 달러를 사랑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래서 평양에서는 미 제국주의는 증오하지만, 달러는 사랑한다라는 웃지 못할 일화가 생겨난 겁니다. 그때 당시의 달러 사랑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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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경제 정책,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강화에 초점

 

[기자] 또 하나 북한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북한 주민에게 현금카드를 사용하라는 겁니다. 물론 전기가 없어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북한은 앞으로 계속 진행해야 할 사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북한 경제의 모든 것을 틀어쥐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리정호]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현금 카드를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은 겉으로는 세계적인 금융 체계의 전산화 추세에 발맞추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판 비자(VISA) 카드마스터(Master) 카드와 같은 전자 결제 체계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이 정책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금 흐름에 대한 중앙 통제를 강화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카드는 현금 사용을 줄이고, 모든 거래를 기록하고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며, 이는 북한 정권이 주민의 경제 활동을 더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죠. 특히, 기관과 개인의 금융 자료를 한 손에 장악함으로써 시장 활동을 통제하고, 필요할 경우 자산을 동결하거나 몰수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북한의 전력 사정은 극도로 열악하고, 정전이 일상화됐기 때문에 전자 결제 체계를 제대로 운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한 인터넷이 없고, 금융 전산화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과 접근성도 매우 낮기 때문에 북한이 진정으로 금융 현대화를 이루려면 우선 전력 공급, 인터넷 제공, 시장 경제의 활성화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김정은 정권은 시장 활동, 상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정책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북한 돈과 외화의 거래, 흐름까지 장악하려는 것 같은데요. 지금 김정은 정권이 펼치고 있는 경제 정책을 어떻게 진단하시고, 평가하시는지요?

 

[리정호] 현재 김정은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은 철저히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체제는 생산 수단을 국가가 독점하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사유 재산을 금지하고 있으며, 모든 생산품의 공급부터 분배, 소비, 가격 결정, 자금 흐름까지 중앙 정부의 통제 아래 놓으려고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자원의 공평한 분배와 전 국민의 균등한 번영을 지향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비효율성과 자원 낭비, 그리고 만성적인 빈곤을 초래하는 체제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노동당 제7차 대회와 제8차 대회에서 과거 실패했던 계획 경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천명했습니다.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불가피하게 도입했던 기업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무질서를 바로잡겠다라며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난 80여 년간 북한이 실험해 온 계획경제 체제는 이미 실패를 입증했으며, 이는 과거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실패를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심지어 아버지인 김정일조차 2000년대 들어 이 체제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점진적인 폐지를 시도했는데, 아들인 김정은은 이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김정은의 지도력이 무능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주민 생활을 향상하려면 반드시 시장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개방이 가져올 정치적 불안정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히려 폐쇄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자] .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최근 북한에서 급등하고 있는 환율과 물가, 그리고 북한 주민에 각인된 화폐개혁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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