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지적에 반응하는 북… “트럼프 행정부도 계속 압박해야”
2024.11.21
앵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20년 연속 채택, 연방 하원의 미 북한인권법 재승인법안 본회의 통과 등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과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내부에서도 느리지만, 인권 개선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북한 인권을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실용주의 외교를 추구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인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북,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에 뼈아파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공세 압박에 대해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탈북한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관의 말입니다.
그는 최근 북한 외무성 기밀 문건을 공개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며 이 문건을 보면 외부의 대북 인권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대책 마련과 정책안을 수립하고 지시를 내리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을 두고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으로 일관해 왔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인권 개선과 관련한 여러 법규를 제정하는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비준된 ‘장애인권리협약’, 2021년 제정된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과 ‘구타행위방지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 이 법규들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의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제정됐거나 비준된 것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규창 한국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1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이러한 변화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이규창]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참사관도 김정은이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외교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잖아요. 겉으로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는 조금 의식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데, 국제사회가 같이 힘을 모아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고요.
실제로 북한 인권 전문가들과 탈북민들은 김정은 정권이 다른 문제보다 인권에 대한 지적에 더 큰 압박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서재평 한국 탈북자동지회 회장도 15일 RFA에,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북한이 과거보다 더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북한에서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는 겁니다.
[서재평] 어쨌든 김정은이 외부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 거론하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을 고심한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저는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면, 북한은 계속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런 부분을 조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지만, 인권 문제 여전히 심각”
이처럼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지적과 압박으로 인권에 관한 제도를 개선한 것도 있지만,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측면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2019년에 제정한 ‘대응조치법’은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제기와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경제제재 등을 비우호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특히 2020년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은 북한 젊은 세대의 발언과 자유로운 행동,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3대 악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 이규창 연구실장은 북한이 2022년에 ‘공화국 존엄모독죄’를 추가해 최대 사형으로 처벌하고 있다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규창] 2019년에 ‘대응조치법’이라는 법을 만들며 공화국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에 관한 조항을 넣었습니다. 또 2022년에는 형법을 개정해 ‘공화국 존엄모독죄’라는 것을 신설해 사형까지 부과했습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에도 공개 처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형사소송법에 현지 공개 재판까지만 있었는데, 이제는 공개 처형까지 규정했습니다. 국제사회 압박을 의식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에 많은 인권 전문가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당장 북한 주민이 실질적인 인권 개선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더라도 국제사회와 발맞춰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선을 위한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송한나 센터장도 20일 RFA에 “국제사회의 압박이 약해지면 북한은 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라며 이는 북한 주민뿐 아니라 주변국과 국제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압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탈북민 출신인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최근(13일) RFA에 “북한이 국제 사회의 압박을 견제하기 위해 인권에 관한 여러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압박이 줄어들면 이러한 노력조차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혁] 북한 입장에서 외부로부터 인권 문제를 견제하기 위해 없던 법들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유엔 인권이사회, UPR(보편적 정례인권검토)에서 기본적으로 북한 인권의 개선 조치를 요구한 부분들에 대해서 북한은 법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내세웠는데, 이제는 그런 것까지 없어질 수 있는 거죠.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면, 국제 사회는 북한에 ‘이런 법을 만들었는데 왜 지키지 않느냐’라는 압박 카드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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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내년 1월 20일에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인권 전문가들과 탈북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기 행정부 당시 김 총비서와 세 차례나 만났지만, 임기 내내 북한인권 특사를 공석으로 두며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혹시나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대북 정책을 핵 문제 중심으로 접근하거나, 다시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됐을 때 상대적으로 인권 문제가 이전처럼 의제로 포함하지 않거나 뒤로 밀려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앞장서 왔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됨에 따라 그동안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춰온 기존의 대북 협상에서 인권 문제가 추가될 가능성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송 센터장은 “루비오 상원의원이 미 북한인권법 재승인법안에 앞장섰고, 시민단체와 협력해 북한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합류한다면, 북한 인권 문제가 1기 때보다 더 주목받을 여지가 있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회장도 최근 RFA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오랫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위해 노력해 온 강력한 지지자”라고 평가하며 “북한 문제에서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접근법을 추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북한인권결의안’이 지난 20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20년 연속 통과됐습니다. 또 같은 날 미 연방 하원에서는 북한인권법 재승인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지난 20일 미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한 토론회에서 “인권과 관련한 대북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최근 유엔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지적이 북한에 영향을 주고, 실제 북한 내부에서도 조금씩 이에 반응하는 모습이 감지되면서 인권 전문가들과 탈북민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인권을 외면하지 말아 줄 것으로 당부하는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와 실용적 외교를 앞세우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이후 어떻게 응답할지에 눈과 귀가 쏠려 있습니다.
[서재평]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기는 힘든데, 조심하는 부분은 있더라고요. 과거에는 이유 없이 안전부나 보위부가 (권력을) 휘두르곤 했는데, 이제는 북한 내부에서도 인권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5~2016년부터 인권이란 것은 지켜져야 하고, 북한의 안전부나 보위부의 서류를 보면 인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변화가) 있어요.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속속들이 알려지면서 그걸 북한이 체크하고 있습니다.
[기자] 국제 사회의 압박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작게나마 나타나고 있군요.
[서재평] (영향을) 준다고 봐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