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파견 북 노동자들 “전쟁터 끌려갈라” 탈북 행렬 이어져

워싱턴-진민재 chinm@rfa.org
2024.04.09
러 파견 북 노동자들 “전쟁터 끌려갈라” 탈북 행렬 이어져 사진은 2016년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가 작업 중이던 공사 현장.
/ap

앵커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에 파견됐던 북한 노동자 한 명이 두 달 전쯤 탈북해 한국으로 입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40대 북한 노동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쟁터에 끌려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탈북을 택했다고 밝혔다는데요, 이 외에도 지난해 9월과 12월 등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탈북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요하고 있는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2016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정현철(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정 씨는 40대 초반의 북한 노동자 한 명이 최근 러시아에서 탈북해 한국 국정원 직원과 함께 한국으로 단독 입국했다고 귀띔했습니다.

 

정 씨는 이 남성이 평양 출신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로 우크라이나전쟁에 동원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했습니다.

 

[정현철] 작년에 전화가 왔어요작년 초쯤인가자기가 평양 출신 러시아 노동자인데 한국으로 오려고 하는데 루트(경로)가 없다그리고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데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어쨌든 그때 (탈북하려는이유가 우크라이나랑 러시아 전쟁과 관련해서 자기들이 징병대로 동원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그리고서 한 달 전인가그때 이제 한국 들어온다고 전화가 왔더라고요고맙다고 하면서.

 

실제로 2022년 8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우방국인 북한에 의용군 10만 명 파병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라며 “그러한 협상은 진행된 바가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지만소문이 퍼지면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동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돈바스 재건 현장에 파견될 것을 우려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9명이 한꺼번에 집단 탈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에 탈북을 시도하는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러시아에 파견돼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2019년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한 정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도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 탈북한 50대 후반의 북한 노동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털어놨습니다.

 

정 씨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러시아에서는 가뜩이나 사업소 내 일감이 줄어들어 북한 노동자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외부 일터로 내몰리는 상황까지 횡행하고 있습니다문제는 이렇게 안팎으로 일을 해도 정작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는 푼돈에 불과해 탈출하는 북한 노동자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겁니다.

 

[정 모 씨] 그 전에 5~10년 전까지만 해도 벌목공들이 많이 탈북했거든요최근 탈북하시는 분들 보면 대부분 건설로 나왔어요그런데 하나같이 다들 돈을 못 받고 다 그런 (탈북이유가 있더라고요제가 작년 12월에 한국 들어온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사람을 만났어요사업소 내에서는 일이 없으니까 적게 주고나가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아르바이트(부업)를 하라고 승인한대요승인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사업소에서 책임자가 나가서 직접 러시아 측 지배인과 그 기업하고 계약을 한대요계약을 하고 그 (북한 노동자가나가 일하는 데 돈은 몽땅 이 사업소에서 거둬가고 본인들한테 주지를 않는다는 거예요줘도 단지 얼마씩 30루블(미화 0.32달러이렇게 조금씩 준대요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화가 나서 (한국 등 다른 나라로도망치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더욱 나은 삶을 찾아 한국행에 오르는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 소식이 적잖게 들려온다고 정 씨는 덧붙였습니다.

 

[정 모 씨(탈북하려는 북한 노동자들이많아요힘들게 일했는데 돈도 안 주고 힘들죠뻔하죠 뭐 그 정권이 어디 가겠어요. (자꾸 탈북하는데자극받아서 이 김정은 정권 자체가 빨리 썩어 무너져야지 그래야지 자극받아서 일부 간부들이 (잘못된 관행을고치고 그럴 것 같아요.

 

1999년 러시아에 파견됐던 북한 벌목공 최태선 씨도 2016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최 씨 또한 지난해에 러시아에서 건설업에 종사한 30~50대 북한 노동자 4명이 한국으로 입국한 사실을 전했습니다최 씨는 많은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에 도착해 열악한 현실을 마주하고는 탈북을 염두에 두고 기초적인 생활 러시아어를 익히는 데 열을 올린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최태선러시아에서 넓은 땅에서 (북한 노동자들이말도 조금씩 배우고돈이 조금 생기고 (세상 보는눈이 터서 탈출하면 못 잡아요러시아는 말 몰라도 러시아 사람보고 빠마기 빠마기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인사 드라스뷔체 드라스비췌’ , ‘먹을 것 주세요 꾸이쪠 주세요’. 이걸 자꾸 러시아에서 달아나서 한국 가려고 사람들이 다 말을 배워요조금씩말을 열심히 배운다고요.

 

이처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탈북 행렬이 이어지는 현지 상황과는 별개로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파견하는데 더욱 속도를 내는 모양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중국이 국제사회 눈치를 보며 북한 노동자 수용을 망설이는 데 비해 전쟁 중인 러시아는 북한과 이해관계를 토대로 과감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조한범] 유엔 (대북 제재결의 때문에 (북한해외 노동자는 지금 다 불법이에요그런데 그동안은 코로나로 (해외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다시못 들어갔다고 양해가 됐는데지금은 문을 열었으니까 들어가야 되잖아요그러면 북한은 9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들어가면 외화를 못 벌잖아요그게 (외화벌이유일한 수단인데그러니까 9만 명이 (북한으로들어가면 9만 명이 (해외로나와야 된다는 입장이고중국은 아무래도 국제사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북한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러시아는 입장이 달라요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앞뒤 사정볼 게 없잖아요지금 그 둘 다 범법자가 협력을 하니까 (해외 파견 북한노동자가 들어가고 나가고 이런 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다만 조 선임 연구원은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탈북 사실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극도로 아꼈습니다이런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면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조한범(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관련 내용이런 것들이 나가면 그 순간 그 탈북 루트가 위험해지거든요그래서 이게 항상 조심스럽죠그래서 이런 게 나가면 러시아 (북한 노동자애들이 불편해해요.

 

이처럼 북한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움츠러든 분위기는 러시아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던 선교사들 사이에도 감지되고 있습니다자유아시아방송이 다수의 선교사에게 북한 노동자들 현지 상황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대부분 난색을 보이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도 최근 (지난 4자유아시아방송이 러시아 내 노동자들의 탈북민 신분 입국 여부와 현재 상황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입국 사실에 대해서는 탈북민 신변 안전해당국(러시아)과 외교 관계 및 탈북민 입국 경로 보호 등을 위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노동 인력 확보가 절실한 러시아와 외화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북한 당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파견이 이어지고 이들의 한국행 시도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에디터 박정우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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