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탈북민 가족의 절규] ② “인신매매의 끝이 강제북송입니까”
2023.12.19
![[북송 탈북민 가족의 절규] ② “인신매매의 끝이 강제북송입니까” [북송 탈북민 가족의 절규] ② “인신매매의 끝이 강제북송입니까”](https://www.rfa.org/korean/news_indepth/thecryofrepatriatednkescapeesfamilies-12192023151027.html/@@images/5cf00a73-c03c-4a3d-902e-68cbbcbadf60.jpeg)
앵커: 지난 10월 9일 중국에 구금돼 있던 500여 명의 탈북민들이 대거 강제북송된 이후 국제사회는 탈북민들이 처할 구금과 고문 등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이 강제북송되고, 정치범수용소까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탈북민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요. 북송된 탈북민들은 그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또는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11월 미국을 방문한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과 강제북송을 경험한 탈북민을 직접 만났는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지난 10월 강제북송된 탈북민의 가족, 장세율 씨와 우영복 씨의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서혜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인신매매로 원치 않는 임신… 약 먹은 사촌동생은 강제북송”
지난 2020년 1월, 코로나로 인한 북중 국경 봉쇄가 강화되기 직전 탈북한 신금실 씨.
하지만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한 신 씨는 자신도 모르게 인신매매 피해자가 됐고, 50세가 넘은 한족 남성에게 팔려갔습니다.
같은 해 4월, 신 씨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는 충격에 그는 남편이 먹던 감기약 한 줌을 집어 삼켰습니다.
약을 먹고 배앓이를 한 신 씨는 곧 하혈을 했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장세율] 하혈이 심각하니까 한족 남편의 부모가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될 거 아니냐’고 해서 큰 병원에 갔어요. 큰 병원에 가면 수속을 해야 하는데 신분이 없으니까… 그래서 일단 하혈이 멈출 때까지 있다가 중국 공안이 데리고 간 거예요.
중국 공안에 끌려간 신 씨는 3 개월 가량 조사를 받았고, 이후 노동수용소에서 6 개월 구금과 함께 강제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신 씨의 사촌오빠인 탈북민 장세율 씨는 지난 11월 8일 ‘탈북민 강제북송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으로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강제북송 반대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장 씨는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에게 사촌동생의 사연을 털어놓는 내내 깊은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장세율] 저는 3년 간 (사촌동생) 소식이 없어서 한족한테 물어보니까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하길래 입원해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올해 9월쯤 사촌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백산 구류장에 있다고...
한 달에 중국 돈 80원, 미화로 11 달러 가량의 돈을 받고 노동수용소에서 약 3 년간 일하다 중국 백산 구류장으로 이송된 신 씨.
그러던 지난 10월, 그가 북한 보위부에 넘겨졌다는 소식에 사촌오빠인 장 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특히 한국에 정착한 자기 때문에 더 심한 고문을 받지 않을까란 걱정에 그의 마음은 괴롭기만 합니다.
[장세율] 제가 여기 한국에 와있다는 이유로 제 사촌동생도 분명히 한국행을 계획했을 거라고 (결론내려) 북한 보위부는 조사를 할 것이고, 조국 반역죄로 정치범 수용소에 넣을 가능성이 커요.
“인신매매로 팔려간 올케도 강제북송… 중국인 남편도 모른 체”
같은 날 자유아시아방송 기자와 만난 탈북민 우영복 씨. 그는 탈북민 구출 과정을 다룬 기록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주인공입니다.
우 씨는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직전 기적적으로 탈북에 성공했지만, 중국에 살고 있던 그의 올케는 지난 10월 강제북송 됐습니다.
10월 9일 북송된 올케의 이름은 최순애.
2013년에 탈북한 최 씨는 중국에서 2 년 간 거주했는데, 그의 남편과 딸만 무사히 한국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최 씨는 다른 중국인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러다 누군가의 신고로 중국 공안에 붙잡힌 그는 중국 장춘 교화소에서 2년간 수감됐다가 지난 10월, 다른 500여 명의 탈북민들과 함께 강제북송 된 겁니다.
먼저 한국에 정착한 최 씨의 딸은 엄마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입니다 .
[우영복] 사실 순애 딸이 (한국에) 데려오려고 엄마에게 전화해보니까 ‘무조건 북송 대기‘ 중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중국인 남편과 통화도 했습니다. 생활비를 대줄 테니 북송을 막아달라고 호소도 해봤거든요. 그런데 “호적에 올랐으면 남편이라고 당당하게 나서겠는데, 호적이 없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우 씨는 지금도 중국에 사는 10만 여명의 탈북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한 여성들은 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거듭 호소했습니다.
[우영복] 아직 (북한에) 안 들어간 사람들도 “나도 언제쯤 북송 당하지 않을까, 언제 나를 잡아들여 보낼까” 불안해 하면서 오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미국에) 오게 된 것도 이제는 중국의 반인도적 범죄를 세계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북송된 탈북민의 가족들이 국제사회에 촉구하고 싶은 건 단 한 가지입니다.
북송되는 순간부터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탈북민들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중국 정부가 강제북송을 중단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보태달라는 겁니다.
[장세율] 탈북민들이 강제북송 되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잖아요. 우리도 수도 없이 싸워봤지만, 지금 중국이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를 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탈북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송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외침이 국제사회에 울려 퍼져 탈북민이 안전하게 돌아오고, 중국이 강제북송을 중단할 그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