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숨진 지 일 년이 지났지만,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듯 웜비어 씨의 무덤을 안내해 주는 묘지 관리인에서부터 웜비어 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무덤에 꽃을 배달한 주민에 이르기까지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는 계속됐습니다.
웜비어 씨의 사망이 북한 인권을 압박하는 계기가 됐고, 웜비어 씨가 사망한 지 일년 만에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가운데, 웜비어 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북한 인권의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1주년을 맞아 노정민 기자가 직접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를 다녀왔습니다.
- 웜비어 씨의 고향 신시내티, 추모 분위기 여전
- 만난 적 없는 웜비어 씨를 추모하며 보낸 화환
- 넥타이 수집가였던 웜비어 씨 묘비 옆에 놓인 넥타이 하나
- 인터넷 공간에서도 같은 시간 침묵으로 추모, 온종일 댓글 올라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오크 힐 묘지 (Oak Hill Cemetery).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씨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웜비어 씨가 세상을 떠난 날인 2018년 6월 19일. 묘지에 들어선 흰색 차 한 대가 웜비어 씨의 무덤 앞에 멈춥니다. 차에서 커다란 화환을 꺼낸 꽃 배달원 두 명이 그것을 웜비어 씨의 묘비 위에 세워 놓은 뒤 손으로 입맞춤을 보냅니다.
이 꽃은 웜비어 씨를 기억한 누군가가 꽃집에 부탁해 놓은 것으로 짧은 메시지에 추모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고 당신도 나를 모르지만,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늘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꽃 배달원의 말에 따르면 이 꽃을 보낸 사람은 이전에도 웜비어 씨를 기억하며 꽃 배달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션 퍼켓: 꽃 배달원] 웜비어 씨의 사망을 추모하기 원하는 사람이 보낸 꽃입니다. 그 사람은 이전에도 웜비어 씨의 사망을 기리기 위해 다른 꽃을 몇 번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새 그의 묘비 위에 넥타이를 그린 작은 돌을 올려놓고 간 추모객도 있었습니다. 웜비어 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그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도 웜비어 씨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뜨겁습니다.
당일 오후 2시 20분. 침묵으로써 웜비어 씨를 추모하자는 말에 수많은 사람이 동참했고, '그를 기억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답변도 온종일 추모 공간을 장식했습니다.


- 웜비어 씨 사망은 신시내티 사회에 큰 충격, 지역 사회를 하나 되게 해
- 지금도 그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 발길 이어져
- 웜비어 씨. 잔혹한 북한 인권 대변하는 상징 인물로 떠올라
- 북한 몰랐던 신시내티 주민에게 북한 인권 생각하게 해
작은 연못 앞에 위치한 그의 자리. 분수대의 물소리와 새 소리, 바람 소리로만 채워진 이곳은 마치 웜비어 씨가 고향에 안긴 듯 평화롭습니다.
지난 일 년간 아무것도 없던 웜비어 씨의 무덤 앞에 설치된 새 묘비에는 '오토 F. 웜비어'란 이름과 함께 아들, 형제, 친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묘비 한쪽에 놓인 넥타이 하나.
안내원으로부터 웜비어 씨가 넥타이 수집가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넥타이가 그곳에 놓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웜비어 씨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 씨는 인권활동가인 탈북자 지성호를 씨를 만났을 때도 직접 아들의 넥타이를 선물한 바 있습니다.
묘지 관리인인 키스 매스터 씨에 따르면 지금도 웜비어 씨를 기억하고 이곳을 찾는 지역 주민이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키스 매스터스: 묘지 관리인] 그 사건이 이곳 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나 풍선들이 휘날리곤 했습니다. 모두가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웜비어 씨의 가족은 그 힘든 과정을 잘 버텨냈습니다.
웜비어 씨의 사망은 도시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북한에서 석방된 그가 신시내티 공항에 도착한 뒤 사망하기까지 지역 사회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신시내티 주민도 당시 웜비어 씨의 장례식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지역 주민] 그의 장례식이 진행되던 작년 당시에 모든 도로가 폐쇄됐고, 많은 신시내티 주민이 길거리에 나와 줄지어 그의 죽음을 추모했습니다.
웜비어 씨는 2015년 12월 북한 관광에 나섰다가 자신이 머물던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웜비어 씨는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고, 미국 정부도 웜비어 씨의 억류 기간 인도적 차원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그가 혼수상태에 빠진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으며 영사접견권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 6월 13일, 북한에서 풀려난 웜비어 씨는 삭발을 하고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들것에 실린,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고향인 오하이오주에 도착했으며 엿새 뒤인 6월 19일,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가 식중독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린 뒤 수면제를 복용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북한의 설명이었습니다.
웜비어 씨가 신시내티에 도착한 순간부터 사망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취재했던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의 앤 세이커 기자도 당시 상황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앤 세이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기자] 제가 그를 만났던 당시 그는 비행기에서 막 내려졌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말하거나 듣지도 못했습니다. 북한에서 그에게 엄청나게 나쁜 일이 생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의사들은 그의 뇌 손상이 심해, 뇌가 스스로 붕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진술했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 저희가 이에 대해 아는 정보는 북한에서 주장했듯이 웜비어가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걸렸고 수면제를 먹었다는 증언뿐입니다. 북한이 전달한 이야기 외에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웜비어 씨가 사망하기 전과 후를 살펴본 의료진에 따르면 그의 몸에서 별다른 상처나 부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 병원에서 관리를 잘 받은 듯 보였지만, 북한이 전한 설명 외에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웜비어 씨의 사망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습니다.
웜비어 씨는 잔혹한 북한 인권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과 신년 국정 연설에서 웜비어 씨를 거론하며 북한을 불량 정권이라 비난했고,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그의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 씨와 동행하는 등 북한에 인권 개선을 압박하는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웜비어 씨의 사망을 계기로 미국은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으며 의회에서는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오토 웜비어 법'이 잇따라 발의됐는데, 북한 관련 법안으로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명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한을 잘 알지 못했던 신시내티 주민들도 웜비어 씨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세이커 기자는 말했습니다.
[앤 세이커] 신시내티 주민들은 오토 웜비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핵 개발 역량과 인권 문제 등 여러 사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정확히 웜비어의 사망 1년 후에 개최한 미북 정상회담이 많은 주민을 자극했습니다.

- 웜비어 씨 사망 1년여 만에 미북 정상회담 개최
- 미북 관계 변화 예상 속, 웜비어 씨 잊혀질까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 트럼프 대통령 "웜비어 씨의 죽음 헛되지 않았다"
- 웜비어 씨 부모 "아들이 여전히 자랑스럽고 그리워"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로 북한 땅을 떠난 지 정확히 1년 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웜비어 씨의 죽음이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 배경 중 하나라고 언급하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정상회담을 지켜본 웜비어 씨 부모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가족을 언급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아들인 웜비어 씨가 여전히 자랑스럽고 그립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 간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에서는 웜비어 씨가 점차 잊혀질 거란 우려도 내놓고 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동력이 떨어지면서 웜비어 씨의 존재감도 작아질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겁니다.
데니스 핼핀 전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에 억류됐던 웜비어 씨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악수를 나눴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려스럽다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미북 관계 속에서 그를 더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후속 회담에서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웜비어 씨의 사망은 계속 언급돼야 한다고 핼핀 전 전문위원은 덧붙였습니다.
[데니스 핼핀] 앞으로 미국과 북한이 진지한 협상에 나선다면 오토 웜비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 규명을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해외에 나간 미국인의 안녕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정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웜비어 씨 부모 만난 인권 활동가 지성호 씨 "웜비어 씨 잊혀지지 않도록 활동하겠다"
- 롭 포트먼 상원의원 "웜비어 씨 부모, 북 인권 상황 알리는 데 앞장설 것"
- 신시내티 지역 사회 "웜비어 씨의 희생 헛되지 않게 북 인권 개선돼야"
- 미국 정부 "웜비어 씨 기억하며, 앞으로 북 인권 문제 계속 제기하겠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 역시 적지 않습니다. 북한이 매우 잔혹한 인권 국가로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해도 열악한 북한 인권 상황의 상징으로 떠오른 웜비어 씨가 쉽게 잊혀질 리 없다는 겁니다.
웜비어 씨의 부모를 네 차례나 만나 대화를 나눴던 지성호 씨도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지성호] 저는 정상회담을 통해 웜비어 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북한 인권 문제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 국민이 북한 인권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이번 정상회담으로 웜비어 씨의 희생이 희석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계속 활동하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오하이오주 출신의 롭 포트먼(Rob Portman) 상원의원도 웜비어 씨의 부모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북한의 인권 상황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롭 포트먼] 정기적으로 웜비어 씨의 부모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웜비어 씨의 부모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그 아픔을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리고 개선하는 데 건설적인 방법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여전히 웜비어 씨를 기억하는 신시내티 주민도 북한 인권 개선을 통해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가 남긴 마지막 숙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세이커 기자는 설명합니다.
[앤 세이커] 신시내티 주민들은 미국과 북한이 싸움 대신 대화를 선택한 정상회담을 반갑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웜비어 씨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이 심각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시내티의 주민들도 같은 마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9일 웜비어 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웜비어 씨의 유가족이 우리의 생각 속에 남아 있다"라며 "앞으로도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미북 관계의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 웜비어 씨에 대한 기억과 북한 당국의 진실 규명, 사과에 대한 요구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북한의 총체적인 인권 침해와 유린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방문한 웜비어 씨의 고향 신시내티 곳곳은 일 년 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웜비어 씨의 무덤을 쉽게 찾아 준 안내원으로부터, 누군가가 그의 묘비에 올려놓고 간 작은 돌과 꽃으로부터, 그의 이름만으로 일 년 전 그날을 기억하는 지역 주민들부터 웜비어 씨가 아직 기억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웜비어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가운데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제2의 웜비어 씨가 나타나지 않기를, 또 북한의 인권 문제도 함께 개선되기를 그를 마음에 품은 이곳 지역사회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신시내티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