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 특집] 사고 팔리는 탈북 여성

워싱턴-서혜준 seoh@rfa.org
2023.07.28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 특집] 사고 팔리는 탈북 여성 16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팔려가 6년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은 인신매매 피해자 박은미 씨.
/ RFA Photo

앵커: 매년 73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입니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에게 연대를 표시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뜻을 모으는 날인데요. 하지만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은 여전히 인신매매 피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지금도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강제 북송의 협박 아래 육체적, 성적 착취를 당하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북한은 미 국무부가 지정한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임과 동시에 유엔이 채택한 인신매매방지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소수의 국가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서혜준 기자가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피해 상황을 재조명했습니다.

 

넌 내가 가진 물건 중 하나에 불과해

 

지난 19,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와 마주한 탈북민 박은미 씨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녀의 짙은 화장으로 오히려 박 씨는 굳세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떨리는 목소리와 붉어진 눈시울은 그의 예전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난 박 씨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2007년의 어느 날, 한 중개인(브로커)을 따라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북한 당국의 검열을 받고 관리소에 가게 된 이후 온 가족이 굶주리는 상황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16살이었습니다.

 

[박은미] 경제적인 생활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탈출구를 모색했는데, 그게 탈북이었어요. 주변에서 탈북을 하면 최소한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박 씨가 의심 없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중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브로커의 말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박은미] “중국에는 자식이 없는 노부부가 많으니까, 어린애들이 중국에 가게 되면 아마도 양딸로 입양될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주는 일거리를 통해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고, 돈을 벌어 부모님에게 도움도 줄 수 있을 거다라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저는 인신매매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어요.

 

어린 나이였던 박 씨는 브로커들이 북한 아이들을 돕는 선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돈을 받고 사람을 넘겨주는 범죄자란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 브로커는 북∙중 국경에서 밀수와 인신매매를 같이 했는데, 그때 피해자는 박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자] 본인이 인신매매 브로커에게 당했다는 걸 언제 아셨나요?

 

[박은미] 중국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몰랐어요. 제가 이런 상황에 처할지 몰랐고, 마지막 도착지인 시골의 브로커에게 갔을 때 느낀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이 와서 저를 보기도 하고, 옆에 있던 친구를 갑자기 새벽부터 데리고 나가서 3일 동안 팔러 다니고

 

[기자] 다른 여성들이 팔려 가고 본인의 차례가 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박은미]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을 못 해요. 무슨 말을 하면 마치 큰일이 저에게 일어날 것 같아서 오히려 덤덤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될 거란 기대를 안고 건너간 중국에서, 박 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인신매매의 대상이 돼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박 씨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자신을 산 중국 남성과 강제 결혼을 하고, 성적 착취와 협박도 일상이었습니다. “자신에게서 도망치면 중국 공안에 신고하겠다는 남성의 말에 강제 북송의 두려움을 느꼈고, 그렇게 꼼짝없이 6년이란 암흑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박은미] 제가 그곳에 도망치려는 신호를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들키면 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할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저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안 좋아도 좋은 척하거나, 들었어도 못 들은 척하면서 사는 거는 당연한 건데,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떠나서 인격 모욕을 할 때가 있거든요.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은너는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에 하나야’, ‘사용하다 불필요해지면 버릴 수도 있는 게 당신이야라는 말을 할 때, 그런 말을 평상시에 듣고 살아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박 씨는 당시의 상황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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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제비 생활 끝에 중국 돈 3만 6천 위안에 팔렸던 탈북민 손혜영 씨. / RFA photo

 

이 여자는 얼마 받겠는가?, 얼마에 파는가?”

 

함경북도 단천에서 태어난 탈북민 손혜영 씨도 인신매매 피해자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굶주림으로 부모님을 잃고 꽃제비가 된 손 씨가 길거리를 전전하다 ‘최소한 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당시 손 씨 외에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손혜영] 저를 데려간 여자가 얼마 받겠는가’, ‘얼마에 파는가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듣기 거북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언니,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말자. 내가 팔려 가는 몸이라 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2007년에 손 씨가 팔린 금액은 중국 돈으로 36천 위안 (미화 약 5천 달러).

 

그렇게 팔려가 마주한 현실은 비참했습니다.

 

쥐가 돌아다니는 허름한 초가집, 무능력한 남편,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적응하기 힘든 생활 문화 등으로 삶의 비참함을 느끼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손혜영]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먹일 분유가 없는 거예요. 아예 분유 살 돈도 없으니까, 제가 생각하다 못해 염소를 사서 분유에 조금씩 섞어 먹이려고 한 달 동안 말도 못 하면서 일단 건설 일을 했어요. 그래서 염소를 사고, 그 다음에 중국말을 배워야겠다고 해서 어디도 안 나가고 문을 걸어 잠그고 텔레비전만 봤어요.

 

손 씨는 지금도 중국에서 ‘인신매매 사기에 연루되는 탈북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손혜영]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 사기 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탈북민들이 돈을 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어느 집에 팔려 가는 거죠. 그리고 도망치는 거죠. 그러니까 파는 사람과 브로커가 짜고 (탈북민에게) ‘팔려 가는 집에서 한 열흘 살다 와라이렇게 (지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하다가 (중국 공안에) 잡히는 사람도 있고…  

 

중국에서 아들과 딸을 낳으며 살던 손 씨는 2012년 어느 날 누군가의 신고로 강제 북송됐고, 북한 보위부에서 모진 구타와 고문을 받은 뒤 교화소에 수감됐습니다.

 

당시 중국에 남겨 둔 딸은 고작 3, 아들은 2살이었습니다.

 

 

탈북 여성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네덜란드의 법률회사 ‘글로벌 라이츠 컴플라이언스(Global Rights Compliance: GRC)’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중 국경 지역에 약 15~20만 명의 탈북민들이 있고, 이 중 대부분이 여성이며, 이들 중 70~80%는 인신매매 피해자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국경 지역에서 탈북 여성들이 미화로 단돈 수백 달러에 팔리고 있으며, 인신매매 범죄조직들은 매년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올해 갱신한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21년 연속 최하위인 3등급 국가로 지정했습니다.

 

보고서는 “중국에서 공식적인 이민 자격 없이 살고 있는 북한 난민 또는 망명 신청자들은 인신매매에 특히 취약하다인신매매범들은 일부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유인, 납치, 또는 억류해 매춘업소나 술집, 인터넷 성매매 거래소, 강제 결혼으로 내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은미 씨는 중국 내 탈북 여성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박은미] 나이가 어리든 많든, 제가 볼 때 모든 여성은 두 가지 선택 길에 놓이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친척 등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얻어서 인신매매를 안 당하는 길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무런 인맥이 없으면 말 그대로 모르는 곳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말이 안 돼요. 길바닥에 있는 순간 공안에게 붙잡혀 북송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두 번째 길인 인신매매를 당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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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억제∙처벌을 위한 ‘유엔 인신매매방지 의정서(TIP)’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인 북한. / UNODC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2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코로나 대유행 이전 탈북한 여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지난 일 년간 기록한 북한 여성 인신매매 피해 사례 중, 주로 결혼이나 노동을 위해 인접 국가로 인신매매된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북송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전해왔다그동안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측은 강제 북송이 임의적인 구금 및 고문, 성폭력을 비롯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우려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2019, 인신매매 처벌에 관한 형법 일부를 개정하고, 처벌조항을 세분화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개정된 형법의 처벌 수위가 기존보다 낮아졌을 뿐 아니라 인신매매범이 많은 뇌물을 바치면 경범죄로 처리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과 북∙중 국경 봉쇄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진 가운데 인신매매 근절에 대한 북한 당국의 노력도 부족해 오늘날 피해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에 OHCHR은 북한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인신매매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며, 특히 가장 취약한 여성과 어린이와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재차 권고했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도 지난 5, 중국 내 여성 인권 실태에 관한 정례 검토보고서에서 중국이 성 착취와 강제 결혼 등을 목적으로 북한 여성과 소녀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종착지(destination)가 됐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2월 기준 여전히 유엔에서 지난 2000년에 채택한 인신매매방지(TIP)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소수의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용기 주고 싶어 영어를 배웠어요.”

 

인신매매 피해자로서 6년간 중국에서 살았던 박은미 씨는 2014년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 숨기고 살았지만, 이제 더는 감추고 싶지 않아졌다고 그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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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통스러웠던 중국 생활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다가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 박은미 씨. / RFA Photo

 

[박은미] 제가 죄를 지은 것 같더라고요. 마치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구나 싶은...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제 잘못이 아니거든요. 어찌 보면 인신매매는 성적인 폭행을 당하는 거고, 이 얘기를 하면 모두가 저에게 손가락질할 것 같은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가 당했을 때는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너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보는 게 맞지 않을까,

 

박 씨는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고, 지금은 영어로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 피해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또 그는 중국을 포함한 제3국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탈북민들, 특히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박은미] 아마도 중국 감옥에는 지금도 북송되는 날짜를 기다리는 탈북민들이 있을 거예요. 최종적인 목표는 북한에 있는 주민 모두가 지금 저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제3국에서 살고 있는 북한 이탈 주민을 먼저 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피해자)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누군가가 그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하면 저 역시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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