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전력난 해소, 러시아 지원만으론 부족… 중국이 나서야”
2024.08.01
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지난달(21~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해 '우려스러운 전개'라고 언급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준수를 촉구했습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의 이러한 우려와 대북 제재 촉구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조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은 북한이 유일하게 참가하는 다국간 협의체입니다.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는 아세안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한국, 러시아, 중국, 인도(즉 인디아) 등 27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나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나 인도와 같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도 참가하기 때문에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일치된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은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다수결이 아닌 전원합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 자리에 참여하는 이유는 외부와의 접촉 기회를 갖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과의 접촉입니다. 실제로 2002년 7월에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당시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의 백남순 외무장관에게 커피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파월 장관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측의 제네바 합의 위반에 대해 미국은 이미 파악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미국과의 접촉 기회는 북한 입장에서는 제네바 합의가 돼 있던 상황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하게 6자 회담이 가동되던 시기와 미북 간 협의가 진행되던 시기에도 북한은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접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2019년 3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같은 해 8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는 북한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최선희 외무상이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 불참한 것은 아직 미국과 어떤 협의가 진행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올해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불참하고 평양에서 벨라루스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선택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올해 ARF에 최선희 외무상이 아닌 현지 주재 대사인 리영철 대사를 참석시켰는데요. 북한 외무상의 ARF 불참은 2019년 이후 연달아 6번째입니다. 최선희 외무상이 ARF에 불참하고 벨라루스 외교장관과 회담을 우선시한 배경에는 어떤 전략적 고려가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저는 앞서 이번에는 미북 협의와는 다른 목적으로 최선희 외무상이 라오스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김성남 국제부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노동당 대표단이 지난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라오스를 방문해 통룬 시술리트 국가주석과도 회담을 가진 바 있기 때문입니다. 라오스는 북한이 ‘동지’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우호국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희 외무상이 ARF를 이용해 라오스를 방문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예상됐지만, 이 행사의 올해 일정은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벨라루스 외무장관과의 회담 일정이 겹친 것이 최선희 외무상이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 외무상이 벨라루스 외무장관과의 회담 일정을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일정과 맞춘 것이 북한이 의도한 전략적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현재 미국보다 벨라루스를 외교적으로 더 가치 있게 여긴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북한은 원래 한미일 등 민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다자 협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게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유엔의 제재 위반 행위를 하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는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다자 협의에 참가하는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자> 북러 간 밀착이 가속하는 가운데 북한 전력산업 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이 7월 27일 보도했습니다. 이번 방문이 북한 전력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양국의 전력 분야 협력이 북한 경제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 경제가 개선되지 않는 주요 원인은 에너지 부족입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북한의 총 전력 공급량은 238억 kWh로, 한국의 약 2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해 북한 전체 전력 수요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가 2013년까지 평양시 대동강 구역에 살았던 탈북민과 인터뷰했을 때, 그는 해마다 7~10월 여름철에는 수력 발전이 가능해 하루에 아침 저녁 통틀어 15시간 정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밖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 2011년까지 평양 인근 평성시에 거주했던 다른 탈북민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력발전이 어려운 겨울철에는 하루 종일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력 부족의 원인은 석탄,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의 부족과 북한 발전소의 노후화에 있습니다. 북한은 원래 전력 부문에서 구소련에 많은 의존을 해왔습니다. 터빈과 발전기도 소련제일뿐만 아니라 석유도 우호국 가격으로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와 전력 인프라(즉 기반시설)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너지와 전력 인프라 개선에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북한의 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을 가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7일 김정은 총비서가 정전협정 체결 71주년을 맞아 6·25전쟁 참전 중국군을 기념하는 우의탑을 방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최근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북중 '혈맹'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는데요. 북한이 앞으로 북러 밀착과 북중 관계 사이에서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균형 전략이 있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중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유엔 제재 위반인 북한의 선박 간 환적 행위를 막기 위해 한미일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일부 국가들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 항공기나 선박이 이런 감시 활동을 종종 방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미일 등이 북한에 대한 단속 활동을 명분으로 중국의 안보에 도전하고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중국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끝낸다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오는 10월 북중 국교 정상화 75주년을 기회로 삼고 김정은 총비서가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총비서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측에 반발하며 여러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중국 드라마 방영을 제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그 정도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최근 북중 국경 지대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도 두 나라가 자연스럽게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북한은 북한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대처하는 모습은 북중 간의 어색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관련기사>
북 전력 부족으로 학생 교복 생산 차질
북 홍수 위성사진으로 보니 ‘흙탕물 천지’
국정원 “김정은 140kg 초고도 비만...김주애 후계자 수업 진행”
<기자> 마지막으로, 최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수시로 데리고 다니던 그의 딸 김주애의 모습이 북한 매체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 국정원은 김주애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그간 김주애의 행보에는 일정한 패턴이 없었습니다. 김주애가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간격, 행사의 규모와 종류, 그리고 장소 등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김주애가 공직자가 아니라 김정은 총비서가 사랑하는 자녀로서 비공식적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공식 석상 참석은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북한 독재 정치를 증거하는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북한 주민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주애를 친근하게 느끼는지, 아니면 반감을 느끼는지를 파악하면서 그녀의 매체 노출 빈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과거에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정은 총비서가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비공식적으로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한국 국정원이 말한 대로 김주애가 비공식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김주애가 대중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 북한 사회에서 그녀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이었습니다.
에디터 박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