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조총련 특집 1회] ‘일본 속의 주체’의 탑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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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채명석 seoul@rfa.org

저는 지금 도쿄 치요다 구 후지미 쪼에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 정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이다바시 역에서 내려 언덕바지를 한참 올라가면 콘크리트 요새와 같은 회색 건물이 나타납니다. 지난 86년9월에 증축했다는 지상 10층, 지하 2층짜리 현대식 건물입니다.

철제 정문의 왼쪽 벽에는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라는 현판이 일부러 숨겨 놓은 듯 작은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조총련 중앙본부는 본래 도쿄 시나노마치에 있었습니다. 1960년 6월 방화로 추정되는 큰불이 일어나 잿더미로 변해 현재의 후지미 쪼로 이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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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의 김일성으로 군림하던 ‘종신 의장’ 한덕수는 후지미의 5층 짜리 중앙 본부 회관 건물을 총격이나 방화에도 끄덕 없는 ‘일본 속의 주체의 탑’으로 만들겠다면서 산하 상공인들로부터 40억 엔을 끌어 모아 21년 전에 지상 10층으로 개축했습니다. 북한 대사관을 자처하듯 옥상에는 북한의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고, 5미터가 넘는 담장과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외부인의 침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중앙본부 정문과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행동 우익 즉 과격파 우익들의 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취재 도중 기자도 정문을 경계 중인 경찰관으로부터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조총련은 지금 일본의 정리회수기구가 제소한 627억 엔 반환 소송에서 패하고 항소를 포기함으로서 ‘일본 속의 주체의 탑’으로 군림해 온 중앙본부 회관이 머지 않아 경매로 넘어 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 방송은 1955년5월에 결성된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조총련의 오늘과 내일을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볼 예정입니다. 우선 청취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총련이 걸어 온 발자취를 간략하게 더듬어 올라 가 보겠습니다.

해방 후 일본에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 앉은 우리 동포가 60여 만 명에 달했습니다. 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45년10월 ‘재일본 조선인 연맹’(조련)이 결성됐고, 우파세력은 45년11월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을 결성했습니다.

‘재일본 조선인 연맹’은 그러나 미 점령군 사령부가 좌익 활동에 대한 단속을 강화함에 따라 49년 9월 강제 해산 당하고 51년 1월 일본 공산당의 하부 조직인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으로 거듭났다가, 김일성을 지지하는 한덕수의 주도로 55년5월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를 즉 ‘조총련’을 결성했습니다.

한편 우파세력은 46년 10월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즉 ‘민단’을 결성했고 94년4월에 일본에 정주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거류’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결성 당시 조총련 세력은 60만 재일동포의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나, 65년 한일간에 국교가 수립하고 영주권 신청 운동이 일어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국적을 선택한 재일동포가 33만명, 북한 국적을 선택한 재일동포가 28만 명으로 조총련과 민단의 세력이 역전됐습니다.

72년 일본 정부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에 대해서도 도항의 자유를 인정하여 일본에 재입국을 허가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 온 동포들로부터 공화국이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 실은 ‘동토의 공화국’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조총련을 이탈하는 동포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게 됐습니다.

89년 10월 아사히 신문이 보도한 것을 보면 일본의 공안당국은 조총련의 구성원을 6만 명 이하 그 영향력에 있는 재일 조선인을 18만 명으로 추계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서울 올림픽,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남북 정상회담, 일본인 납치 사건 등의 여파로 조총련 세력은 나날이 줄어들어 최근에는 5만에서 4만 정도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조총련의 내부 통계는 아직껏 외부로 공개된 바 없습니다.

조선대학교 교원을 지내면서 조총련 활동가로 일해 온 ‘코리아 국제연구소’의 박두진 소장은 RFA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회견에서 “현재의 조총련 세력은 5만 명 이하, 조직원은 약 3천 명 정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박두진: 우선 국적 상황으로 보면 재일동포는 현재 59만 즉 약 60만입니다. 그중 뉴커머 즉 80년대 후반에 일본에 건너 온 사람들이 15만 명이고 특별 영주권자가 45만 명입니다. 특별 영주권자 중 민단에 국민 등록을 한 사람은 40만에서 41만 명 정도이죠. 이렇게 본다면 조선(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5만 이하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다른 방법으로 계산해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예컨대 현재 조총련산하 학교에 다니는 학생수가 1만 명을 밑돌고 있는데요, 1만 명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들의 가족이 평균 4명이라고 생각한다면 4만 명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리고 조직 활동하는 사람은 한 3천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앙본부, 각 지방 본부 그리고 조선 신보사, 학교 교원, 조은 신용조합 직원 등을 모두 합쳐서 말입니다. 조총련이 각 종 행사나 항의 시위 등에 실제로 동원이 가능한 인원은 한 1만 명 정도라고 봅니다.

박두진 소장의 말에 따르면 김정일 비서가 조총련을 직접 지도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또 ‘조총련의 김일성’으로 불리던 한덕수 유일 체재가 무너지고 김정일-허종만 라인이 굳혀 진 것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86년 9월에 열린 제14차 전체대회에서 허종만이 재정 담담 부의장으로 승격한 부터입니다.

조총련은 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이듬해인 95년 9월 17차 전체대회를 열어 ‘주체 위업에 헌신한다’는 강령을 내걸고 김정일을 오직 한 분의 영도자로 받들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재일동포들의 권리 옹호에 앞장서는 친목단체라기 보다 오로지 김정일 위원장에게 충성하고 돈을 갖다 바치는 ‘대형 손 금고’로 전락하게 됐다고 박두진 소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조총련이 북한 지도부의 ‘대형 손 금고’로 전락한 결과, 산하 조은 신용금고가 잇달아 도산하고 급기야 중앙본부의 건물과 토지가 정리회수기구에 의해 경매로 넘어갈 운명에 처하게 됐습니다. 중앙본부 부동산 사전 매각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재일동포들의 움직임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도쿄 니노하시에 있는 한국 영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건이후 조총련에서 민단으로 적을 바꾸는 재일동포들의 수는 매달 평균 150여 건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큰 위기감을 느낀 조총련은 지난 8월3일과 4일 총련 본부위원장 회의를 열어 ‘동포 되찾기 운동’을 총련의 모든 활동에 선행 시켜야 한다고 각 지방 본부위원장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 지방 본부의 모든 조직 활동을 집중시켜 산하 재일동포들의 이탈을 막고 동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 모으라는 얘깁니다.

여기서 조총련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우리집을 지키자’란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우리집을 지키자” (작사 김정수, 작곡 최진욱): 모두 다 모여라. 우리집 지키자. 탄압의 바람 몰고 원쑤들이 노린다. 단결은 승리요. 단결은 생명. 일심단결 노래를 높이 부르자. (후렴) 놈들아 물러가라. 당장 물러가라. 귀중한 우리집 온몸으로 지키자.

그러나 침몰하는 난파선이나 다름없는 조총련이 우리 집을 지키고 잃어버린 동포들을 되찾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올해로 결성 52주년을 맞이한 조총련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내일은 조총련 중앙본부 부동산의 사전 매각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허종만 책임 부의장이 조총련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 배경과 허종만에 대한 조총련 사회의 반발을 전해 드리고 마지막 날에는 길거리에 내앉게 된 조총련의 앞날을 짚어 보겠습니다.

<자료 - 조총련 관련 연표>

45년10월 재일본조선인 연맹(조련) 결성 51년1월 재일조선통일 민주전선(민전) 결성 55년5월 재일본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결성 57년 김일성으로부터 교육원조비 및 장학금 2억2천만엔 수령 (그 중 1억 엔으로 조선대학교 건립) 58년9월-11월 학습조 회원에 북한 노동당 당원에 준하는 자격 부여 59년12월 첫 북송선 975명을 태우고 니가타 항 출항 (85년까지 9만3천339명 귀국, 그중 98% 이상이 남한 출신) 64년 제7차 전체대회에서 “학습조 회원은 부단히 학습할 의무가 있다”고 명기 72년 일본정부가 조총련계 동포들에게 도항의 자유 인정, 재입국 허가 70년대 중반 김정일이 조총련을 직접 지도하기 시작 (학습조에게 유일사상 체계를 확립하는 10대 원칙을 배포) 79년 조총련 ‘단기 조국방문단’ 조직 86년9월 현 중앙본부 회관 완공 94년7월 김일성 심장마비로 사망(82세) 95년9월 제17차 전체대회에서 김정일을 유일한 영도자로 추대 97년5월 조은 오사카 신용조합 도산 99년5월 조은 도쿄 등 13개 신용조합 연쇄 도산 01년1월 일 경찰, 사상 처음으로 조총련 중앙본부 강제 수색 01년2월 한덕수 종신 의장 고령으로 사망(92세) 03년7월 도쿄도가 고정자산세 미납을 이유로 중앙본부 차압 06년5월 민단과 역사적 화해, 그후 백지화 (07년6월 민단이 당시의 하병옥 단장 제명) 06년7월 만경봉 92호 입항 금지 06년10월 북한 선박 입항 전면 금지 07년6월 도쿄 지방 법원, 조총련에 627억 엔 반제 명령

* 주: RFA 자유아시아 방송은 <코리아 국제 연구소>의 박두진 소장의 자문을 받아 독자적으로 작성한 <조총련 관련 연표> <허종만 관련 연표> <남승우 관련 연표> 등을 이번 특집방송을 통해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