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 생각] 북한체제 위협하는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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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데 이어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이란 이름도 생소한 법률을 잇달아 만들고 외부 사조나 남한 문화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주민들의 눈과 입, 귀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북한의 3대 악법으로 꼽히는 이들 법률은 모두 북한 주민, 특히 청소년들 속에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남한의 문화, 즉 한류 문화를 차단하고 외부 사상의 유입을 막기 위해 급조해낸 법입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남한 문화 수용 행위를 반동으로 규정하고 법까지 제정하면서 강력하게 금지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북한 주민들 속에서 한류(남한)문화가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남한, 즉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동경심이 증폭되어 북한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주민이 한국 문화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입니다.

북한에서 남한 가요를 중심으로 한 한류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한중수교 이후 남한 가요나 드라마, 영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 중국 조선족들이 북한의 친지에게 한국가요, 영화, 인기 TV드라마를 불법으로 복사해 전달하면서 북한에서 남한 대중문화의 열풍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 가요를 연변에서 유행하는 노래라는 의미에서 ‘연변가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조선족들이 만들어 전달한 불법복제판 CD는 장마당과 암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되었습니다.

따오판(불법복제판)으로 불리는 남한의 노래, 영화, 드라마 CD가 장마당을 통해 북한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남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는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고난의 행군’ 시기여서 일반 주민들은 값 비싼 남한 영상물을 쉽게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로 부유층과 지식인, 대학생 등 젊은층에서 은밀하게 유통되던 CD를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돌려보는 바람에 영상이 흐릿하고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도 많았지만 남한 문화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갈증을 달래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생활고에 지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노래와 영화, 드라마는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개성공단에서 흘러 나간 남한 가전제품과 의류, 생필품에 매료되었던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쳐지는 남한 생활은 놀라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탈북민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반부터 2020년까지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도 한류문화의 전파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류문화의 적극적인 수용과 남한에 대한 동경심이 대규모 탈북 사태로 이어지자 당시 김정일 정권은 남한 가요와 영상물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구 소련 영화나 선전물로 도배된 북한 TV 방송에 신물이 난 북한 주민들은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남한 드라마,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휴전선 접경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는 남한 텔레비전 방송을 직접 시청하기 위해 특수 안테나를 설치한 집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난 2012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3명은 '북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가 남한 드라마를 전혀 본 적 없다는 말’이라며 ‘북한 주민들이라면 남한 드라마를 못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못 보면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남한)유행어를 몰라 따돌림을 받는다”라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2010년대에 탈북한 모든 탈북민들은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이 알판(CD)이나 USB, SD카드 같은 영상저장장치를 통해 남한 영화, 드라마를 볼 정도로 한류가 널리 퍼졌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부터 북한은 한류문화 접촉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젊은층 속에서 급속하게 번지는 한류문화가 체제를 위협할 수준이라고 판단한 김정은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다 발각될 경우 최고 총살형이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하고 109상무, 727상무, 114상무를 조직해 한류문화 수용자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뿌리 깊은 뇌물 관행 때문에 각종 상무조직의 단속원들조차 압수한 저장장치를 통해 한류를 즐기고 뇌물을 받고 단속된 사람들을 풀어주는 바람에 한류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한류 확산에 위협을 느낀 북한 당국은 앞서 언급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비롯한 3대 악법을 제정해 주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 극단적인 조치를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3대 악법이 시행되면서 북한 내 한류문화는 상당히 위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더 은밀하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한류문화를 접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폐쇄사회에서 생각과 사고의 자유를 갈망해 온 북한 주민들에게 한류문화는 외부 세계, 특히 남한 사회를 이해하는 탈출구이자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