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무형문화재② - 전통춤과 민속놀이

북한 평양 개선문 광장에서 열린 경축무도회 모습.
북한 평양 개선문 광장에서 열린 경축무도회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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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북한의 무형문화재 중 전통춤과 민속놀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마을 공동체에 기쁜 일이나 궂은 일이 있을 때 마을주민이 한 자리에 모여 축하하거나 함께 슬퍼하는 미풍양속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가을 추수를 끝낸 다음에 풍성한 수확을 안겨준 하늘과 땅의 신에게 감사하는 의식과 잔치를 벌였고 주민 모두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놀이마당으로 수확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변하면서 민요와 함께 전통무용, 즉 민속춤과 민족 고유의 놀이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민요와 함께 민속춤, 마당놀이 같은 전통예술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전통예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그 원형보존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펴고 있습니다. 전통춤의 명인을 예능보유자, 즉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활발한 후계자 양성과 공연활동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의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북한도 전통무용을 민족고유의 예술로 인정은 하고 있지만 대대로 전승되어온 전통춤과 놀이를 김일성식 주체사상에 입각해 왜곡, 변형시켜 민족고유 예술로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각 지방마다 수백 년 전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춤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민속예술이 과거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는 태도를 복고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색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소위 김일성 혁명역사를 중심으로 전통의 계승과는 상관없는 형태의 춤과 놀이를 재창작했습니다.

북한이 전통춤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식 선전 공연형식으로 재창작한 ‘조국의 진달래’, ‘키춤’, ‘사과풍년’, ‘눈이 내린다’ 같은 집단 춤공연이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 무용입니다. 북한에는 또 민속무용과 민요를 합쳐 소위 혁명역사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재구성한 혁명가극이라는 게 있습니다. ‘피바다’, ‘당과 참된 딸’,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는 북한이 자랑하는 5대 혁명가극입니다. 북한은 집단춤이나 혁명가극에 등장하는 춤과 노래(민요)를 전통의 계승과는 거리가 먼 혁명적인 이미지 표현에 주력함으로써 목적의식이 뚜렷한 선전선동 예술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민족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면서 원형복원과 예술성보다는 투쟁정신과 사상성 강화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한국의 무용전문가들은 북한의 무용은 전통춤에서 보이는 유연한 장단과 섬세한 춤사위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춤의 춤사위, 즉 춤동작을 고도로 기교화시켜 빠른 춤사위나 짧게 끊는 스타카토식 동작과 무용수들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전체주의식 예술로 변모시켰다는 것입니다. 즉 북한의 무용은 독립된 예술 장르가 아니라 정치에 종속된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었고 중앙당의 방침에 따라 언제든지 그 내용과 형식이 바뀔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처럼 씨름을 비롯한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직장 체육대회를 할 때 줄당기기와 씨름은 거의 빼놓지 않는 편”이라고 말해 북한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민속놀이가 이 두 가지 놀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널뛰기, 그네뛰기, 활쏘기, 말타기, 격구 등은 북한에서도 일반화된 민속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민속놀이 중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전통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마당놀이와 탈춤은 오늘날 북한에서 크게 위축되거나 변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려 말부터 황해도 일대에서 전해 오는 봉산탈춤은 등장하는 탈의 종류나 서민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으로 남한의 가산오광대, 강령탈춤, 고성오광대, 하회별신굿탈놀이, 예천청단놀음 등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탈춤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 12과장(막)으로 이뤄진 봉산탈춤은 지난 1954년 7월 젊은 시절의 김정일이 탈춤 공연을 보고 “우리 조상이 가난하게 산 것은 귀신 때문이 아니라 지주들의 착취 때문”이며 “흉칙스런 모양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을 주민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북한에서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9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다시 복원된 봉산탈춤이 선보였는데 템포도 빨라지고 내용도 혁명역사 개념이 가미되어 탈춤의 원형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에는 이밖에도 은율탈춤, 북청사자놀음 등 남한의 탈춤과 구별되는 독특한 형태와 내용으로 구성된 탈춤이 있는데 당국의 배척으로 전승의 맥이 단절되었습니다. 북한지역의 3대 탈춤, 즉 봉산탈춤과 은율탈춤, 북청사자놀음은 예능보유자들이 6.25 때 월남해 한국에서 후계자를 양성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예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밖에도 북한에는 서해안배연신굿을 비롯해 토속신앙의 한 형태인 전통굿이 발달했지만 무속이나 미신을 철저히 배격하는 북한당국의 단속으로 그 명맥이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황해도 해안 지역의 민속굿인 서해안배연신굿과 대동굿의 무당 김금화 역시 한국전쟁 때 월남해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한국에서 많은 후계자를 양성해 서해안배연신굿은 지금도 한국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무관심과 탄압으로 설자리를 잃고 전승의 맥이 끊긴 북한지역의 전통무용과 마당놀이가 한국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정부의 후원아래 원형 그대로 후대에 전승되는 현실을 보면서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