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김정은의 생모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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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이 자신의 생모이자 북송재일교포인 고용희로 인한 콤플렉스, 즉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 2011년 노동당 영화문헌편집사가 제작한 선전자료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란 기록영화를 회수하고 있다고 북한전문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알판(CD)에 담긴 이 기록영화는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의 생전 활동을 다룬 영상물입니다. 고용희가 김정일과 함께 등장하는 85분짜리 이 영상물은 지금도 인터넷이 개방된 나라에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유튜브(YouTube)에 올라 있습니다.

이 영상물은 고용희를 김정일의 처라고만 언급하고 김정은을 낳은 친모임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고용희가 김정은의 생모라는 사실은 북한 주민을 포함한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고용희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출신으로 9살 때 부모와 함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귀국동포, 즉 북송재일교포입니다. 북송 후 평양음악무용대학 무용과를 졸업하고 1971년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에 선발되어 무용수로 활약하다 1972년에 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예능실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을 받은 김정일은 측근들과 밤마다 북한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호화파티(연회)를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정일은 비밀연회 때마다 만수대 예술단에서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여성들을 선발해 이른 바 기쁨조(공연조)로 연회에 참석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고용희가 김정일의 마음에 들어 옆자리에 앉는 고정 파트너가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1976년부터 김정일과 동거하면서 성혜림의 뒤를 잇는 김정일의 네 번째 여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용희는 김정철과 김정은 두 아들외에 딸 김여정을 낳으면서 김정일의 총애를 받게 되어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재일교포 귀국자라는 출신 배경 때문에 시아버지 김일성 생전에는 김정일의 부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아들 둘과 딸을 낳아준 고용희를 아끼면서도 평생 고용희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관저와 원산특각(별장) 등에 숨겨놓은 채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일성은 생전에 고용희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의 소생인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등을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이 그렇게 보는 이유는 김정은이 집권 후 김일성의 후광을 받기 위해 김일성 흉내내기에 몰두하면서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도 공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한 백두혈통을 북한의 유일한 세습권력으로 인정하고 있는 북한에서 재일교포 귀국자 출신인 고용희를 생모라고 밝히는 것은 김정은의 백두혈통 정통성이 크게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출신성분으로 사회적 계급이 정해지는 북한에서 재일교포 귀국자는 남한 출신, 친미자본가의 후손과 더불어 가장 낮은 단계인 적대계급 잔여자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적대계급이란 청산과 숙청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의 친인척을 말하는데 이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대학진학, 직장 배치, 입당, 군복무, 심지어 혼인에서까지 심각한 차별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일의 실질적인 부인 행세를 하며 부와 권력을 누리던 고용희도 항상 자신의 출신 성분이 인민대중에 알려질까 조마조마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스트레스 (압박감) 때문인지 고용희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를 받다가 2004년에 사망했습니다. 고용희의 무덤은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 묘역에 큰 규모로 조성되었는데 일반 주민들에게는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집권 10여 년이 지나도록 생모의 이름과 외가쪽 가계도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재일교포 출신인 생모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의 우상화 선전에 어머니 고용희를 등장시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의 무용수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그의 백두혈통 정통성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수년 전에 고용희의 아버지, 즉 김정은의 외할아버지 고경택이 일제 때 친일파였다는 극비문서까지 발견되어 도저히 외가의 가계를 밝힐 수 없는 형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지난 2023년 12월 6일 북한의 어머니 날을 맞아 11년 만에 어머니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김정은은 이 대회에 이틀 연속 참석하고 혁명적으로 공이 있는 어머니들을 선발해 시계선물 증정 행사까지 가졌습니다. '모성'을 강조해 젊은 층의 사회 기강을 잡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김정은 자신의 생모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머니 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막상 자기 어머니는 공개하지 못하고 할머니인 김정숙만 선전매체를 동원해 집중 조명했습니다. 김정은은 이 대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두 차례나 눈물을 보여 일찍 사별한 어머니(고용희)에 대한 그리움과 생모를 공개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복합된 눈물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추진해온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서 생모 고용희의 출신성분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언제까지 고용희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백두혈통 김정은을 강조하는 우상화 작업을 계속할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