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주민의 생명줄 장마당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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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한국의 젊은이들도 북한에 수많은 장마당(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주민 대부분이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시장을 통해 구입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표방하는 북한은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배급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 창립 초기부터 식량과 생필품의 생산이 수요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에 일찍이 김일성 시대부터 주민들 간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농민시장’이 형성되었고 당국도 이를 인정해왔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의 붕괴와 90년대 중반의 대기근(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경제가 파탄나고 배급제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너도 나도 장마당에 모여들었고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장마당은 마비된 국가의 배급체계를 대신해 인민의 생계를 해결하는 생필품 유통 공간의 역할을 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급속히 확대되었습니다.
북한당국도 통치자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중국과의 공식무역은 물론 대외무역기관들을 동원한 불법 무역(밀무역)을 국가가 나서서 조장하는 방법으로 부족한 생필품을 들여와 장마당을 통해 시장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당 자금, 즉 통치자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중간의 공식무역과 국가, 개인차원의 비공식 무역을 통해 유입된 상품들이 장마당 상품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고 북한의 시장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주민들은 가정부양(주부)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합니다. 월급은 형편없는 수준이고 배급도 없는 직장이지만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남편 대신 여성들이 집에서 간단한 식품이나 생필품을 직접 만들어 장마당에서 판매하고 그 돈으로 필요한 식량을 구입해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가정주부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할 형편이 안 되는 세대들은 꼼짝없이 굶을 수밖에 없어 고난의 행군 시기에 희생이 컸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장마당은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자 국가의 배급체계를 대체하는 중요한 식량 및 상품 유통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세대주(남편)는 직장에 나가 사회주의를 하고, 아내는 자본주의를 해야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고 탈북민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장마당이 북한주민들의 생명줄인줄 뻔히 알면서도 당국의 필요에 따라 장마당을 묵인 내지 양성화하는듯 하다 갑자기 단속과 통제를 가하기도 합니다.
지난 2005년부터 종합시장의 개장시간과 장사꾼의 연령 제한, 장사 품목 수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소위 장마당세를 내지 않고 장마당과 인접한 지역이나 골목에서 노점을 하는 개인 메뚜기 장사꾼(단속원이 뜨면 메뚜기처럼 뛰어 달아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들을 단속해 힘없는 서민들의 생계형 장삿길을 막고 나섰습니다.
장마당의 발달과 확산은 서민생계를 도와주고 북한경제를 일부 개선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의 발달과 함께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의 유입과 확산이 급속히 이뤄지고 그 결과 주민들의 당국에 대한 의존과 신뢰감이 약화되는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선망 등 주민들의 정치사회의식 구조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입니다.
시장을 통한 주민의식변화에 놀란 북한당국은 2009년 11월 갑작스런 화폐개혁을 발표하고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계획경제로의 복원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장통제를 위한 화폐개혁은 주민들의 반발과 경제원칙을 무시한 졸속 시행으로 큰 혼란을 야기시켰을 뿐 아니라 당국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장마당은 김정은체제에는 눈엣가시겠지만 북한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북한당국은 지금도 장마당에 대한 통제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생일 같은 국가적 명절이나 국가차원의 큰 행사를 앞두고 장마당 개장시간을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게 하는 포고령을 내려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농번기나 국가대상건설 등 주민동원이 필요한 때나 심지어는 대외정세가 긴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장마당 개장시간을 대폭 축소해 주민들의 생계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북한의 장마당 숫자는 지난 5년여간 크게 변하지 않은 대신 시장의 대형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홍민 한국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근 북한의 공식 시장이 현재 414개로 5년 전에 비해 3개 증가하는데 그쳤다고 밝혔습니다. 숫자는 늘지 않았지만 장마당의 규모가 확대된 경우가 모두 38건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전체의 장마당 면적은 194만㎡로 지난 2016년 대비 10만 7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북한에서 장마당의 역할은 단순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보조 기능’에서 주민생계를 해결하는 공간으로써 북한 경제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북한노동당이 아무리 싫어해도 장마당은 이제 주민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유시장을 당국이 통제하고 잠정적으로 폐쇄하는 국가는 북한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당국이 아무리 통제하고 단속을 강화해도 장마당을 통한 주민들의 생계활동과 정보유입 및 확산이 지속되는 한 북한사회에서 밑으로부터의 변화의 물결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란 것이 많은 외부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아무쪼록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생명선과도 같은 장마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많은 물건을 적정한 가격에 공급함으로써 주민 생계문제에 좀 더 신경써주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