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의 주간진단] 인위적 장벽 한반도 분단 불가능

0:00 / 0:00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 입니다.

올해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남한과의 경계지역에 장벽을 세우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의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안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최근 휴전선 북쪽 지역에서 장벽을 건설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하는데요. 북한 정권이 이제 본격적인 두 개 국가론, 즉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추측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안 박사님, 어떻게 보십니까?

안찬일: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북한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장벽을 건설하는 정황이 포착돼 한국군 당국이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14일 알려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북한군이 동부·서부·중부 전선 일대 군사분계선에서 북측으로 1km쯤 올라간 지점을 따라 병력과 장비를 투입해 장벽을 세우기 위한 작업을 하는 모습이 우리 측 감시 자산에 포착됐다"고 전했습니다.

군사분계선(MDL)과 북한군 최전방 부대 철책선 사이에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반통일(反統一)’ 정책을 천명한 이후 물리적 장벽을 설치해 남북 간 ‘국경선’ 만들기에 들어간 것입니다.

MC: 그렇다면, 이제 남북한 통일은 이뤄지지 않는 건가요? 장벽을 쌓으면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정말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안찬일: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한국의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의 장벽 설치 움직임과 관련해 "군은 북한군의 활동을 면밀하게 추적·감시하고 있으며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유엔사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합참은 “북한군 활동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은 작전 진행 중인 장병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답변이 제한된다”고 했습니다. 군은 북한의 장벽 설치 작업을 정밀 감시하면서 그 의도 등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9일 북한군 10여 명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작업하다가 군사분계선을 50m가량 남측 지역으로 침범했던 일도 이 장벽 공사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삽과 곡괭이 같은 작업 도구를 들고 있었고, 한국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 후 즉각 다시 북상했습니다.

북한은 장벽과 북한 내를 연결할 수 있는 전술도로도 동시에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물리적 장벽으로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한류에 열광하고 있으며 북한이 따라야 할 모범체제로 대한민국을 이미 확정짓고 있습니다.

MC: 그런가 하면, 북한군은 근래 들어 휴전선 일대 여러 곳에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대요. 이런 지뢰매설도 장벽 건설을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봐도 될까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군사분계선 북측에서 지뢰도 매설해왔는데 이는 콘크리트 장벽을 건설하자면 많은 병력을 DMZ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고 그 와중에 귀순하는 장병들을 막고자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한국군의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DMZ 내 4∼5개 지역에서 지뢰 매설과 철조망 보강, 복토 등 여러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동부 및 중부 전선 중심으로 지역별로 100∼200명의 병력이 동원됐다"고 지난달 17일 밝혔습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군의 DMZ 내 작업 중 중장비가 투입된 모습이 식별되기도 했다"고 전했는데 유엔군사령부와의 사전 협의 없이 중장비를 DMZ 내 반입하는 행위는 정전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MC: 북한당국이 지금 쌓고 있는 장벽은 분단의 고착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베를린 장벽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베를린 장벽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안찬일: 네, 알려진 대로 1961년 동독 정부는 인민군을 동원하여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분할점령 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콘크리트 장벽을 쌓았습니다.

1945년 5월 8일 나치스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그 해 2월에 있은 미국·영국·소련의 3국 정상 얄타회담에서 이미 독일의 처리방법을 결정한 대로 프랑스까지 합하여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최고통치권을 이어받았고, 동독 안에 있는 수도 베를린도 4개국이 분할 점거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할 독일에 대한 처리방침은 그 해 8월 포츠담에서 열린 미·영·소 3국 수뇌회담에서 나온 ‘포츠담선언’ 으로 보다 구체화되었죠.

이 의정서에 따르면 독일에 당분간은 중앙 정부를 두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정치·경제적 통일성의 유지에 관한 것은 명문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非)나치화, 즉 민주화에 있어서는 4개국이 제각각 그 해석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국의 점령지역에서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1946년 12월 미·영 양국의 점령지구가 경제적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동서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그것이 베를린 봉쇄 이후 최대 현안이 된 ‘독일문제’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이후‘독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종종 열렸으나, 사사건건 미국과 소련측의 의견이 대립하여 충돌함으로써 1947년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결렬되고, 이듬해 소련측이 독일관리이사회에서 탈퇴함에 따라 그 기능도 정지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동·서독의 분단이 완전히 고착되자 공산당 지배의 동독에서 자유민주주의 서독으로 월경해 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습니다. 동독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동·서 베를린 사이에 40여km에 이르는 길고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을 쌓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동서 냉전의 상징물이기도 하였습니다.

MC: 북한 김정은 총비서의 행적에서 장벽 설치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뭐였죠?

안찬일: 그렇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올해 들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남북 단절 조치를 예고해 왔습니다. 김정은은 올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며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연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해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 철책에 더해 장벽까지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반통일' 지침을 선언적 의미를 넘어 물리적으로 공식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MC: 그러면 이 분단의 장벽은 단지 상징물이 될까요? 아니면 다른 기능도 함께 한다고 봐야 할까요?

안찬일: 네, 우선 첫 번째로는 물리적 장벽으로 우뚝 서 남과 북을 갈라놓는 분단의 성이 되겠지만 평양정권으로서는 다른 속셈도 많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대한민국을 동경하여 남쪽으로 탈북하려는 장병들과 민간인들은 이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동독의 군인들은 장벽 아래를 뚫고 지하굴을 만들어 서독으로 탈북하기도 하였지만 아마도 북한군은 여기에 고압선과 지뢰를 중복적으로 매설애 생명체가 접근하는 것 자체를 철저하게 봉쇄할 것입니다. 반영구적인 분단장벽이 될 것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장벽 하나로 8천만 민족을 둘로 쪼갤 수는 없습니다.

MC: 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안 박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찬일: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