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9.9절 74주년, 민주도, 인민도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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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9.9절 74주년, 민주도, 인민도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정권수립 74주년(9·9절)을 맞이해 경축행사 참가자들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연합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누가 지었느냐를 놓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다고 합니다. 김일성 주석이 지었냐, 아니면 소련이 지었냐 등을 놓고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국호에 있는 것처럼 과연 오늘날 북한 정권에 있어 ‘민주와’  ‘인민’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9.9절 74주년, 민주도, 인민도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란 제목으로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인 안찬일 박사와 이야기 나눕니다.

 

MC :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MC: 북한의 정권 수립과 국호 제정 과정을 놓고 그동안 이견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주장과 역사적 진실 사이에 공백이 크다고 말합니다. 안찬일 박사님, 북한 정권 수립 전 소련군이 북한의 지도자를 지명할 때, 대상자가 김일성 주석이 아닌 조만식 선생이었다고요? 어떻게 된 건가요?

 

안찬일: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1945년 8월 9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거쳐 일본군을 무찌르며 북한에 상륙한 소련군은 38도선 이북을 빠르게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의 목적이 정권 수립은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의 목적은 자신들의 지역을 해방하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점령 직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나오고 북한만이라도 소베트 정권을 세우려는 소련군은 북한을 이끌 지도자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물론 김일성도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급거 귀국시켰지만 33세의 어린 청년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 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당시 평안남도 지역과 평양에서 가장 명망 높은 지도자였고 북한 지역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낼 때 유일하게 참가한 조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련군의 신탁통치안을 거부하면서 북한 지도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결국 차선책이었던 김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초기 권력 구성을 보면 조만식 대통령, 김일성 국방상이란 사실은 그 후 소련군정 책임자들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력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MC: 아, 그렇군요. 그 당시 지도자 선택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숨기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자, 그러면 이제 북한의 국호에 담겨있는 ‘민주’와 ‘인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박사님, 실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는 민주도, 인민도 없다고들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안찬일: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북한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인민대중 중심이 존재하냐 말입니다. 물론 북한 인민들이 갈망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인민민주주의입니다. 인민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엘리트 전위정당인 공산당의 지배적 우위하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반동세력은 폭력 및 각종 수단을 이용해 말살하고, 순응하며 동조하는 세력들에는 다당제를 시행하여 형식상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혁명의 주체와 수뇌부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가능하므로, 프롤레타리아들의 엘리트 전위정당인 공산당 이외의 세력은 집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북한의 집권세력은 누구입니까?

바로 김 씨 왕조가 3대에 걸쳐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 내부 그 어디에도 노동자, 농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북한 인민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김일성과 그 수하들은 집권 당시에는 무산자 계급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난 후 단 한반도 노동계급에게 정권을 이양한 적이 없으니 저것은 옷만 갈아입은 착취계급이고, 더 나아가 이씨 조선에서 김씨 조선으로 성씨만 바뀐 봉건정부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입니까?

 

MC : 그렇다면 정권에 인민이 없다는 소리는 또 말인가요?

 

안찬일: 마찬가지의 대답일 수 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의회주의와 보통선거, 보편적 참정권이 프롤레타리아를 체제에 순응시키려는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적인 기만으로 보았습니다.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선거가 아닌 폭력혁명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집권한 후에, 자신들과 통일전선을 이루어 협력한 동조자들에게 정치적 혜택을 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집권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선거 사회주의'와는 다르며, 선거 사회주의는 개량주의나 수정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인민민주주의는 권력분립과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을 부르주아들의 기만적 압제의 도구라며 부정하면서, 법률보다 인민의 일반의지를 중시한다며, 따라서 법률이라는 부르주아의 위선적 기만에 왜곡되지 않은, 인민대중이 직접 참여하여 선거하는 방식을 인민민주주의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경우 정권 수립초기에는 각 지방주권 의회를 각 지방인민들의 참여하에 투표로 선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지방이든 최고인민회의든 북한의 모든 주권기관 대표들은 모두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지명한 사람들이 단독 후보로 나가 당선되는 짝퉁 인민민주주의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MC: 오늘 날, 중국도 공산당과 지방주권 기관 선거에서 어느 정도 복수후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만 유독 노동당이 직접 지목으로 권력기관을 구성하고 있으니 정치에서 인민은 완전 소외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거 아닌가요? 과연 언제쯤 북한도 복수후보에 의한 주권기관 대표 선거가 가능할까요?

 

안찬일: 김정은 정권이 노동당 1당 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로 가기 전에는 절대 그런 시스템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 인민들의 요구는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당장 다당제를 도입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북한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런 것입니다. 최소한 중앙권력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권력 이양은 어렵더라도 그 아래 단위에서 정치국 위원들의 선출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의 복수후보 선거를 인민들은 소망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이렇게 된다면 인민대중의 의사를 존중하는 인물들이 지도부에 등장해 인민들의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7명의 대통령의 집단지도체제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자기 분야에서 결정권을 소유하고 통치를 잘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공산당의 원조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복수후보에 의한 민주선거가 진행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 북한은 저러고 있단 말입니까?

 

MC: 북한은 정권 수립 74주년이지만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힘겹게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이 비극이 끝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안찬일: 간단합니다. 김 씨 왕조가 막을 내려야 합니다. 봉건 왕조 아래 봉건 사회가 있기 마련이고, 봉건 정치 아래 시민사회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인민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결정권이 없이 복종만 해야 하는 북한의 주인은 김정은 정권입니다. 북한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현 봉건 정부는 타도될 때 북한은 진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MC: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 박사님 고맙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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