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북한댁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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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한국에서는 매일매일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강연이 펼쳐집니다. 교육분야, 인공지능분야, 건축분야 등 주최하는 곳의 취지에 따라, 혹은 참여대상자나 강연자에 따라 강연내용이 달라지는데요. 그중엔 책을 매개체로 펼쳐지는 강연도 있습니다. 책을 쓴 장본인이 직접 강연자가 되는 거죠.

이런 강연을 ‘북토크’라고 하는데요. 영어로 북(book)은 ‘책’을 의미하고, 토크(talk)는 ‘말하다’라는 뜻인데요. 쉽게 말해 작가와 함께 책에 대해 말하는 강연인 셈입니다.

얼마전에는 북한에서 온 작가들의 책으로만 진행하는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한반도 평화연구원 사무국이 총 8회에 걸쳐 여러 협력기관들과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는 두번째 북토크 현장에 찾아가봤습니다.

(현장음)저희 행사는 북토크 작가님과 사회자분의 대담이 약 50분 정도 진행이 되고 작가님과 여기에 계신 참석자 분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약 20분에서 30분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오늘 사회를 보시는 김순여 선생님께 마이크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6월 29일, 저녁 7시.

서울 창동에 위치한 한 건물 소강당에서 북에서 온 작가들 두 번째 북토크가 시작됐는데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8번의 북토크를 진행하게 된 한반도 평화연구원 사무국은 2번째 북토크를 함께 할 단체로 탈북민들의 가족지원 사업 등을 하는 비영리단체, ‘더불어 하나되는 다음세대’, 줄여서 ‘더하다’와 함께 했습니다. ‘더하다’에서 북토크를 위해 선정한 책은 강하나 작가의 ‘나는 북한댁이다’ 인데요. 이 책을 선정한 이유가 있답니다.

(현장음-사회자)한반도 평화연구원에서 책을 선정해 주세요~라고 말씀을 하셔서 망설임 없이 "북한댁이요" 하고 책을 선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책 제목에서 북한댁이라고 하니까 결혼을 하셨을 거잖아요. 그래서 엄마로 북에서 오신 분들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궁금함이 많아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강하나 작가님 박수로 환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수소리)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북한 출신임을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강 작가는 책 제목에 ‘나는 북한댁이다’ 라면서 본인이 북한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외적으로 풍기는 느낌도 꽤나 강렬했습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치는데요. ‘북한댁’이라는 단어를 책 제목에 넣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네요.

(현장음-작가) 저를 정말 좋아하는 같은 또래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사투리를 잠깐씩 쓰니까 그 친구가 ‘어느 지역에서 왔냐’ 이러다가 ‘나는 북한에서 왔다’ 이랬더니 ‘그래? 북한댁. 안녕!’ 이러는 거예요. 저에게 북한댁이라는 말을 정말 스스럼 없이 불러주는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책 제목 자체를 ‘아! 북한댁’이라고 하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제 정체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호칭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북한댁이라고 했는데 책 제목으로 쓸 정도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가 불러준 애칭이 책 제목이 됐지만 사실 책을 쓴 계기는 하나 씨의 두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강하나 작가)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 고향이 어디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는 북한에서 왔어' 했더니 '엄마, 왜 북한에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는데 그거를 이렇게 한마디로 딱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삶이 아닌 거예요. 분명 언젠가는 이렇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인데 또 들려줘야 하는 이야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딱히 남겨줄 건 없지만 최소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엄마는 돼야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북한)서 자라고 태어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쓰게 되었어요.

책 ‘나는 북한댁이다’는 작가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자녀에게 전합니다. 하나 씨는 북한에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과 성장하면서 보고 느꼈던 북한 이야기를 글을 통해 보여주는데요. 작가와의 이야기, 북토크 등을 통해서도 관객들이 잘 모르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 씨의 얘기를 듣던 관객들은 하나 씨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음)대부분 고향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자유를 찾아왔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자유라는 게 뭔지 몰랐어요. 자유가 뭔지 경험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자유의 세상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자유가 뭔지를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를 찾아서 온 게 아니라 배고파서 (왔어요.) 고난의 행군 때 엄마가 저희를 두고 쌀을 구하겠다고 중국으로 넘어 가셨는데 그때 돌아 오지 못하셨고 (제가) 배 고파서 엄마가 살고 있는 중국으로 넘어간 거죠. 최소한 중국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아빠가 돌아가셔서 되게 힘든 상황이었고 북한에서 엄마 몸(상태)으로 자녀 셋을 키우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친척의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거기서 사고를 당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너희들 여기 오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와라' 이래서 넘어간 가죠.

강 작가는 먼저 중국에 들어간 엄마의 권유로 1999년 겨울, 배고픔을 면하고 싶어 탈북했고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유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답니다. 중국에서 생활한지 6년차가 되던 때! 하나 씨는 스스로 운명을 바꿉니다. 인터넷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채팅을 통해 인터넷 상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데요. 거침없었던 '남남북녀'의 사랑 이야기,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시죠.

(강하나 작가)인터넷으로 2년 반 동안 채팅만 하면서 정이 쌓인 거죠. 그래도 결혼이라는 거는 어쨌든 저에게는 탈북자라는 신분이어서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결혼을 저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남편이 고백을 할 때는 왠지 북한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면은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중국 사람이다, 중국 사람하고 결혼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많이 했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랑 헤어질까, 상처받지도 않고 잘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죠. 중국에서는 결혼하려면 남자 쪽에서 여자 쪽에 돈을 주는 문화가 있어요. 여자를 좀 사 오듯이 그렇게 하는 문화가 있는데 그런 거를 얘기를 했거든요. '중국 여자랑 결혼하려면 돈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저라면 그냥 '뭐야 이거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돈 이야기를 하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줄 알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 얼마면 되는데 이러는 거예요. 아니 얼마라고 머릿속에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얼마라고 하면 어떡하지 싶더라고요. 중국에서는 이제 8이라는 숫자가 행운을 불러온다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8백만원 이랬거든요. 그때 좀 더 불렀어야 되는데.. (관객들 웃음) 그래 그렇게 해놓고 이제 한 시간 만에 돈을 보낸 거예요. 그때 중국돈으로 환산해서 환전 하면은 집 한 채 값이었거든요.

지금 800만원의 가치는 6,270달러.

당시 중국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그 돈을 하나 씨 남편은 망설임없이 송금한 거죠. 인터넷 상에서 주고 받은 대화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까지 확신한 남편의 모습에 하나 씨는 그런 남자와 한평생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답니다. 자신을 중국여성으로 알고 있기에 하나 씨는 북송의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에서 비자를 받아냈다고 하는데요. 2천년대 초반엔 비자발급이 쉬운 편이었지만 탈북민 신세였던 하나 씨에게는 목숨을 건 움직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고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며 하나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요. 그 뒤엔 남편에게 탈북민이라는 걸 숨긴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현장음)남편을 좋아해서 제가 목숨을 건 거고 저희 남편은 그냥 (저를) 중국에서 만난 여자다 생각하고 결혼을 하기로 한 거였어요. 나중에 (한국에) 와가지고 제가 밝힌 거죠.

-Closing Music –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했던 한국 드라마 중에 ‘사랑의 불시착’이 있는데요. 그 드라마의 현실판이라고나 할까요? 강하나 씨와 인터넷 상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지금의 남편이 한국 군인이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출신을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는데요. 지금처럼 자신이 북한댁이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강연까지 할 수 있기까지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하나 씨의 못다한 북한댁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