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북토크’ 한국말로 풀어보면 책 이야기라는 뜻인데요. 탈북민 작가와 독자가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 ‘북에서 온 작가들’은 6월부터 11월까지 총 8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는 강하나 작가의 ‘나는 북한댁이다’라는 책으로 진행된 두번째 북토크 현장을 찾았는데요.
강 작가는 엄마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묻는 딸을 위해 이 책을 썼고 한국에서 만난 또래 친구가 스스럼 없이 불러준 ‘북한댁’이라는 호칭이 너무 좋아, 책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책 속에는 고향의 이야기부터 한국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백하게 담겨있는데요. 북한댁 강하나 씨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강하나)저희가 생각할 때 중국까지 건너가는 것은 북송이 돼도 북한 정권이 어느 정도 감안을 해서 용서를 해주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남한으로 간다 아니면 남한 사람을 만난다 이러면 그냥 말 그대로 처형감이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으로 처벌 자체가 달라요. 그래서 항상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2년 반 동안 채팅만 하면서 남편은 제가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랑이라든가… 신뢰감을 줬어요.
하나 씨는 1999년 북한을 떠나 엄마가 있는 중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항상 북송을 걱정해야 하는 중국의 생활이었지만 부담 없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은 하나 씨 삶의 큰 활력이 됐는데요. 인터넷에서 대화하는 채팅을 통해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하나 씨의 이야기는 북한에서도 유명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닮아 있는데요, 하나 다른 건 주인공의 직업과 성별입니다. 남한의 남편 직업이 군인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하나 씨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것.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남편은 국제결혼을 제안했고 이미 마음이 커질 만큼 커진 상태였기에 하나 씨는 돈으로 신분을 사 그 신분으로 결혼을 하고 남한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참 알 수가 없죠. 군인이었던 남편 덕분에 하나 씨는 남한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게 됩니다.
(현장음-강하나)사실은 북한하고 최대한 멀어지려고 한국까지 날아온 것인데 북한하고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간 거예요. / (사회자) 어디에 사셨나요? / (강하나) 최전방에서 살았어요. 저는 사실 (남편이) 군인이라고 해도 (북한과)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북한이 가까이서 보이는 곳에 가 있는 거예요. 아무리 우리나라가 기술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돼 있어도 최전방은 개발이라는 게 거의 안 되는 곳이에요. 북한하고 별 차이가 없는 거예요.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땐 너무 화려하고 멋있어서 창밖에 볼을 딱 대고 '너무 멋있다' 이러면서 왔는데 인천국제공항이랑 제가 간 곳은 상반되니까 사기결혼했나보다,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이 많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또 오히려 그게 저한테는 이질감을 덜 느끼는 공간이었던 같아요.
오래된 군인 아파트가 오히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고 일반 사람보다 딱딱한 남편의 말투도 그랬습니다. 오히려 하나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동의 자유’였답니다.
(현장음-강하나) 가장 힘들었던 게, 군인 가족들이 이사를 자주 하는 거요. 북한은 반대로 이사를 거의 못 하거든요. 또 저는 중국에서 메뚜기처럼 펑펑 뛰어다니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았기에 한국에 오면 결혼 생활을 안정적으로 한 곳에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이사를 자유롭게 하는구나, 그건 좋은데 그 자유로운 게 오히려 저에게는 불안감을 줬어요.
하나 씨는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울타리에서 빼내 주어도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자신이 그랬다고 회상했습니다. 다행히 하나 씨에게는 좋은 이웃, 군인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현장음-강하나)가족이다 보니까 같이 이렇게 어울리면서 감싸주는 거예요. 제가 뭘 잘못했거나 실수를 해도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사투리가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할 때 '모르겠습니다', '왜 그럽니까?' 이렇게 하면 사모님들이 '화났어?'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화 안 났습니다. 그런데 제 목소리가 싸우는 것 같아요?' 이렇게 물어보면 '그래. 화난 것 같아' 이렇게 하시면서도 '괜찮아. 나중에는 이렇게 하면 돼' 알려 주시고…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가 '괜찮다'는 말이었어요. 정말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데 북한에서는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안 돼! 왜 그랬어! 하지 마! 이렇게 결론적이고 단답형으로 너는 잘못했다는 말만 듣다가 괜찮다고 위로하는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풀어지는 거예요. 따뜻해지는 거예요.
엄마와 언니 같은 이웃들 덕분에 하나 씨는 빠르게 한국 생활에 정착할 수 있었고 하나 씨도 얼마 있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커지는 만큼 걱정과 미안함도 함께 커졌습니다. 그때까지도 하나 씨는 남편에게 자신이 중국 사람이 아니라 북한 사람, 탈북민이라는 걸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나중엔 속여온 시간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한국 입국 이듬해인 2007년, 군인과 관련한 북한 간첩 사건이 터지면서 자신도 그런 오해를 받을까 두려움이 컸습니다.
(현장음-강하나)그 사건이 터지면서 저는 이 사회에서 내가 북한 사람으로서 활동하면 안 되겠구나, 더구나 남편한테 이야기하면 결혼했어도 나를 떠나겠구나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저처럼 이렇게 고백 못 하고 사는 탈북민이 많아요.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도 말을 못 하고 사는 탈북민이 많거든요. 가장 아픈 질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필요한 답이기도 하기 때문에 책에 글을 썼는데요.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못 한 것에 대한 합리화할 생각도 없지만 이렇게 아픈 사연이 있다라는 것. 심적으로 이런 불안을 항상 갖고 살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남편도, 이웃들도 중국 사람치고는 물정 모르는 하나 씨가 북한 출신이라고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시기… 하나 씨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고백을 결심합니다.
이후 하나 씨에게는 조금 특이한 이력이 생겼는데요. 보통 탈북민들이 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 교육을 받은 뒤 정착하는데 하나 씨는 한국 정착 10년 만에 하나원에 입소한 것이죠.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하나 씨가 경험한 하나원 생활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현장음-강하나)아무리 여기(한국) 친구가 많아도 그 친구들이 채워줄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추억이나 이런 거를 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잘 모르잖아요. 고향 친구를 만나면 나는 꼭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눠볼 거라고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하나원에 갔거든요. 그런데 하나원이 아니고 그냥 북한인 거예요. 국정원 선생님들도 다 북한 말을 사용하더라고요. 원주필을 못 알아듣고 뭐냐고 물었더니 '그걸 몰라요?'이렇게 얘기하시고 산부인과 진료 갔을 때도 북한 의사 선생님처럼 얘기해서 정말 충격이 컸어요. 그때 느꼈던 게 같은 탈북민이지만 이렇게 이질감이 크구나. 저는 심지어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데도 한국화가 돼서 고향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한국 사람들이 겪게 될 어떤 당혹감이라든가 혼란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드는 거예요. 책을 꼭 써야 되겠다 생각했던 게 그때였어요.
미력하나마 탈북민과 한국 사람들의 간극을 줄이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앞장서고 싶어 책을 썼다는 하나 씨는 북토크를 통해 남한 사람들에게 이해를 당부합니다.
(강하나)탈북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을 저는 표현을 할 때 몸부림이라고 얘기하거든요. 집단 사회 속에서 어울리면서 살다가 갑자기 자유 세상에 뚝 떨어진 거죠. 자유를 분명 갖기는 했는데 이 자유를 어떻게 쓸지를 모르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그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4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년이 될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잘해줘야 되겠다', '어떻게 해줘야 돼' 이런 것보다는 그냥 지내는 듯이, 그냥 동네에서 지내듯이 이렇게 옆집에서 지내듯이 어울려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Closing Music –
북한댁 강하나 씨가 남북 사람들에게 권하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 특별하게 말고 일상처럼 어울려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요. 하나 씨의 바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