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을 닦으며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11/30 08:23:4.060682 US/Ea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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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을 닦으며 지난 11월 17일, 제82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100여 명의 남북 청년들이 현충원을 찾아 묘비 닦기 봉사를 하고 있다.
/RFA Photo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제 100일도 채 안 남았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남한 전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는 민생탐방을 하고 있는데요. 가장 먼저 공통적으로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원입니다.

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와 6.25 전쟁 참전 용사, 경찰, 대통령 등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들이 안장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국가기념일에 맞춰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데요. 현충원에 안장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배하며 더 큰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소중한 계기로 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현충원 참배는 일반 사람들도 가능한데요. 탈북민들도 마찬가집니다. 지난 11월 17일, 제82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100여 명의 남북 청년들이 현충원을 찾았는데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봤습니다.

(현장음) 다 함께 참배 드리겠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에 대하여 경례. 바로. 일동 묵념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 남북청년 100여 명이 모여 참배를 합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사람은 탈북민 출신 지성호 의원인데요. 올해로 두 번째 맞는 남북청년 현충원 봉사활동의 날입니다.

현충원 참배에 앞서 지성호 의원은 이 자리에 함께 한 탈북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는데요. 어떤 취지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오늘 함께 한 이유에 대해 들려줍니다.

(지성호 의원)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성공해서 우리 3만 명의 날갯짓이 북한 사회의 1,500만 명을 바꿀 수 있을까 항상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로부터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에 함께 헌신하고 봉사하고 함께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도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사회에 손을 내미는 것이 도움을 달라는 손이 아니라 봉사가 됐든 뭐가 됐든 사회를 돕는 손이 됐을 때 우리가 고향 갈 수 있는 날이 더 가까이 오는 길이다 싶습니다.

탈북민들은 한국 정착 초기부터 5년 동안 정부의 지원과 보호를 받게 되는데요. 지성호 의원은 탈북민들이 수혜자로만 남지 말고 작은 역할일지라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말합니다. 그 실천의 하나가 바로 오늘 이 자리입니다.

봉사활동 하기 전 합동 참배를 하면서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도 마련됐는데요.

(현장음) 아까 3회 분향을 하셨죠? 3회 분향의 의미는 동양의 천지인 사상에서 유래한 겁니다. 첫 번째 분향은 하늘에 대한 감사, 두 번째 분향은 땅에 대한 감사,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분향은 사람에 대한 감사로서 이곳에 모셔진 분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국립 서울 현충원은 1955년에 설립이 됐습니다. 1950년에 6.25전쟁이 일어났죠. 53년에 휴전이 됩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의 희생되셨습니다. 그래서 국군장병들의 시신을 안장하기 위해서 서울 근교에서 묘지 후보지를 찾다가 이곳이 현충원 부지로 선정이 됩니다. 그래서 국군 묘지로 출발했고요. 10년 후인 65년에는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들을 같이 이곳에 안장하기 위해서 국립묘지로 승격이 됩니다. 그 뒤로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고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명칭이 또 바뀌게 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엔 총 18만 4천여 분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유해가 수습되고 신원이 확인된 5만4천여 분은 묘역에 모셨지만 10만9천여 분은 봉안시설인 충원당에 모셨는데요. 시신과 유골이 없어서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수많은 전사자들의 명단을 보고 참석자들은 모두 생각이 많아집니다.

충원당을 지나 먹먹한 마음으로 향하는 곳. 오늘 묘비 닦기 봉사를 해야 하는 구역입니다.

(현장음) 자! 저희, 지금부터 봉사활동이 시작돼요. 마른걸레로 묘비와 그 아래 단상을 닦아 주시면 되거든요. 걸레를 하나씩 드릴게요. 저쪽 위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묘비 닦기 봉사! 눈앞에 즐비한 묘비석을 보고 모두들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걸레질을 합니다. 반복적으로 하는 걸레질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에 부치는데요. 나이가 지긋한 봉사자들도 몇몇 보입니다. 묘비 뒤쪽을 닦다가 잠시 멈칫하는데요.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안장된 분이 왜 돌아가셨는지,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몇 살 때 돌아가셨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보니까 막 전부 젊은 분들이고.. 가슴이 막 찡하다 찢어질 것 같더라고요. 같은 동족끼리 사실 참 이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진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어디에 있겠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그래도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남한으로 와가지고 이제 6.25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든지 이런 게 많이 바뀔 것 같아요.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건 어린 친구들도 마찬가집니다. 10대 청소년들도 이날 봉사에 함께 참여했는데요. 함께 모여 있으면 작은 것에도 웃음이 터지고 장난치던 친구들이 묘역에 들어서자 누구보다 열심입니다.

(인터뷰) 묵념도 하고 이제 봉사도 하는데 (묘비를) 닦으면서 그때 상황이 어땠을까 생각도 나고… 되게 마음이 무거워지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 생각하니까 이분들의 마음과 희생정신이 되게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생각이 조금 없이 살았다고 하면 앞으로는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기르는 게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하게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 저는 이런 봉사활동을 많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현충원 묘비닦기 봉사에 참여하면서 마음가짐의 변화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날 10여 명의 탈북민 구출자들과 함께 봉사에 참여한 북한인권단체 나우의 지철호 팀장의 말입니다.

(지철호 팀장)지난 해하고 올해 하고의 마음가짐 같은 게 달라진 것 같아요. 지난해는 처음에 왔기 때문에 신기한 느낌이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이미 여기에 수고하신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니까 더 감사함으로 왔고 그리고 또 그런 감사함이 오늘 이렇게 우리가 왜 이 봉사를 해야 되는지를 알게 해준, 또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장소였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이런 마음으로 왔어요.

묘비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닦으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린 병사들의 묘비를 닦으며 놀라움과 미안함, 그리고 감사함도 느끼는데요. 지성호 의원은 현충원 봉사의 이런 의미 때문에 매년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성호 의원) 참여한 친구들 보면 일반 청소년들과 그리고 우리 북한 이탈 주민들인데 국가에 대한 감사함,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많은 봉사도 있지만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또 봉사의 마음으로 이제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한반도 역사를 북한도 살아보고 남한도 살아보고 6.25 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배우기도 했었고… 이 땅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지킨 자유가 얼마나 감사한지, 이런 걸 생각하면서 더 나아가서 이제 북한이라는 정권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세상도 이제 함께 생각하는 우리 참가자분들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Closing-

이날 봉사자 한 명당 정리하고 닦아야 하는 묘역은 30개. 봉사자들의 마음 때문인지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하고 햇살 좋은 날, 3개 구역의 청소가 잘 마무리됐습니다. 봉사를 마치고 정리된 묘역을 돌아보는 봉사자들의 표정이 좋습니다.

(인터뷰)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잠깐 그 생각도 했어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셨으니까 이분들께 감사도 하고 그러면서 이런 데 묻히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 막 이런 생각 조금…

내년을 또 기약하며 두 번째 현충원 봉사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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