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 어린이들도 가을 소풍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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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30대 남자입니다. 얼마 전에 6살 조카가 유치원에서 가을 소풍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애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원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니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북한의 어린이들도 가을 소풍 가나요? 혹시 가면 어디로 가나요? ”

(음악 up & down)

6살이면 너무 예쁘겠네요. 저도 가끔 길을 가다가 3~4세 정도 돼 보이는 어린이집 아이들이나 6살, 7살 정도의 유치원생들이 2줄로 쭉 서서 서로서로 손 꼭 잡고 줄 맞춰 걸어가는 걸 보게 되는데, 제 친조카가 아닌데도 정말 너무 귀여워서 발길을 멈추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9월까지 늦더위가 이어지며 서울은 너무 덥거든요. 이럴 때 숲 속 그늘 아래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소풍을 떠난다면 아이들은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엄마가 싸준 맛있고 예쁜 도시락까지 있으면 최고로 행복하겠죠.

제가 유튜브, 그러니까 전 세계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니까, 어린 자녀들을 위한 맞춤형 도시락 만들기 관련 영상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밥으로 인형 얼굴도 만들고, 칼파스에 눈이며 머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특히 남새를 잘 안 먹는 아이들도 먹을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든 걸 보면 ‘솜씨 좋은 엄마들이 정말 많구나’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워낙 먹을거리가 많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건강엔 좋지만 맛 없는 건 잘 안 먹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균형잡힌 영양섭취를 위해 여러가지 재료를 활용해 맛있게도 만들어야 하고, 또 아이들이 먹고 싶을 만큼 모양도 신경써야 하죠. 그래서 영상에 나온 도시락들을 보면 엄마가 요리사를 넘어 예술가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은 소풍가게 돼서 신난 조카를 보면서 북한의 어린이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신 것 같네요. 북한은 여기 대한민국보단 기온이 낮은 곳들이 많으니까, 지금쯤 아마 바람도 선선하고 소풍이나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가 이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보게 됩니다.

북한에서도 물론 '소풍'을 갑니다. 봄 소풍도 있었고, 가을 소풍도 있었죠. 그리고 '소풍'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원족'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제가 살았던 함경북도 청진에선 '청년공원'이나 가까운 계곡 등으로 원족을 갔었습니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근교 숲이나 계곡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선 도시락을 싸는 날이 많지 않은 데다, 도시락을 싸게 되면 그동안 집에선 먹을 수 없었던 특별식을 먹게 되는 거라, 정말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네요.

북한의 아이들도 이날 만큼은 교복이 아니라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햇빛을 가리는 모자도 쓰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넣은 가방을 메고 줄 맞춰 이동하게 되죠. 그러고 보면 소풍 가는 남북 아이들의 모습이 겉보이엔 별 차이 없어보이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내용을 보니, 요즘 도시락 싸는 것이 어려워 소풍을 못 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기사에는 자신의 도시락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도시락까지 챙겨야 하니, 부모들의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보고 나니 정말 허탈했습니다. 제가 소풍을 다녔던 몇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이렇게 좋아진 게 하나도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선 10여 년까지만 해도 학급 대표의 엄마가 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의무는 아니었죠. 지금은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오기는커녕 오히려 선생님에게 간식을 사달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밥 한끼가 늘 고픈 북한의 상황에선 선생님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그 도시락 하나를 준비할 수 없어 소풍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니, 남북의 이 엄청난 격차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그저 한숨만 내쉬게 됩니다.

즐거운 소풍에 대한 이야기지만, 북한의 상황을 떠올리면 어린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만 줄일게요.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