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미국 탈북민 “추석날만 되면 먹먹해져”
2024.09.18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9월 17일은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추석이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긴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인사도 드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한 지맥으로 잇닿은 북한의 추석 분위기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그러면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어떻게 추석을 보냈을까요? 오늘 시간에 이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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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듯이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있어 추석은 큰 명절이었습니다. 비록 들야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의 풍요로움은 볼 수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추석을 앞둔 14일 미국동부에 정착한 탈북민 20여명과 주변 지인 20여명은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추석음식을 즐겼습니다. 이들을 추석 잔치에 초대한 최동철 ‘Agape Health Management” 원장의 말입니다.
최동철 원장: ‘금의 환향’ 무슨 말인지 아시죠. 우리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등진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금 옷을 입고 돌아가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잘살아가는 목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그런 꿈을 꾸는 인생을 이루는데, 서로 어울려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겸손의 미덕이 있어 이런 말을 합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그런데 그런데 차린 것 많습니다. 많이 드세요. (박수소리)
오공단 자유조선인협회(FKA) 이사장은 “탈북민들 뿐 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모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라며 “서로 사랑의 마음으로 위해주고, 북한 인권과 통일의 길로 나가길 바란다”며 추석모임의 의미를 더해주었습니다.
고향이 함경북도 청진인 데보라 최씨는 “이 자리에 모인 탈북민들에게 이 모임은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최데보라씨: 이 추석명절에 우리가 서로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작은 행복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 감사드립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예로부터 한해 농사를 다짓고, 가족 친척들을 초청해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기쁨을 나누는 우리 민족 전통의 최대 명절입니다. 북한에서는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면 김씨 일가의 생일을 꼽지만, 한국과 해외에 사는 한인들은 설날과 추석을 꼽습니다. 수십년간 분단되어 살아온 남북의 추석풍경도 많이 다른데요.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기간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가리켜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합니다.
한편, 북한에서는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 이동을 할 수 없지만, 고향에 있을 때 먹었던 추석 음식, 추석 분위기만은 탈북민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추석을 쇠지 않지만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인타운에서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미국 동부에 사는 탈북민들도 이렇게 모인겁니다. 남북한의 추석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음식입니다.
이날 추석음식은 송편과 두부밥, 쉼떡, 지짐, 동치미 김치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북한 식 두부밥을 손수 만들어 가지고 온 고향이 양강도인 제이곱 서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이콥 서 씨: 두부를 구워 가지고 조금 식혔다가 거기다 밥이랑 북한에서 말하는 양념을 올리면 되는 데 괜찮은 것 같은데요.
제이콥 씨가 “북한에 있을 때 추석이나 원족(피크닉)을 갈 때 어머니가 해주던 두부밥과 계란 지짐이 생각났다”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자기가 운영하는 가계에서 직접 만들어가지고 온 겁니다. 이날 탈북민들은 서로 격려해주며 추석의 밤을 지냈습니다. 제이콥 씨의 말입니다.
제이콥 씨: 저는 좋았습니다. 그렇게 만나서 서로 정보 교환하고 미국 사는 이야기도 하고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도 다 맛있었습니다. 국수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한편, 미국의 서부에 정착해 사는 탈북민들은 노동절 연휴를 맞아 “엘림유황온천”을 다녀왔다고 현춘삼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 사무총장은 말합니다.
현춘삼 사무총장: 우리 탈북민들끼리만 다녀왔고요. 최강혁 씨도 가고 권정순 회장님도 가고 강옥씨라는 분도 가고요. 최한나 씨는 미리 예약된 게 약속이 있어서 못 가고 대신 200불을 도네이션 해주셔서….
현 사무총장은 “서부에 정착한 탈북민 13명이 1박 2일로 온천을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9월에 추석보다는 노동절을 더 크게 기념합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이 있는 탈북민들은 추석을 그냥 스쳐 보낼 수 없었다는 겁니다.
현춘삼 사무총장: 노동절이 더 크고 미국에서는 추석이 안 맞고 겸사겸사해서 탈북민들도 오랜만에 모여서 북한 이야기도 하며 그러자고 갔더니 또 재미나게 잘 놀았어요. 밤에 노래도 부르고, 또 집에서 다 노래방 기계들을 들고 가서 노래도 하고 춤추고 ‘사사끼’ 주패 놀이도 하면서요.
‘엘림 유황 온천’은 캘리포니아주 엘에이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엘림유황온천 웹사이트에는 “엘림 유황 온천은 (Elim Hot Springs) 특히 고도 3,500 피트 고산 암벽에서 나오는 천연 유황수로 수영장과 자꾸지가 채워져 있다”며 지하 200 피트에서 직접 끌어올린 천연 유황 미네랄 온천수로 온천욕을 하게 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온천 시설에는 실외온천과 실내 온천, 캠핑을 위한 야영장도 있고, 밖에는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단체 손님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춘삼 씨: 거기 가면 건물 안에도 온천이 있고 밖에도 온천을 해놓고 어린이나 어른들이 놀 수 있는 수영장도 따로 크게 해놓고, 닭, 염소, 토끼, 닭, 공작새 같은 짐승들로 작은 동물원처럼 또 꾸려져 있고, 산책도 하기 좋고 그런 곳이라 저는 해마다 저희 아들 데리고 한 10년 넘게 다녔어요.
함경북도 연사군이 고향인 현춘삼씨는 고향에 있을 때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곤 했지만, 지금은 미국에 살고 왔기 때문에 찾아갈 수 없어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춘삼 씨: 추석이 되면 그냥 먹먹하지요. 부모님이 북한에서 다 돌아가셨으니까, 돌아가신 분들은 돌아가신대로, 두고 온 분들은 두고온 대로 그냥 먹먹 하지요.
지금도 인터넷 구글위성 지도로 고향집이며 부모가 묻힌 산소를 찾아본다는 현춘삼씨는 북한에 있을때도 추석 음식을 차려본 기억은 특별히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춘삼 씨: 어릴 때는 아빠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다녔었는데, 거기 산소 가면 친척들 만나는 재미를 갔었는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산소 다닐 때는 북한에서 먹고 살기가 하도 힘드니까 그 추석상을 마련하는 것부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풍요로운 미국에서는 가족 단위로 특별히 추석상을 차릴 필요도 없이 추석전문 음식점에 가면 갖가지 상차림 음식을 주문하거나 구매할 수 있습니다.
현춘삼씨는 “미국에 와서 추석날에는 송편 먹어야 된다고 관례가 있어 지금도 친구들끼리 가끔 식당에 모여 추석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오늘 시간에는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추석풍경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