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도토리는 북한에도 많이 알려진 산열매입니다. 이 산열매가 어떻게 북한인권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제목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탈북민 감독이 영화문학을 직접 쓰고, 수십명의 탈북민들이 출연하여 완성한 영화 ‘도토리’가 미국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 인근 버지니아에서 진행된 북한 인권을 다룬 영화 ‘도토리’ 시사회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영화 속 대사 녹취> 지원이 너도 가자, 영남이 너도 가자, 눈물없는 그 나라를 찾아서 가자…
북한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남성이 풀베기 전투를 하다 지친 동료들에게 “눈물없는 그 나라를 찾아서 가자”라는 북한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서 나오는 대사를 읊조립니다. 북한당국이 선전 영화로 만든 대사를 차용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자유를 찾아 가자”고 격려하는 겁니다.
워싱턴 디씨에서 조금 떨어진 애난데일에 위치한 한인커뮤니티 센터 대강당 회의실. 100여명의 관객들이 빼곡이 앉아 숨을 죽이고 영화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날 시사회에는 민주평화통일 워싱턴협의회 위원들을 비롯하여 6.25참전용사 유공자회 회원들과 월남전 참전용사 유공자회 회원들, 한인단체장, 지역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 영화속 대사 녹취>남들이 버린대도 우린 못버려….사회주의는 반장거야…
고되고 힘든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사상 단련을 강요하는 북한 선전선동대의 노래 공부에 한 북한 남성이 불평을 터놓습니다.
휴식참에 점심으로 가져온 도토리떡을 반원들과 나누어 먹는 순실아재.
< 영화속 대사 녹취> 애들아, 그래서 내가 도토리 떡을 가져왔지…(박수소리) 개수는 모자라도 알아서 나누어먹자.
지독한 배고픔과 사상단련 교육, 숙박 검열, 남한 드라마 시청 단속, 외부와의 전화통화 단속 등 북한의 일상을 영화는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통제와 배고픔을 참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집단 탈북을 강행하게 되는데,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북송 당해 북한 보위부 감방으로 끌려오게 됩니다. 보위부는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북한 주민을 고문하고, 그 고문 끝에 그 주민은 숨지고, 중국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낙태 당하는 북한 여성들, 마약에 취해 잠들어버린 감시원들을 피해 집단 탈옥하여 두만강을 건너다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사살되는 모습에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이 영화는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의 허영철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그는 지난 2002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한차례 강제북송당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시간 30분 분량의 영화는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북한 실향민 할머니가 탈북 손녀와 상봉하는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코로나 시기 중국에서 붙잡혔던 탈북민들 가운데 수백명이 강제북송된 후, 허영철 감독은 탈북민 인권의 처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급히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허영철 감독: 원래 시나리오는 1세 2세 3세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촬영하다가 갑자기 탈북자 2,600명 중 600명이 강제 북송되는 과정을 보고 "아 이 생명부터 살려야겠다" 그래서 탈북자 강제북송을 부분을 먼저 한 거예요. 그들의 강제북송을 막기 위해서. 그래서 중국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넘어가서 온갖 고문과 만행을 당했다가 다시 탈출하다가 국경에서 대량 학살을 당하는 그런 스토리가 중점이에요.
원래 ‘도토리’ 영화는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겪은 실향민에 대한 내용이 전반에서 다뤄져야 했으나, 탈북민 강제북송이 시급한 사안으로 떠올라 급히 다루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도토리로 제목을 정하게 된 취지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허감독: 왜 도토리라고 했는가 하면 원래는 우리가 일제시대에 강제공출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쌀이 없어서 도토리로 연명한 이야기, 그 다음에 6.25전쟁 동안에도 피난민들이 식량이 없으니까 도토리로 연명했고,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식량이 없으니까, 또 산에 있는 도토리로 목숨을 이어가는 그래서 도토리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70년 한과 실향민 1세 2세 3세의 한을 그린 거예요.
그 다음에 탈북자들이 중국에 넘어가면 “개밥의 도토리 신세”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찬밥신세가 되어 밀려나는 것 이런 것도 있고. 남한에 왔는데, 남한의 기자들이 생방송에 나와서 북한에서 살던 스토리를 이야기 하면 된다고 했는데, 탈북민들이 영어가 약해서 “뭐 도토리요?”라고 물어요. 이러한 여러가지 문화적인 오해와 차이, 실향민 1세 2세의 한을 그려서 도토리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는 “일본 종군 위안부 문제나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에 대해서는 과거형임에도 세상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지만, 현재 진행형인 탈북자 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고 말합니다.
허영철 감독: 우리가 광화문에서 시위를 해도 그렇고, 중국 대사관 앞에서 아무리 테모해도 그때 뿐이지 효과가 없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서 북한의 강제 북송 만행이 얼마나 악질적이고 살인적인가 하는 걸 보여줘가지고 그걸 막자는 데 목적이 있지요.
허 감독은 영화를 미국에서 가장 먼저 돌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영화를 시작하면 중국이 가책을 받을 것 같아 먼저왔다”고 말합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도 움켜쥔 중국은 여전히 탈북민들을 “불법 도강자”로 몰아 북한으로 붙잡아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에 와서 중국의 강제북송 만행을 알려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막겠다는 의도로 왔다는 것입니다. 허영철 감독은 “영화에 95% 출연자가 실제 탈북민으로 자신들이 겪은 느낌을 살려1년간 제작했다”면서 “이 영화가 강제북송의 공포 속에 중국에 숨어있는 탈북자들의 인권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주변에 많이 알려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도토리 영화 이동현 프로듀서는 영화 제작을 위해 북한 감옥을 직접 만들었는데, 자신이 겪은 북한 감옥생활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동현 프로듀서: 제가 있은 곳은 청진시 포항구역 감옥인데, 6호감방까지 있었어요. 그 외에 고문실이 있었고 취조실이 있었고 그랬는데, 제가 도집결소 생활을 18개월 정도 하는 동안 탈북민들의 시체를 열댓명 넘게 땅에 묻었어요. 제가 한국에 와서 13년째인데 지금도 그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겠다고 하면서 감독님과 영화를 만들자고 해서 세트장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여기다 북한 체험 마을을 꾸려야 하겠다는 계획이 생기더라고요.
영화시사회에는 그렉 스칼라튜 미국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의 격려와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등의 축사 등이 이어졌습니다.
백대현 통일관은 “탈북민들이 자신이 실제로 겪은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어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다”면서 수고를 격려했습니다.
한편 이번 도토리 영화제작진의 미국 방문과 영화 상영은 탈북민 출신 마영애 민주평통 상임위원과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린다 한 회장)의 지원과 협조로 이뤄졌습니다.
1시간이 넘는 영화 시사회가 끝난 다음 참석자들은 모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탈북민 감독이 영화문학을 직접 쓰고, 수십명의 탈북민들이 직접 출연하여 완성한 영화 ‘도토리’가 미국에서 상영된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