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미투 운동’이 있는가?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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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여러분은 ‘미투운동’이라고 아십니까,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이란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가해자를 사회에 고발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영어로 “나도 당했다”라고 표현할 때 “me too”라고 말하는데요. 지난 2017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은 남한과 유럽국가들은 물론, 심지어 여성인권 상황이 열악하다는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도 미투 운동이 있을까?

<탈북 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먼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피해자 분의 용기에 온 마음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러면 저희가 이 사건을 지원하게 된 배경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녹음은 지난 13일 남한의 한 위력 정치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한 남한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말입니다.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을 고소하기까지 피해 여성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고 남한 조선일보 사설은 논평했습니다.

이후 각종 논란에도 침묵해오던 피해여성 측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사실을 비교적 자세히 공개했습니다.

피해 여성측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서로 재직했던 4년간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고 남한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성적 피해를 당하고도 쉬쉬하면서 말을 못하던 여성들이 지금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일명 ‘미투’사건으로 명명되는 이러한 그러한 고발 고소 사건은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파장은 페미니즘, 즉 여성인권을 옹호하고, 인간 세계에 양성평등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착시키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미국입니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가 여러 배우들을 대상으로 벌인 엽기적인 성희롱 성폭력 행위를 소셜미디어, 즉 사회관계망에 해시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서 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 기호 (#Metoo)를 다는 것으로 대중화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이 사건으로 2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올해 68세인 하비가 23년 형을 살고 나오면 91세가 됩니다. 그는 지난 30년간 권력을 이용해 유명 여배우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투 운동은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성폭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금권과 권력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던 일부 기업가들, 정치인 등 명망 높던 지도급 인사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미투 운동 이전이라면 서로 쉬쉬하면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요즘은 그런 루머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불붙은 미투 운동은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노르웨이, 스웨리예 등 여성인권이 높다고 알려진 나라들도 성폭력 안전지대가 아니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교적 여성인권의 열악하다고 소문난 중국과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도 미투 운동이 서서히 불을 붙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대학가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워예스(#我也是·나도 그렇다)’ 해시태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세네갈, 나이지리아와 같이 성에 대해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들에서도 미투 운동이 불을 붙고 있습니다.

요즘 미투 운동은 한국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도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북한에서 가장 경악스런 성폭력 사건은 1997년 적발된 ‘청년동맹사건’입니다. 당시 청년동맹 1비서였던 최룡해를 위시한 청년동맹 간부들이 ‘청년중앙예술단’ 미녀들을 성적으로 농락한 사건으로, 김정일의 분노를 사 사건 연루자들이 숙청 및 처형된 사건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정착한 김리사 씨는 1990년대 중반 대표적인 성폭력 사건으로 소문났던 ‘청년동맹사건’에 대해 자유아시아방송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김리사: 최룡해라고 하면 북한에서는 최현의 아들이기 때문에 최현이라고 하면 영화를 많이 찍지 않았습니까, 김일성에게 엄청 충성했다는 것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의 이빨 뽑고 어떻게 했다고 하는 강연 자료는 많이 들었지요. 특히 우리 아빠가 그런 강연자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 보면 사람들이 최현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 여자들 보다도 최현이나, 최룡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낫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진행자: 그런데 최룡해가 지금도 건재해 있는 것을 보면 북한에서 딸 가진 부모들은 최룡해에 대해 감정이 나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김리사: 북한에서는 5과로 뽑혀간 딸들이 어디 가서 죽었는지 어디가 무엇을 하는지, 부모들은 일체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도 밖에 나와서 알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여자를 했다고 하면 우리는 5과 대상 여자들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예술인들, 그리고 예쁘게 생긴 놀지 말아야 할 여자들과 놀았다 했겠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딸 같은 애를 저렇게 했나 하고 생각했을 가요? 그게 아니라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모모한 예술인들과 그 따위 짓을 했겠지 하고 생각했지요. 딸같은 애들을 저렇게 했다? 그러니까 기쁨조니 하는 것은 우리는 아예 모르니까, 청순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리사씨는 “북한에서 여성들이 ‘미투 운동’은 꿈도 꿀 수 없다”면서, 간부들의 성폭행 사건도 보편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김리사: 미투 운동은 북한에서는 그런 게 있을 수도 없거니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북한은 미투는 고사하고, 설사 그것을 우리가 어디에 말할 데도 없지 않습니까, 말할 기관도 없는데, 어쩌다 약간 재수 없어서 시범껨에 걸리는 놈들이 부화했다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긴 있는데 그것으로 근절이 되는가요?

진행자: 북한에서 부화 사건(간통)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리사: 옛날에는 뭐 부화사건이라고 하면 철직 해임되고, 김일성 때는 그랬지만, 그 이후에는 간부들이 못하는 놈이 머저리라는 인식이 생겨서 그때부터는 (여성들이) 더 권한이 없어졌지요.

남한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탈북 남성 이씨도 북한 남성들의 성적 특권 의식도 남한 사회 정착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1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이모씨: 언제인가 주변에 있는 탈북 여성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형부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대요. 그리고 자기는 북쪽에서 군당지도원을 했으니까 한번 만나자고 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당간부를 하면서 여자들과 쉽게 접근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여기 와서도 자기는 간부를 했으니까, 한번 만나야 한다, 쉽게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간부였다고, 아직도 그 시절 누렸던 권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랬다가는 큰일 나지요.

그는 탈북 남성들은 남한 정착 과정에 여성인권, 양성평등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모씨: 탈북민들이 여기 와서 길게는 5년, 짧게는 1~2년 동안 그걸 접하면서 “아, 여성을 그렇게 상대하면 안되겠구나, 위험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법이 강하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하던 습관대로 하려고 하다가 법이 강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했다가 주변에서 여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성희롱 성폭행이 있었다고 하면 감옥 가야 하는 법치국가에서는 이 사람들이 깨닫고 북한에서는 법이 그렇게 강하나요? 성폭행이나 성희롱 같은 것은 당간부들은 간통죄, 불륜이라는 것은 간부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법으로 제재하고 감옥 보내고 그런 제재는 없었지요.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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