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청구권이 왜 없는가?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9.09.18
py_court-620.jpg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가 지난 2015년 12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남한이나 미국 등 자유세상에 나온 탈북민들은 대부분 개인의 기본권이 보장된 이 나라들 현실에 놀람을 금치 못합니다. 특히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청구권은 북한에서는 듣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단어라고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외부 사회에는 청구권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갔다가 훗날 무죄로 확정될 경우, 국가를 향해 형사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가나 지방기관이 진행하는 공사장에서 안전보호 시설을 잘되지 않아 개인들이 사고를 당했을 경우, 개인들은 국가를 향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헌법에 “공민은 신소와 청원을 할 수 있다”고 밝히긴 했지만, 주민들은 청구권이란 말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 청구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네이버 동영상 자료: (비상학습백과 중학교 사회)]: 우리가 가진 다양한 기본권이 침해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기본권의 침해를 구제해달라고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청구권입니다.

이 녹음은 남한 학생들을 상대로 청구권 행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영상 내용입니다. 이처럼 남한에서는 어려서부터 국민들에게 청구권에 대해 설명해주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남한 헌법에서 정한 청구권에는 청원권, 재판 청구권, 형사보상 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범죄 피해자 구조 청구권 등이 있습니다.

청원권은 국민이 법이나 규칙을 만들거나 바꾸고, 또 공무원들의 비리를 고치도록 하기 위해 국가기관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재판 청구권인데, 주민들은 제대로 된 재판소에서 신분이 보장된 법관에 의하여 올바른 절차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요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번째는 국가 배상 청구권인데, 국가의 정책이나 잘못으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개인들은 국가나 지방 기관을 향해 배상청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소음이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때 국가를 향해 손해보상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형사 보상 청구권인데, 감옥에 갔던 사람이 훗날 무죄로 확정되는 경우, 자신이 입은 물질적 및 정신적 손해의 보상을 국가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여 보상받는 경우가 지금도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는 범죄 피해자 구조 청구권입니다. 이 청구권은 다른 사람의 범죄로 인해 자신이나 친척 등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범죄자로부터 충분한 피해 배상을 받지 못했을 때는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처럼 남한에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청구권 제도가 잘 되어 있지만, 북한에서는 개인들이 국가를 향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북한은 2013년 개정된 헌법 제69조에 “공민은 신소와 청원을 할 수 있다”만 밝혔지만, 청원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북한 헌법은 개인의 권리는 대폭 제한하고 국가의 역할과 권한만 증대시켰습니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청원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나온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자신들의 권리가 얼마나 하찮았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한가지 예로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심화조 사건은 1990년 중반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재정비할 목적 하에 저지른 ‘정치 살인극’이었다고 당시 인민보안성 간부로 근무했던 탈북자 박문일씨는 밝혔습니다.

박씨에 따르면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장성택과 사회안전부 정치부장 채문덕이1997년부터 1999년까지 고위 간부들의 이력을 재조사해 경력이 불투명하거나, 경력을 기만했던 사람들을 들춰내어 처벌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처형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피해자는 약 2만5천명에 달했다고 박씨는 증언했습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문성술 본부당 책임비서는 경력 기만죄로 사회안전부 밀실에 끌려가 고문당하던 끝에 자살했고, 서관히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는 ‘간첩’으로 몰려 평양시 한 가운데서 처형당했습니다. 또 ‘서대감’으로 불렸던 서윤석 평양시당 책임비서도 끌려가 고문받던 중 간신히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심화조 사건에서 가장 억울했던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어떤 아내는 남편과 강제 이혼을 당했고, 자녀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집과 재산을 몰수 당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김정일은 심화조 사건을 ‘혁명대오 안에 끼어든 일부 권력야심가들의 망동’으로 뒤집었고, 오히려 심화조 사건을 주도했던 채문덕을 비롯한 주모자들을 총살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 가족들을 복권시킨다고 다시 평양으로 불러다4.25문화회관에서 위로하는 행사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을 고생끝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집에서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또 자신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사는 기막힌 현실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 피해 남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평양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심화조 사건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은 북한 체제에 대한 저주와 증오를 노골적으로 표출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러한 심화조 사건이 남한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청구권 행사가 쇄도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청구권은 고사하고, 청원제도가 있다고 하나, 주민들은 제기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청구권 제도에 관해 탈북자 김동남씨와 대담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북한에 있을 때 개인들이 국가에 대고 피해 청구권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까,

김동남: 재산 청구권에 대해서는 우선 북한에는 개인 재산이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국가재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 청구권을 제기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 탈북자들 중에는 북한의 정권에 의해 탄압받아 잘못된 사람들도 있고,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자녀도 지금 행방불명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손해 배상을 받겠다는 움직임은 없습니까,

김동남: 있지요. 우선 첫째로, 유엔에서 청문회를 할 때 북한에서 독재자에게 피해당한 사람들을 우선 청문회 하지 않습니까, 6.25때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실종된 사람들이 어떻게 북한에서 잠적하고 있는지, 그리고 또 황인철씨처럼 아버지가 비행기 납치 사건으로 끌려가서 지금 북한에서 아버지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군포로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또 탈북자의 경우 중국에서 잡혀서 북한으로 끌려갔는데, 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어디 갔는지 출처도 모르고 있는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다 작성하고 있는데, 북한 당국도 앞으로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거지요.

질문: 그러면 선생님은 북한에 손해보상 청구를 하려고 하십니까,

김동남: 저는 피해보상 청구를 하기 위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자서전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NK 워치’라든가, 유엔청문회를 통해서 첫째도 둘째도 사실대로 다 알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어떻게 되어 조선인민군 출판사에서 추방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들 경우에는 종교를 믿었다는 죄로 지금 현재 강제 실종으로 없어졌기 때문에 유엔에서 북한 당국에 호소도 하고 문의도 했지만, (북한은)없는 것으로 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자들은 피해보상을 받는 것은 응당한 것으로 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의 기본 권리를 명시했으며, 그 기본권의 보장은 청구권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강력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그리고 수령 독재에 옥죄어 개인의 기본권을 의미하는 개념인 ‘인권옹호’, ‘자유’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북한과 남한의 차이입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진행에 정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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