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외부에서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를 가리켜 ‘North Korea's rubber-stamp parliament’라고 부릅니다. 여기rubber-stamp는 고무도장을 말하는데요. 북한 청취자 분들도 공장 부기장이나 기요원(중요한 기밀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장, 기업소 직인이 새겨진 고무도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부기장과 기요원들, 특히 인민위원회 2부 지도원들은 그 고무도장에 잉크를 발라 각종 서류에 찍어주는데 그러면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외국인들이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고무도장에 비유하는 것은 명색이 한나라의 국회인데, 거기에 모인 687명의 대의원들이 어떻게 100% 찬성하는가 하고 조롱하는 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법안을 통과시킬 때 최소한 반대나 기권이 한두 명은 나오는데, 북한은 명색이 인민민주주의 나라인데 대의원들이100% 찬성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는 겁니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 회의에서도 여러 법이 통과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청년교양보장법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청년교양보장법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채택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이어 청년들의 인권을 가혹하게 말살하는 법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청년교양보장법이 왜 청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 tv 녹취>: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경제계획법을 수정보충함에 대하여》가 대의원들의 전원찬성으로 채택되였습니다.
이 녹음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청년교양법이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고 보도한 북한 텔레비전 보도 내용입니다.
남한이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안을 통과시킬 때 논란이 많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각자 자기 지역구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명색이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인데 어떻게 반대자가 하나도 없이 오직 찬성자만이 나올 수 있는가고 외부에서는 이상하게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채택된 청년교양보장법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북한 김정은이 청년들의 사상 단속을 강조한 만큼 보다 엄격한 사상통제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외부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의 청년교양보장법은 유엔이 명시한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도 세계인권선언에서 명시한 정보접근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취해지고 있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은 세계 문명과 담을 쌓고 고립과 폐쇄의 울타리에 청년들을 가두는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세포비서대회에서 청년교양문제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수 없는 운명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교양은 물론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언행’은 북한 매체에 고상하게 표현된 말이지, 사실상 현재 북한이 벌이고 있는 ‘괴뢰말투’와의 전쟁입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11월 ‘괴뢰 말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북한에서는 형제가 아닌 사이에 ‘오빠야, 자기야’라는 말을 했다간 괴뢰 말투를 쓰는 범죄자가 되어 잡혀가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남한 드라마가 북한에 확산되면서 북한 젊은 세대들 속에서는 연인들 사이에 오빠, 자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고 하는데요. 북한은 이를 법적으로 쓰지 못하게 강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공표한 반동사상문화 배격법 시행령을 보면, 제32조에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남조선식 서체로 인쇄물을 만든 자는 정상에 따라 노동단련형으로부터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남한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을 시청한 자에게는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하며, 유입하거나 유포하는 자는 최대 사형에 처할 것을 규정하는 등 외부 문물을 상대적으로 많이 접하는 청년층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세계화 흐름 속에 국경의 장벽이 없는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0대~20대의 방탄소년단, 아이돌 그룹이 한국 문화를 세상에 알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만나면 한국의 방탄 소년단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10년 전에 나온 남한의 뮤직 댄스 ‘강남 스타일’을 기억하며 춤을 추는 외국인들도 볼 수 있습니다.
남한의 삼성, 엘지, 현대 자동차 등 우수한 제품은 물론 한류 문화가 전세계에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얼마전 방탄 소년단은 유엔무대에서 연설까지 하는 등 ‘평화 전도사’로까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한에서는 새세대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고, 한국을 알리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발돋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새세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4월 8일,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청년 교양 문제는 당 조직들의 최중대사”라며 청년들의 옷차림, 언행 등을 세세하게 통제할 것을 당 조직에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사상교양을 통해 ‘인간개조’를 주문하는가 하면,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현상들과는 추호의 타협이나 양보도 없이 짓뭉개 버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지난해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에 이어 이번에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조항이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2030세대는 일명 ‘장마당 세대’로,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 당과 국가의 선물이나 배려보다는 부모들이 장마당에서 억척스레 번 수입으로 성장한 세대입니다.
때문에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거부합니다. 이들에게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기 보다는 이들이 왜 당과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지를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입니다.
현재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정은 김여정 등 김씨 일가도 30대 새세대입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자본주의 발전된 문명을 유럽의 스위스에서 경험했습니다. 북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영국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광팬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회를 구경하기 위해 영국까지 갔었습니다. 이처럼 젊은 세대의 욕구는 강렬합니다.
세계인권선언 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보장된 자유, 평등의 권리는 어떤 정부나 어떤 집단도 침범할 수 없다는 자연권 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입니다. 북한의 헌법 제65조도 “공민은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다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64조는 “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북한 헌법에서는 주민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놓고, 한쪽에서는 북한 청년들을 통제하는 각종 법을 만들어 억압하는 것은 헌법 자체 모순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탙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기자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최병석